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의 틈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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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온 내가 안방 붙박이장 문을 연다.
삐그덕-하는 소리를 내며 천천히 열리는 나무문.
그 안에 파란 입술로 하얗게 질린 엄마가 있다.
쭈그려 앉은 엄마는 죽어있다.
죽은 엄마가 내 무릎으로 힘없이 툭-하고 쓰러지며 닿는다.
날씨가 추워지면 자주 꾸는 꿈이다.
하얗고 파란 엄마가 내 무릎에 닿는 순간에는 꼭 깜짝 놀라 깬다.
그렇게 여러 번 꾼 꿈이면 이제 꿈인 줄 알만도 한데 매번 놀라며 깨고 만다.
꿈이라도 그런 꿈은 꾸고 싶지 않은데 그 끔찍한 꿈은 무섭다기보다는 뭐랄까.
너무너무 많이 슬프고 마음이 꽉 잠긴 듯 답답하다.
나의 온 세계에는 엄마뿐인데.
죽어있는 엄마라니.
왜 나는 이런 꿈을 자꾸 꾸는 건지.
아무것도 모르고 자고 있는 엄마를 보면 엄마 곁에 있는 내가 정말 악마 같이 느껴진다.
그래서 엄마에게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런 꿈을 꾸는 나를 엄마가 끔찍하다고 생각할까 두렵다.
나는 정말 악마인 걸까.
매일 집에 돌아오면 집안 온 붙박이장 문을 다 열고 안에 아무것도 없는지 확인한다.
분명 말도 안 되는 꿈이라는 걸 알면서도 일단은 확인을 해야 한다.
그래야 안심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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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반에 유독 작은 친구가 있다.
나도 작은 편이지만 그 친구는 2, 3학년 여자애들이랑 비슷할 정도로 키가 작고 깡말랐다.
그 친구가 다니는 걸 보면 수수깡에 머리가 달린 거 같기도 하고.
성냥개비 같기도 하고.
아무튼 툭 치면 부러질 것 같은 친구다.
몇 번은 내 앞자리에 앉아서 얘기도 해봤는데 목소리도 작고 얇았다.
몸통이 얇아서 소리통도 작은가.
그래도 체구가 작은 거 말고는 그냥 평범한 친구였는데 키 크고 세 보이는 애들과 자주 다녔다.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라 친구관계 같지 않고 이상해 보였다.
그 무리 안에서의 세린이는 늘 주눅이 들어 보인다.
아마 세린이가 체구가 너무 작은 탓이겠지.
키 크고 덩치 큰 애들 사이에서 세린이는 더 작고 초라해 보인다.
어딘가 좀 안 맞고 이상하다는 걸 세린이도 알고 있겠지.
알면서도 그렇게 지내는 거겠지.
이동수업을 하러 가는 날이다.
교실은 1동과 2동 사이의 무지개다리를 건너야 한다.
‘귀찮아.’
책이랑 필통을 대충 집어 들고 느릿느릿 가는데 조금 떨어진 앞에 세린이가 가고 있다.
세린이도 책과 필통을 들고 혼자 가는데 그 껄렁한 애들이 세린이한테 말을 건다.
그리고는 세린이의 가는 손목을 앞으로 쭉 당겨 모으더니 책을 얹어준다.
책이 얹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이어서 필통을 올리는 소리가 들린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깔깔대고 떠들어대며 사라진다.
세린이는 팔 위로 얹어진 책과 필통을 안 떨어뜨리려고 끙끙대며 안간힘을 쓴다.
계단을 오르는 세린이의 발목이 부러질 것 같다.
얇다.
“이리 줘.”
뒤에서 한참을 보던 내가 걸음이 느린 세린이를 앞지르며 말했다.
“아니야, 괜찮아. 현수야.
내가 갖고 갈게.
고마워.
근데 괜찮아.”
“넌 필통 들어. “
세린이 팔에 힘겹게 안겨있던 책 6권을 뺏고 한 권 남은 책 위에 내 필통을 얹었다.
책 하나. 필통 2개를 남겼다.
세린이는 안 뺏기려고 힘을 주는 것 같았지만 딱히 내가 힘을 들이진 않았다.
당황한 표정의 세린이를 두고 내 속도대로 교실로 갔다.
세린이 책상 위에 책들을 내려뒀다.
세린이에게 책을 떠넘긴 애들이 힐끗 쳐다보더니 지들끼리 수군거린다.
말을 섞고 싶지는 않아서 그냥 내 자리에 앉았다.
팔이 아프다. 땀도 조금 난 것 같다.
엄마랑 장 볼 때도 손이 불편한 엄마 대신 내가 거의 짐을 많이 드니까 이 정도는 익숙하다.
어차피 팔이 아픈 건 조금 있으면 괜찮아진다.
근데 마음이 불편하다.
불편한 그 마음이 또 불편하다.
뭔가 모르게 부대끼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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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 답답해.
너 때문에 뒤에 애들 다 기다리잖아.
빨리빨리 좀!”
덩치 큰 애가 뒤따라오던 세린이를 채근하며 세린이의 등을 팔꿈치로 밀어친다.
배식을 다 받고 자리로 가서 앉으려던 세린이가 힘없이 균형을 잃는다.
바로 뒤에서 배식을 받던 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오른손을 뻗었다.
식판을 잡아줘야 할 것 같았다.
식판이 안 흔들리게 잡으려는 세린이와 나의 힘이 엇박을 내며 식판이 크게 흔들린다.
내 오른 손등 위로 세린이의 국이 쏟아진다.
손등에 제 몫을 다 비워낸 국그릇은 급식실 바닥에 떨어지며 마찰음을 낸다.
급식선생님이 급히 나오셔서 왼손에 들린 내 식판을 치워주시고 오른손을 살피시더니 보건실 선생님을 찾으신다.
국그릇이 사라진 식판을 손에 꼭 쥐고 있는 세린이의 얼굴이 울먹하다.
손을 뻗은 것도 나고 손등이 다친 것도 난데 네가 왜 울상이야.
“아 - “
손등이 뜨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