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하나 밖에 남지 않은.
엄마는 고운 사람이다.
연예인처럼 예쁜 사람은 아니지만 곱다는 말말고는 표현하기 어려운, 분명 너무 고운 사람이다.
항상 고운 엄마의 손을 잡고 밖에 나갈 때는 마음이 둥둥 들떴다.
그냥 엄마의 손을 잡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몽실몽실하니 좋고 신이 났다.
항상 자랑스러운 나의 고운 엄마.
엄마의 얼굴을 들여다보면 난 자꾸 헤실헤실 웃게 된다.
엄마가 좋다.
하지만 엄마는 언제부턴가 내 손을 잘 잡아주지 않는다.
내가 너무 많이 커서인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이제 손을 잡아주지 않아도 잘 다닐 수 있으니 안잡아도 괜찮겠다고 했다.
나는 괜찮지 않은데 나에게 괜찮냐고 묻지도 않았다.
아마 물어봤어도 나는 그냥 알았다고만 했겠지만.
나는 여전히 엄마의 손을 잡는 게 좋은데 내가 너무 많이 커져서 엄마는 이제 내가 싫어진 건가.
아니면 원래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걸까.
엄마가 손을 슬쩍 빼던 날, 엄마 손의 온기 대신 들어왔던 차가운 공기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내가 싫어진 건지 귀찮아진 건지 그런 건 뭐 상관없다.
어차피 엄마는 나와 떨어질 수 없으니까.
엄마는 그런 사람이다.
바쁘고 힘들어도 해야 할 일은 꼭 챙기는 그런 사람.
내가 손을 잡고 싶다고 하면 자신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언제든 손을 내어 잡아줄 사람.
나는 엄마에게 그런 ‘일’이다.
그래서 나는 엄마에게 투정 부리거나 떼쓰지 않는다.
내가 힘들게 해도 엄마는 나에게 힘들다고 하지 않을 걸 아니까.
엄마는 그런 사람이다.
엄마 오른손에는 가시가 있다.
몸에는 물집이나 염증 같은 게 날 수 있다고 들었는데 아무리 봐도 물집이나 염증 같지는 않았다.
도서관에서 책을 찾아보기도 했지만 엄마 손에 있는 건 책에서 본 낭종이나 결절 같은 것도 아니었다.
엄마의 하얀 손 안에 뾰족하게 자리 잡은 것.
연한 청록색의 핏줄 같은 것이 비쳐 보이는, 하지만 피부병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단단하고 날카롭다.
엄마의 맨들한 엄지 손가락 안쪽 아래 불룩한 곳에 다른 사람들 몰래 자리잡은 가시.
뾰족하고 못된 가시.
엄마의 고운 손 안에 있기에는 너무 이상하다.
얌체 같고 밉다.
엄마에게 병원에 가보라고 했지만 엄마는 늘 웃으며 아프지 않다고 괜찮다고 했다.
나는 고운 엄마에게 달린 그 가시가 너무 싫었는데 엄마는 싫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가시 덕에 엄마는 세수를 할 때도, 머리를 감을 때도, 사람들과 인사를 하거나 커피잔을 잡을 때도 늘 조심하지 않으면 안됐다.
그래서 날 잡아주는 건 늘 왼손이었다. 엄마는 늘 내가 엄마 가시에 베일까봐 걱정했다.
쓰임이 덜한 엄마의 오른팔은 자꾸만 말라간다.
엄마는 오른손잡이지만 오른손을 쓰는 건 늘 조심스럽다.
.
.
.
토요일 아침이다.
특별한 일 없이는 외출을 하지 않는 우리는, 여지없이 오늘도 집이다.
새벽에 일찍 깨서 사부작거리는 엄마를 따라 일찍 일어난지도 이제 꽤 오래됐다.
아마 초등학교 2학년부터던가.
내 인생의 길이를 생각한다면 꽤 오랜 시간이다.
엄마는 식탁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
책을 들고 있는 왼손과 커피잔을 들고 있는 오른손.
하지만 항상 그렇듯이 오늘도 커피잔은 오른손 깊숙이 들어가지 못하고 손가락들에만 걸쳐져 있다.
그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고 불안하다.
하지만 그런 어색한 모습을 하고 있는 엄마는, 익숙해 보인다.
어색하지만 익숙한 그런 모습.
오른손에 들고 있는 잔이 심하게 흔들릴 때면 왼손에 든 책을 뒤집어 내려놓고 오른손에 든 잔의 바닥을 왼손으로 받쳐 식탁에 조심히 내려놓는다.
엄마의 독서는 그런 모습으로 반복된다.
위태롭지만 편안한 그런 모습.
“현수, 잘 잤어?”
기척을 느낀 엄마가 방에서 나온 나를 보고 조용히 말을 건넨다.
“네, 잘 잤어요. 무슨 책 읽으세요? “
”그냥… 어제 읽던 책이야. 얼른 밥 차려줄게. 씻고 와요. “
”네. “
식탁 위에는 늘 보던 반찬들이다.
주말이라고 뭐 특별히 기대할 것은 없다.
계란하고 밥하고 뭐 매번 보던 그런 것들.
설거지하는 엄마의 뒷모습을 본다.
설거지할 때 엄마는 오른손에 두꺼운 장갑을 낀다.
두꺼운 장갑 위에 고무장갑을 낀 오른손은 터질 것 같이 두툼하지만 엄마는 익숙한 듯 불편한 듯 그렇게 무심히 설거지를 한다.
어색하지만 익숙한 그런 모습. 위태롭지만 편안한 그런 모습.
‘엄마는 멸종위기종이야. 세상에 하나 밖에 남지 않은.’
엄마를 보면서 나는 생각한다.
엄마가 출근할 준비를 한다.
주말이지만 할 일이 있어서 출근을 해야 한다고 했다.
교수님이 연구소 소속 교수들하고 연말 만찬을 준비하라고 했단다.
연말 만찬이면 뭐 그냥 자기들끼리 모여서 밥 먹으면 되는 거 아닌가.
왜 주말까지 엄마를 귀찮게 하는지 모르겠다.
주말에 매번 출근하지는 않지만 어차피 엄마는 늘 바쁘다.
“언제 오세요?”
“점심은 지나서 올 것 같아. 점심은 냉장고에 있는 반찬하고 차려 먹어. 저녁 전에는 올게.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해. 다녀올게. “
”네. “
엄마가 나가시고 소파에 눕는다.
소파는 푹- 소리를 내며 포근한 척했지만 오늘따라 군데군데 까진 부분이 유독 거슬린다.
불편하다.
안방 침대 위에 널브러져 있던 이불을 질질 끌고 온다.
이불을 소파 위에 올려두고 다시 안방 침대 위에 있던 베개랑 이불을 가져와 소파 위에 올린다.
이불과 이불이 깔려있는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눕는다.
텔레비전 리모컨을 손에 쥐고 이리저리 채널을 돌려보지만 지루하다.
윙 -
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한서가 보낸 카톡이다.
“국어숙제했어? 선생님이 몇 쪽 보고 하라고 하셨는지 알아? “
알림만 보고 다시 핸드폰을 내려놓는다.
귀찮다. 이따 톡 해야지.
재밌는 채널을 찾아보는 게 우선이다.
채널을 계속 돌리는데 한서 카톡이 신경 쓰인다.
다시 폰을 집어든다. 답을 해야겠다.
”34쪽일 걸. 그거 읽고 5줄 이상 노트에 적어서 내라고 하셨어.”
“ㅋㅋㅋㅋㅋ 고마워 넌 숙제했어?
”ㄴㄴ 학교 가서 할 거임 “
”ㅎㅎㅎㅎㅎㅎ”
한서한테 더 카톡이 오는 것 같았는데 읽지 않고 폰을 뒤집어 내려놨다.
배가 좀 고픈 것 같다. 간식 서랍을 뒤져봐야겠다.
저번에 다 먹었던 시리얼이 어느새 다시 채워져 있다.
엄마가 차려먹으라는 점심은 밥과 반찬이었겠지만 나에게는 우유와 시리얼이 최선이다.
시리얼은 맛있지만 어떤 때는 너무 달아서 기분이 나쁘기도 하다.
우유를 한 대접 먹었는데도 약간 허기가 있다.
식탁 위에 있던 모닝빵을 쭉- 쭉- 찢어 먹는다.
아무 생각 없이 계속 먹었더니 배가 부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