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가시> 6화 / 귀가 (完)

감정의 연대

by 고유 just being

삑- 삑- 삑- 삑- 삑-

왼손으로 천천히 비밀번호를 누른다.

“다녀왔습니다.”

“어, 다녀왔어?”


집에 왔는데 거실에 엄마가 앉아있다.

오래된 검정 소파는 엄마가 앉은 모양대로 푹 꺼져있다.

‘출근을 안 하신 건가.’


가방 정리하고 옷 갈아입는 동안에도 엄마는 말이 없었다.

정리를 다 하자 같이 얘기를 하자고 하신다.


“… 현수야.

엄마 손에 가시는…

엄마도 병원에 가봤는데 없어지지 않더라고.

병원 가서 수술도 했었는데 떼어내도 조금씩 다시 자라났어.

엄마 손에 가시가 있어서 현수에게 미안해.

근데 엄마는 이제 가시가 엄마의 일부인 것 같이 느껴져서…

없애려고 계속해도 다시 자라서 똑같아지더라고.

현수가 자라기 전에 꼭 없애고 싶었는데…

엄마가 미안해.

… 그래도 병원 가서 다시 진료받아볼게.

현수가 무서워하니까.

가서 다시는 자라지 않게 완전히 없애달라고 할게.”

천천히 말을 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엄마가 가시를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줄로만 알았다.

근데 엄마가 가시를 없애려고 했었다니.

떼어내도 다시 자라는 가시라니.


나 때문에 난 거냐고, 나를 낳았을 때 생긴 거냐고, 언제부터, 왜 생긴 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엄마가 가시에 대해서 나에게 직접 얘기해 준 게 처음이라 마음이 이상했다.


자려고 침대에 누웠는데 엄마의 말들이 자꾸 생각난다.

가시 때문에 나에게 미안하다는 말.

떼어냈던 가시가 다시 자라났다는 말.

이제는 가시가 엄마의 일부 같이 느껴진다는 말.

그래도 병원에 가보겠다는 말.


“엄마, 주무세요?”

“응?”


“… 저 학교에서 집에 오면 좀 무서워요.

집에 누가 숨어있을 거 같아요.”


“그래? 그럼 어떡하지?”

“어쩔 수 없죠, 뭐.”


대화는 더 이어지지 않았다.

엄마는 곧 잠이 드신 것 같았다.

돌아누워 잠든 엄마의 엉덩이에 내 엉덩이를 슬쩍 밀어붙인다.

맞닿은 두 엉덩이가 따뜻하다.


.

.

.

크리스마스이브다.

아이들은 산타를 믿지도 않으면서 다들 내일 선물 받을 생각에 들떠있다.

여자친구들은 크리스마스 카드를 주고받는다.

요란스럽다.


한서는 크리스마스에 우리 집에 놀러 와도 되냐고 물었다.

나는 엄마에게 여쭤보겠다고 했다.


쉬는 시간에 엎드려있는 내 옆으로 세린이가 찾아왔다.

그리고는 카드를 건네주고 조용히 자리로 돌아간다.


빨간색, 초록색으로 난리가 난 카드다.

카드를 여는데 산타와 루돌프가 다정하게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피식 웃음이 났다.


‘현수야, 즐거운 크리스마스 보내.

저번에는 네가 도와줘서 정말 고마웠어.

저번이랑, 저저번이랑. 모두!


나 친구한테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는 게 처음이야.

너에게 처음 보낼 수 있어서 정말 좋아.

Merry Christmas!


- 세린이가 - ’

세린이는 글씨체도 얇고 작다.

손가락에도 힘이 없나.

세린이의 카드를 다시 봉투 안에 넣어두고 화장실로 갔다.



날씨가 춥다.

화장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은 오늘도 파랗다.

입술도 파랗다.

나는 이렇게 파랗고 괴물 같은데 나를 좋아하는 애들은 왜 그렇게 나를 좋아하고 챙기는지 잘 모르겠다.

그냥 그들의 재미인 거겠지.

뭐, 그럴 수도 있지.


거울에 비친 나를 보며 생각한다.

내 얼굴이 이렇게 파란 건 내가 정말 악마여서일지도 몰라.

추울 때 악마의 모습이 드러나는 거지.


근데 또 뭐 어때.

내가 진짜 악마라면 이 정도면 굉장히 나쁘지 않은 악마 아닌가.

누구를 괴롭히고 그러지도 않는데.

그래도 내가 악마라면 그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건데.

악마든 사람이든.

흥.


.

.

.


삑-삑-삑-삑-삑-

일정한 속도로 비밀번호를 누른다.

“다녀왔습니다.”

다녀왔다는 인사를 하지만 대답하는 사람은 없다.

집안 방방마다 불이 켜져 있다.


가방을 떨어뜨리듯 내려놓고 그 위에 겉옷을 대충 올려둔다.

소파 위에 눕는다.

겉이 닳아 꺼칠한 소파 위에 빨간색, 초록색으로 요란한 패드가 깔려있다.

포근하다.



- 完 -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