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그러진 세계
바보 같은 일이다.
쓸데없이 손을 다쳤다.
아무리 생각해도 바보 같다.
급식실에서는 내가 다쳤다고 다들 난리였다.
조금만 힘을 줘도 잘 빨개지는 얇은 피부를 가진 탓에 조금 뜨거운 국에도 화상을 입었다.
빨갛게 달아오르더니 물집이 돋았고 분홍빛으로 껍질이 벗겨지기도 했다.
보건실 선생님은 화상이 심하지 않아서 붕대하고 열흘 정도 치료하면 될 거라고 했다.
하지만 엄마는 내가 아직 초등학생이라, 또 엄마의 얇은 피부를 닮아서 흉이 질 것 같다며 걱정이라고 하셨다.
별 것도 아닌데 칭칭 둘러감은 붕대가 맘에 들지 않는다.
오른손을 쓰지 못하게 된 것도 영 불편하다.
손을 다치고 나니 엄마가 집에 일찍 오시기 시작했다.
그래봤자 고작 1시간 정도지만 내가 평소에 엄청 아플 때도 일찍 오는 일은 잘 없으셨는데 이상하다.
평소의 엄마답지 않게 유난스럽다.
엄마가 집에 있는 건 좋지만 이상하게 요즘의 엄마는 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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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크대 위쪽 찬장에 있는 그릇을 꺼내려고 의자를 옮긴다.
시리얼을 먹으려면 오목하고 넓적한 그릇이 딱 좋다.
“현수야, 엄마가 할게.”
요즘 들어 자주 들리는 엄마의 다급한 목소리가 거슬린다.
“됐어요, 제가 하면 돼요.”
내가 의자에 올라가려는데 엄마가 급히 다가와서 오른팔을 뻗는다.
평소에 잘 쓰임이 없는 엄마의 오른팔이 내 시야에 들어온다.
엄마가 오른팔을 뻗어 올리자 오른팔을 덮고 있던 헐렁한 파자마가 흘러내려가며 엄마의 마른 팔이 드러난다.
불편하다.
급히 그릇을 꺼내려던 엄마의 오른손 안쪽 가시에 그릇이 세게 부딪히며 쥐어지지 못하고 떨어진다.
놓쳐진 그릇은 단단한 싱크대 모서리를 맞고 바닥으로 떨어져 산산조각이 난다.
놀란 엄마가 내 손목을 확 잡으며 괜찮냐고 물었다.
엄마의 마른 팔이 다시 내 눈에 들어온다.
엄마에게 잡힌 손목에서 피가 났다.
“아 - ”
엄마의 가시가 내 손목을 베었다.
현실의 피를 보는 게 얼마만인지 피가 나는 손목이 따갑다.
당황한 엄마의 얼굴이 보인다.
내가 손등을 다친 이후로 유난스러워진 엄마의 유난이 끝나지 않았다.
밴드를 붙이거나 붕대 같은 걸 좀 감으면 될 텐데 굳이 응급실에 가야 한다고 했다.
평소에도 좀 다치면 나 혼자 밴드를 붙이고 마는데.
안 가도 된다고 했는데 엄마는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대꾸도 없이 나를 차에 밀어 넣고 응급실로 간다.
응급실에서도 평소의 엄마답지 않게 동동대며 초조해한다.
의사 선생님을 찾아가 쫓아다니며 재촉해 댄다.
내 상처를 빨리 봐달라고 난리다.
엄마가 급하게 감아놓은 엉성한 붕대는 이미 피로 다 젖었다.
응급실에서 처치를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랑 나는 다시 평소처럼 말이 없다.
잘 준비를 하고 침대에 누웠다.
마음이 물을 먹은 것처럼 무겁다.
불편하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엄마는 안 보인다.
잠깐 나가셨나 보다.
평소처럼 또 그릇을 꺼내려고 의자를 옮긴다.
그때 현관문 여는 소리가 들린다.
“현수야. 엄마가 할게.”
엄마의 다급한 목소리.
또다.
또.
또, 또다.
“됐어요. 엄마.
됐다고요. 제가 꺼낼 수 있어요.
엄마는 손도 불편하면서 왜 자꾸 그러는 거예요.
제가 하면 되는데 엄마가 괜히 그러셔서 제가 어제 다쳤잖아요.
근데 왜 또 그러세요.
제가 한다고요.
저 신경 쓰지 마시고 엄마나 병원 가서 그 가시부터 떼버리세요.
그 소름 끼치는 가시는 왜 안 떼고 달고 다니는 거예요?
그게 언제 또 절 다치게 할지 모르는데 제가 또 다쳐도 상관없는 거예요?
엄마 손에 그 가시는 정말 끔찍하다고요. “
마음속에 있던 말과 마음속에 있었는지 모르겠는 낯선 말들이 뒤죽박죽 범벅이 되어 엉겨 나왔다.
무슨 말을 했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냥 나오는 대로 쏟았다.
한참을 큰소리로 떠들던 내 말에 엄마는 대답이 없었다.
시리얼을 먹고 싶은 마음은 사라졌지만 그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의자에 올라갔다.
꺼낸 그릇을 식탁에 내려놓고 방으로 들어가 학교 갈 준비를 한다.
엄마의 표정을 살필 자신은 없었다.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한 것 같다.
마른침을 조용히 삼킨다.
“갈게요.”
“밥은 먹고 가야지.”
엄마의 작은 목소리가 갈라지며 새어 나온다.
“괜찮아요. 학교 가서 우유 먹을게요.”
“… 차 조심하고 잘 다녀와.”
불편한 팔로 롱패딩을 입는 나를 엄마가 말없이 돕는다.
집안 공기가 차갑게 느껴진다.
오늘도 일찍 학교에 온 나는 교실로 안 가고 화장실로 곧장 갔다.
가방도 멘 채로 화장실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 내 얼굴이 추위에 질린 사람처럼 파랗다.
얇은 피부를 가진 사람은 얼굴도 쉽게 파래지나.
입술은 더 파랗다.
패딩 안에 들어가지 못한 오른팔이 차다.
얇게 떨린다.
거울 속 파랗게 떠는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미련한 악마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