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자녀 사교육을 고민하시는 선생님들께 편지

by 청블리쌤

1. 사교육은 정말 필요 없나?

강연할 때 사교육의 부작용만 강조하다 보니 순기능에 대한 언급이 없었습니다. 특히 엄마가 교사인 경우, 그리고 아이가 저학년일수록 학원은 불가피한 시스템의 일부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학원에서 배우는 내용과 관계없이 하고 싶지 않아도 지속적으로 어딘가에 소속되어 뭔가를 꾸준히 할 수 있는 습관형성에는 긍정적인 기능의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습니다. 학원을 열심히 다녀서 오랫동안 앉아 있는 것이 습관이 되고, 숙제라도 뭔가를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 습관이 된 수성구 학군의 학생들의 학교에서 학업수행능력을 봐도 학원의 긍정적인 영향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비수성구 학군의 경우, 앉아서 뭔가에 집중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는 경우가 많으니 더 힘겨운 문턱을 넘어서야 하기도 합니다.

단, 학원을 가도 자기 주도성을 헤치지 않는 범위에서 진행해야 하고 아이들이 문해력과 비판적 사고력 함양에 더 초점을 맞추는 것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2. 학원 선택은 어떠해야 하나?

학원을 피할 수 없다면 학원 선택에 대해서만큼은 신중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저학년일수록 독서가 학업에 미치는 영향력이 엄청나긴 하지만, 그렇다고 논술과 독서토론을 아이들의 의지에 반해서 억지로 시키는 것은 역효과가 날 수 있습니다. 독서는 즐거움이 전제가 되어야 아이들이 주도적이고 지속적으로 읽을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학원의 부작용 중 가장 큰 것은 성과주의이며 결론을 정해놓고 준비 안 된 아이들도 함께 푸시 한다는 것입니다.

아이가 힘들어하거나 재미를 느끼지 못하면 부모의 욕심으로 레벨업 하지 않고 재미 위주의 어렵지 않은 학원을 보낼 것을 고민하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3. 지속적인 학습 습관 형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부모가 개입하여 아이들을 야자 감독하듯이 지도하는 것은 서로에게 불편한 일입니다. 또 자기 아이는 직접 가르치는 건 매우 어렵습니다. 최소한의 기준과 자존심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콘텐츠나 인강이나 학원 수업도 아이가 지속적인 학습의 습관이 형성되어 있지 않으면 큰 의미가 없으니 습관형성을 강요할 수도 없고, 공부는 아이가 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스스로 욕심이 나고 동기유발될 때까지 무작정 기다릴 수는 없는 일이니 늘 고민이 많습니다.


그러나 저학년일수록 규율과 절제에 대한 습관형성의 시도는 의미가 있습니다. 완벽한 습관 형성이 되지 않아 하다 말다를 반복하더라도 시도하는 것 자체가 이후 고학년이 되어 학습 습관을 형성하는데 애쓴 것만큼의 노력을 덜어줍니다. 매일 반드시 해야 하지만 무리하지 않는 범위의 학습내용을 시간이나 분량을 정해서 학습하고 일정 시간에 점검받는 방법이 좋습니다. 특히 학원을 안 갈 경우라면 이런 과정이 필수적입니다. 습관형성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에게 꾸중보다는 애쓰고 있는 것에 격려가 더 효과적입니다. 그리고 스마트폰 시간제한 등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사춘기라는 명목으로 부모의 지도를 더 이상 따르려 하지 않을 때까지는 규율을 적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제 딸의 선택을 존중했다는 것은 중학교부터의 이야기입니다. 이후에는 대략적인 방향만 조언하고, 실제로 딸아이가 도움을 청할 때에만 도와주었고 그냥 학교와 본인에게 맡겼습니다.


그리고 학군에 따른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분위기가 중요할 수 있습니다. 단, 이 대목에서 물론 성적을 올리기 위한 과열 경쟁으로 상처를 받기 쉽고 기본기보다 결과 중심의 분위기에서 큰 그림을 놓치는 일이 없도록 부모의 개입이 다소 필요합니다. 무작정 성적만 올리기 위한 기본기를 무시한 타협은 지양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특목고를 진학할 것이 아니라면 중학교까지는 시험에 대한 예의를 다하되 진정한 실력 향상에 힘쓸 수 있도록 코칭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정에서 지속적인 학습 습관을 형성하려는 부모의 노력도 무시할 수 없지만 부모의 각본대로 아이가 완벽하게 따를 것을 기대할 수 없음도 같이 고려해야 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아이가 스스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입니다.

사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학원은 가서 배우는 것보다 지속적인 학습 습관 형성에 더 큰 의미가 있는지도 모릅니다.


중학교 때까지는 아이가 입시의 좁은 통로에 일찍이 발을 들여놓았다가 경쟁구도에서 좌절감을 느끼지 않도록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4. 큰 그림을 그리는 학습방향은?

1) 가장 중요한 것은 독서입니다. 독서 편식을 하거나 수준이 너무 낮은 것을 읽거나, 책을 반복해서 읽는 것 등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발적인 선택에 의해 이뤄지는 일이라면 말입니다. 제 경우는 딸들에게 제가 일일이 책을 선정해서 읽혔습니다. 그래서 독서 사교육이라도 받는 것처럼 아이들의 독서 주도권을 형성해 주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도서관에 동행해서 학생들이 스스로 책을 고르고 읽을 수 있게 해주시는 게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고, 집안에 책을 비치해서 스스로 골라 보도록 분위기를 유도하는 것도 좋습니다.


2) 수학의 경우 선행에 의미를 부여하지 말고 현재의 진도에 충실하도록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현재 진도를 잘 못 따라간다면 조급해하지 말고 이전 내용으로 돌아갈 것을 권유하고 반드시 출발점 진단이 제대로 이뤄져서 거기서부터 학습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수학선행을 많이 함에도 수학성적이 잘 나오지 않는 것은 수학은 속도보다는 깊이가 더 중요하며, how보다 why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데 학원만 의지하면 이 두 가지에 취약해지기 때문입니다. 결국 원리를 따지면서 학습하는 것은 다른 학생들과 속도 경쟁을 의식하지 않아야 가능한 일입니다. 부모님의 마음 비움이 전제조건입니다.


3) 영어의 경우 저학년이라면 꾸준히 듣고 즐길 수 있는 분위기 형성이 좋습니다. 문법교육을 서두를 필요 전혀 없습니다. 중학교 때 문법문제가 많이 나오고 스트레스가 심할 수 있는데 특히 중학교 문법은 활용이 아닌 지식에 머무는 문법이어서 시험성적만 관계가 없다면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물론 그렇더라도 고등학교 수업을 이해하는데 바탕이 될 수 있으니 수업에 집중하는 것은 기본자세입니다.

초등학교 때와 중학교 저학년 때는 리틀팍스를 검색하셔서 활용하시면 됩니다(광고 목적 아닌 순수한 추천입니다). 플래시 동화 사이트인데 연회비가 있지만 학원비를 생각하면 가성비 최고입니다. 단, 지속적으로 볼 수 있도록 관리하는 것을 학원처럼 누군가 해줄 수가 없으니 아이에게 믿고 맡기거나, 부모님이 시간을 정해서 함께 하는 방법이 필요하겠지요. 그러면 영어듣기 평가 문제집을 굳이 안 풀어도 듣기평가는 그냥 만점 나옵니다. 그렇게 은근 축적된 영어의 인풋은 이후 회화 등 실용영어를 할 때의 바탕이 되고, 기본단어 습득에 굉장히 유의미한 영향을 줍니다.

시험영어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중학교 2학년 전에 영어는 지속적인 노출이 중요하니 그 동력은 흥미가 되는 것이 좋은데 가시적 성과를 확인하기 위해 아이의 재미를 희생시킨다면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되실 것이니 부모님의 조급함은 금물입니다.


어느 정도 듣기가 축적이 되고 중학교 2학년 이상이 되면 청블리영어코스를 단계별로 진행하면 됩니다. 기본 단어의 문턱을 넘어서면서(이 경우 리틀팍스 등으로 지속적으로 영어에 노출된 아이들은 훨씬 빨리 단어를 습득할 기회를 얻습니다) 문장이 축적되어 있다면 단시간에 활용문법 및 구문능력을 갖추면서 본격적인 시험영어에 대한 대비를 할 수 있습니다. 자세한 코스별 안내는 제 블로그(고딩들의 영어간식)에 올려놓았으니 참고하세요. 필요하시면 간단한 무료 컨설팅도 가능합니다. 단, 저는 마음이 안 열린 아이의 동기유발까지는 못합니다. 동기유발이 되어 있고 절실함을 느끼는 아이라면 본궤도에 오르는 것은 간단한 컨설팅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리고 단어는 암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중학교 2학년이 되기 전까지는 자연스럽게 노출되면서 반복되는 것이 가장 좋고, 그 이후 시험영어를 대비해서 단기간에 단어를 암기해야 한다면 암기하지 말고 “시간 간격을 두고 반복해서 망각하기(읽기)” 방법을 권합니다. 제가 사진대장을 통해 학생들 이름을 외우는 방식과 거의 동일합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이런 위로입니다. 아이가 단어를 5번을 까먹었으면 “잘했다. 앞으로 15번만 더 까먹으면 너가 의식하지 않는 순간에 단어가 자리를 잡을 거다. 원래 기억이 정착되려면 평균 20번 정도는 망각하는 것이 정상이니 자꾸 단어가 안 외워진다고 좌절하지 마라.” 이런 식으로 알려주는 겁니다. 멈추지 않으면 결국 하게 된다는 확신을 주면서 말이지요.



5. 정말 이걸로 충분한가?

독서력이 바탕이 되면 남들보다 빨리 알아듣고 더 잘 이해하며 더 효율적인 시간관리자가 됩니다. 공교육에 있는 모든 교사가 다 공감하듯이 수업을 알아들을 준비가 된 학생들은 진도에 따라 관리만 해주면서 한 걸음씩 더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수업진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면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힘겨운 사전 준비과정(오히려 선행보다 학교 진도를 따라가기 위한 도움을 받을 때 학원이 더 필요합니다)을 거쳐야 합니다. 특히 수학과목이라면 자꾸 앞서나가기보다 개념이라도 이전의 것들을 완전 학습하는 과정으로 전략을 바꿔야 합니다.

영어는 진도 교과가 아니어서 욕심나는 것만큼 뭐든 하면 됩니다. 단, 모든 과목이 다 그렇듯 아이의 출발점이나 발달단계에 맞지 않게 높은 수준을 억지로 하는 것은 아이의 상처만 더 키웁니다. 영어도 암기과목처럼 고생할 필요는 없습니다. 수준에 맞게 즐기면서 해야 지속적으로 할 수 있습니다. 리틀팍스는 중학교 1,2학년 때까지도 유효한 과정입니다.



6. 교사의 아이들은 왜 힘겨워하는가?

교육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고 구체적인 사례로 자꾸 우리 애랑 비교하게 되기 때문이고 여전히 학생들에게 통제권을 발휘하는 교사라는 정체성으로 아이 앞에 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수로 부르는 경우 외에 아이가 부모님을 “선생님”이라고 호칭하지는 않습니다. 1순위 정체성은 부모이기 때문에 교사라는 정체성이 개입이 되는 순간 학력 향상은커녕 관계만 망가질 수 있습니다.

전 언제든 딸들의 영어 과외교사가 될 준비가 되어있었지만 오랜 기다림이 필요했습니다. 보통은 자기들 스스로 해보다가 망했을 경우에 아빠를 찾습니다. 그럴 경우 비판 없이 아이들 모습 그대로 받아주고 코칭합니다. 저는 아이들을 제가 지도했습니다. “이것도 모를 수는 없다!”라는 내색을 하지 않도록 혼자 도를 많이 쌓았습니다. 정말 힘든 과정이지만 제게 가능했던 이유는 딸들이 학교에서 벌점을 생활화(?) 하여 일찌감치 마음을 많이 비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말 위험한 건 아이가 사춘기 즈음에 싫은 내색도 안 하면서 부모에게 괜찮은 척할 때입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마음을 비우지 않는 한 괜찮을 수가 없습니다. 사소한 문제라도 있기 마련입니다. 그때마다 판단과 충고와 조언으로만 반응한다면 아이는 영영 솔직한 말을 털어놓을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함께 아파하고 기다려주고 때로는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어주는 거리 유지가 서로의 정신건강을 지킵니다.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를 할 때에도 일단 아이 편에서 이야기를 들어야 하고 아이 편임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너를 사랑한다는 안정적인 메시지가 전달된 후에 그리고도 시간이 좀 더 지나서 아이가 도움을 청하고 조언을 구할 때 그 타이밍에 부드럽고 조급하지 않게 준비한 답변을 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교사나 부모나 기다림으로 속이 문드러지는 것은 숙명입니다. 그걸 안 기다리고 바로 터뜨려버리면 아이 속이 문드러집니다. 더 치명적인 건 자꾸 마음의 문을 닫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사춘기를 지나면서 주도권은 아이가 쥐는 경우가 많습니다. 경제적인 울타리는 아직까지 아이가 넘어설 수 없는 장벽이지만 그 외의 부분에서는 주도권을 인정해달라는 몸부림으로 사춘기를 행동과 말로 구현합니다.

그때 필요한 건 아이를 통제하는 벽을 더 넓히고 사소한 것은 져주면서 결정적으로 넘어서서는 안 되는 선을 명확하게 하는 일입니다. 사소한 것까지 다 통제하려고 하면 결정적인 순간에 통제권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든 아이들에게 주어야 하는 확신은 어떤 경우에든 너를 사랑하고 너의 있는 모습 그대로 네가 애쓰지 않아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결과나 성과에 대해서는 칭찬을 아껴야 합니다. 아이의 타고난 능력에 대한 칭찬도 금물입니다. 둘 다 아이의 노력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결과를 아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거라고 강압하는 부모님은 아이에게 늘 불안감을 부어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그 결과를 이루지 못했을 때의 모든 노력은 무의미해지며, 결과를 성취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면 삶 자체에 대한 학습된 무력감으로도 이어집니다.

예를 들어 1등을 했을 때는 내려오게 될 것이니 마음 편하게 가지라고 해야지, 꼭 지켜야 한다고 부담을 주면 안 됩니다. 사실 부모님의 부담보다 스스로 마음 부담이 더 큽니다. 욕심도 아이 스스로가 더 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를 아이가 노력만으로 장담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우리나라 성적 체계에서는 본인만 잘한다고 1등을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저 과정에 따른 정당한 칭찬을 소심하게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성적이 떨어져도 변함없이 응원하고 있다는 메시지만 자연스럽게 전달되면 됩니다. 성적이 떨어졌을 때는 아이가 스스로 화를 내고 힘들어할 때 달래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입니다. 아이 대신 욕심내고 아이 대신 화를 내는 것은 실패를 통해 아이가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부모가 빼앗고 있는 것입니다.



7. 강연의 핵심은 무엇인가?

시간이 쫓겨서 뒤죽박죽 정리되지 못한 이야기들로 오히려 혼란을 드린 것 같습니다만 결론은 이겁니다. “행복할 만큼만”

결론을 정해 놓지 않아야 아이가 내딛는 한 걸음에 박수를 쳐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너무 주변을 두리번거리지 않아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 다른 아이의 성적을 비교하며 욕심낼 이유는 없습니다. 그 성적은 우리 아이 성적이 아니거나, 중요한 것은 “당장”은 아니거나 둘 중에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그 성적에 우리 아이가 영영 거기에 머무는 것은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히려 경계해야 할 것은 부모의 조급함으로 아이를 너무 지치게 하여 아이가 자칫 멈춰버릴 위험입니다. 느려도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일단 방향입니다(그 방향에는 아이의 정확한 출발점 진단이 우선입니다.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어떤 공부든 재미있게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멈추지만 않으면 됩니다.


제 큰딸이 학원도 안 가고 중학교 때 주요 과목 성적이 50-60점 대를 헤맬 때 제 아내는 매우 불안해하였습니다. 공부방이라도 보내야 한다면서...

저는 여유가 있었습니다. 고3 담임도 하면서 아이들을 수도 없이 많이 관찰하고 지켜본 바로는 당장의 싹수를 발견하고 증명하는 것이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쇼트트랙 선수들처럼 처음부터 1등으로 치고 나가려는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보다는 아이의 행복이 더 중요했습니다. 큰딸의 음악 전공은 말렸지만, 그래도 연애도 하고 음악도 하면서 행복하게 지낸 것에 대해 아이도 저도 후회가 없습니다. 심지어 아이에게 연애상담까지 해주면서 인생의 소중한 가치들을 나누었습니다. 연애와 음악이 분명 성적을 떨어뜨렸지만 이미 저와 딸도 감수한 일이었습니다. 이후에도 연애도 음악도 할 수 없지만 그때에만 할 수 있는 그때만의 소중함임을 그래서 그저 그 순간에 충실할 것을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리고 헤어질 때쯤 이런 말도 해주었습니다. “이별 후에는 이 세상의 모든 이별 노래가 너의 노래가 될 거다. 이별 후 아픔과 슬픔은 필연적인 과정이니 억지로 잊으려 애쓰지 말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렴.”


우리는 미래를 담보로 현재 소중한 것들을 애써 무시할 필요는 없는 거라는 것을, 학창 시절 명문대만 바라보면서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은 없이 온통 미래에 사로잡혀서 몸과 마음도 눌려 지냈던, 그리고 인생의 소중한 가치들을 다 보류하며 암흑의 시기를 보냈던 저의 고통으로 인해 딸에게 줄 수 있었던 삶의 선물이었다고 봅니다.


딸이 중학교 때 아내의 고뇌에 빠진 그 최악의 순간에 저는 아이가 고등학교까지 행복하게 지내고 졸업 후에 제대로 공부할 마음이 생기면 재수해서라도 길을 찾아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충분히 실패를 겪고 간절함이 생기면 오히려 억지로 끌어당기는 것보다 단기간에도 할 수 있을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그런데 딸은 믿어주고 기다리는 것 그 이상의 길을 가고 있음을 저희 부부는 그저 감사하고 있습니다. 너무 행복하게 대학생활을 하고 있거든요.

심지어 고3 생활 너무 행복해서 다시 하고 싶다는 이야기까지 합니다. 고3 과정은 반드시 아이든, 부모든 고통스러울 필요가 없다고 저는 주장하고 싶습니다. 단, 결론을 정해 놓지 않고 마지막 발걸음이 닫는 그곳을 도달점으로 인정해 주기만 한다면요.



8.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아이들이 자신들의 자존감을 지키면서 은혜의 분량까지만 그들의 역량과 기질과 성격과 태도 등의 인격적인 총합이 선택하는 그 거리까지를 존중하는 자세를 지니는 것이지요.

서두르지는 않아도 어떻게든 요요현상 없는 꾸준한 습관형성(그것은 욕심을 버릴 때 가능합니다. 찌질한 것, 사소한 것부터 해야 저항감 없이, 요요현상 없이 지속할 수 있습니다. 내일부터 조깅을 30분 하겠다는 결심보다 그저 아침에 푸시업 한 번을 매일 하면 자연스럽게 운동을 지속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 <습관의 재발견:다이어트>라는 책에서 말하는 습관형성의 비결입니다. 뇌를 속여야 요요현상이 오지 않으니 시작은 늘 초라해야 합니다)을 한다는 것과 출발점에 맞춰 원하는 지점까지 가도록 선택을 존중한다는 기본원리에 그 적용 방식이나 다양한 계획은 억지스럽지만 않으면 될 것 같습니다.


얼마 전 강동고 졸업생이 제 블로그에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1학년 때 엄청 불안했거든요. 성적, 진로 고민 이런 거 때문에..

근데 그때 선생님이 수업 때 “지금 몰라야 나중에 알 수 있다, 당장 결과로 입증하려고 하지 마라”고 하셨는데 그 말이 그때 정말 힘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얼마나 결과와 성취 위주의 시스템에 상처를 받고 지내는지 이런 사소한 말에도 힘을 얻습니다.


자신감 뿜뿜해서 강연을 잘할 것처럼 말씀을 드렸지만 용두사미 강연의 느낌에 한참을 고민하다가 키보드를 두들겨보았습니다. 마구 두들기다 보니 또 이렇게 장황하게 길어졌습니다. 이런 글은 베스트셀러가 될 수 없다고 했거늘... 저는 또 피카소 말과 같은 단순화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선생님들의 넓은 아량과 고급진 필터링 능력으로 여과하시고 필요한 것만 담아두시고 강연과 이 글을 넘어서서 교육에 대해 고민하시는 좋은 기회가 되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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