불리는 존재가 아닌 존중받는 사람으로
나는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역할에 따라 이름이 많은 건 당연하지만,
한 역할에서만 불리는 호칭이 이렇게 여러 개일 줄은 몰랐다.
저기요, 아줌마, 이모님, 언니, 어머니, 아가씨, 학생.
심지어 손가락 스냅으로도 불린 적이 있다.
정확히 뭐라고 집어 말하기 어렵지만, 그 순간마다 기분은 늘 조금씩 이상했다.
그들 대부분은
내 이름을 알지 못하고,
대부분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나는 그저,
부르면 와야 하는 사람으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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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 이거 얼마예요?”
“언니, 이거 하나만 더 줘봐요.”
별 뜻 없이 부른 말이겠지.
그렇지만 나는 그 말이
내 경계를 스치고 들어오는 걸 분명히 느낀다.
편하게 대하고 싶다는 건 알겠지만,
편하게 여겨질 준비가 안 된 나도 있다는 건
아무도 묻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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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부터
“아가씨”는 “이모”, “아줌마”, “어머니”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 변화가 단지 나이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나는 점점 알게 되었다.
어떤 말은, 말보다 먼저 사람을 정리해 버린다.
이름도 직책도 없이 불리는 순간,
나는 역할만 남긴 채 호출된다.
그리고 그 이름이 쌓일수록,
나라는 사람은 조금씩 사라지는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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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명찰 속 이름으로 불리고 싶은 게 아니다.
다만,
Sir, Ma’am, 혹은 ‘직원님’—
사실 나도 어떤 호칭으로 불려야 괜찮은지 모른다.
하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사람 대 사람으로 불릴 수 있는 한 마디의 존중이 필요하다는 것.
“감사합니다. “
“많이 파세요.”
그런 말 한 줄이면
어떤 날은, 견딜 만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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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나 할 수 있다고 해서,
아무나처럼 불리고 싶지는 않다.
다음 글에서는,
웃는 얼굴 뒤에서 울고 있었던 어느 날의 이야기를 꺼내 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