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뭐 그렇게까지 초라한 시작? 행복교육의 시작

by 청블리쌤

학교에서나 집에서 저는 행복교육의 시작은 결론은 정하지 않는 거라고 늘 강조합니다. 결론과 목적지를 정해 놓으면 매 순간이 좌절입니다. 뭘 해도 아직 멀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목적지는 아직은 너무 멀기 때문에 그래서 뭔가 확신할 수 있는 객관적인 증거로 마음의 위안을 삼으려 하는 경향이 드러납니다. 그래서 매일 공부시간의 양이나, (실제로 제대로 이해했는지 여부보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빠르게 뭘 하고 있다는 현상이나, 집중이 잘되고 있다는 기분이나, 당장의 가시적인 성과에 집중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나 우리는 늘 기계적으로 똑같은 목표량을 똑같은 기분 이상으로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더 안심할 수 있는 강한 자극을 찾기도 합니다. 잠을 확 줄인다든지, 고액의 학원이나 과외를 한다든지, 인강 패스를 끊어서 일타강사를 만난다든지... 그러나 그런 자극도 오래가지 않습니다. 당장은 차별화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여전히 목표지점은 멀고, 욕심내는 분량을 늘 얻어내지 못하는 좌절감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뭔가를 제대로 할 것 아니면 아예 시작을 안 하려고 하거나, 시작을 했더라도 더 우아하고 찬란한 다음 기회를 위해 연애편지 쓰다가 마음에 들지 않아 꾸겨 던져버리고 다시 쓰는 것과 같은 동작을 반복하기도 합니다.


저의 처방은 이러합니다.

그럼에도 그냥 무작정 시작하는 겁니다.

초라한 시작일수록 더 오래 지속된다는 역설 같은 사실도 강조하고 싶습니다.

낮과 밤이 바뀌어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것 같지 않은 고1인 둘째 딸을 방학 중 학교에 이틀 데려가서 자습을 시켰습니다. 오자마자 오전에 잠을 잤습니다. 맛있는 점심을 먹였는데 오후에 계속 잠을 잤습니다. 집에서는 편하게 잘 것을, 학교에 와서 불편하게 자는 것 외에는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결국 학교를 데려온 것은 실패였던 것이죠. 그러나 전 그다음 날도 학교에 데려왔습니다. 어차피 학교에서도 잘텐데 뭐 하러 데려왔냐구요? 그래도 뭔가 해보겠다고 아빠의 학교로 지하철 환승하며 1시간 거리를 따라나섰다는 것이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하지 않을 거면 시작도 하지 말라고 하면, 누구도 시작할 수 없습니다. 시작은 늘 초라한데, 이미 시작해서 본게임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 비교하여 시작을 망설일 이유는 없는 겁니다.

큰 딸도 기회 될 때마다 학교에 데려가서 자습을 시키려 하면 한 번도 실망시키지 않고 계속 잤습니다. 점심 먹을 때만 말짱했지요. 그렇게 어설픈 시간과 과정을 거치고 나면 때가 되었을 때 더 이상 어설프지 않는 단계로 더 빨리 올라설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공부가 잘되는 순간의 좋은 기분만 기대하기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이라도 애를 썼다는 사소한 노력이 실망과 좌절을 넘어서 지속할 수 있는 힘이 된다는 것이지요.


이번 방학 자기주도학습 점검반에서 매일 플래너 인증샷을 올리도록 약속을 하였습니다. 어떤 학생이 인증샷 대신 이렇게 점검을 올렸습니다.

“대청소를 해서 2시간은 하려고 책상에 앉았는데 잠이 들었네요.. 하하하하하하하하”

저는 이렇게 댓글을 남겨주었습니다.

“잠들어도 책상에서 자는 절실함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힘내렴”


이렇게 댓글을 달아 준 것은 잠들었다는 것보다 책상에 앉았다는 것이 더 중요해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실제로 그게 시작이어야 합니다. 처음부터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부담은 빠른 포기를 부릅니다. 뭔가를 지속하는 힘이 되기도 하지만, 너무 빨리 지치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다이어트할 때뿐 아니라 우리는 늘 요요현상과 싸움을 합니다. 평소 안 하던 짓을 하면 원래대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오히려 하는 것 같지도 않은 찌질하고 초라한 동작이 지속성을 가져오고, 습관형성에 이르게 할 가능성을 높입니다.


물론 의지와 마음만으로는 안 되기 때문에 routine 같은 사소한 동작이 필요하긴 합니다. 마치 신호를 보내면 몸이 자연스럽게 반응할 때까지 반복적으로 스스로를 길들이는 것이죠. 그래서 침대에 누워서는 재미있는 걸 하면 안 됩니다. 침대는 재미있는 곳이 아니라 자는 곳이어야 하죠. 정말 잠을 잘 타이밍에 되어 침대에 누워서 자는 것이 반복되어야 침대에 누워 뒤척이며 잠 못 드는 일이 줄어듭니다. 그 선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죠.

그래서 학생들에게 강조했던 것이 아침에 일어나면 세수부터 하고 옷부터 갈아입으라는 것이었습니다. 학생들은 뭐 하러 옷까지 갈아입냐고 반발하였습니다. 학교 갈 때 잠옷을 입고 가지는 않는 것처럼, 특히나 집안에서 공부를 해보려는 의지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자는 것 같은 편안함과 명확한 선을 그어야 한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렇게 선을 명확하게 긋지 않으니 자는 듯 공부하고, 편안하게 책을 좀 보는 척하다가 바로 누워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냐고 말이지요.


저는 학원을 가지 않고 집에서 혼자 대입 재수를 했습니다. 아무리 학원 수업에서 배울 게 없더라도 학원을 가는 이유는 routine을 만들어 자연스럽게 공부로 이어지게 하는 것임을 그 과정에서 실감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정한 철칙은 기상시간을 일정하게 하는 것이었고, 세수하고, 옷부터 갈아입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학교 시간표처럼 공부시간과 쉬는 시간을 지키려고 애썼습니다. 그 시간이 애매해지고 경계가 모호해지면 곧 공부하는 건지 노는 건지, 쉬는 건지 뭔가를 하는 건지 구별이 안되는 생활에서 무력감만 학습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 번씩 변화를 주는 것은 그 틀을 유지하기 시작하여 조금은 익숙해질 때부터였습니다. 처음엔 힘들어도 매일 정한 사소하지만 일정한 신호 같은 것이 익숙해지면 점점 쉬워집니다. 아무리 쉬는 시간이 아쉬워도 학교에서 수업 시작 종소리를 들으면 자동으로 몸이 교실로 향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지요.


노력하고 반복하다 보면 지금처럼 힘들 이유는 없기 때문에 지속할수록 더 쉬워진다는 것은 큰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그런데 그게 흐름이 끊기면 안 되기 때문에 시작은 몸 풀 듯 사소하고 작아야 합니다.

그러면 열정을 발휘해서 뭔가 당장의 성과로 증명하려는 유혹에서 조금은 편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은 미시적 성취입니다. 결론을 정해놓지 않음으로써, 아무리 초라해 보여도 지금 이 순간의 출발점을 인정함으로써 이제부터는 한 걸음이 한 걸음이 모두 다 성취가 됩니다. 한 단어, 한 문제, 한 개념, 한 구절이 소중해집니다. 그것만으로 점수와 관계없이 성장하는 자신의 모습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게 행복걸음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한계를 인정합니다. 그 한계는 매일 다를 수도 있음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산술적인 공부시간의 합으로 기분이 좌우되는 것보다는 그게 더 효율적입니다.

결국 매일, 매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데서부터 감당할 수 있는 곳까지만 가면 됩니다. 그러다 보면 더 빠른 속도를 느낄 때가 있고, 적은 시간을 투자했는데도 더 많은 걸음을 내디딘 것을 보고 놀랄 때도 있을 겁니다.


진정한 실력 향상을 확인하는 것은 외적인 요소나 눈에 보이는 성과들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정한 스케줄에 따라 나타나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행복걸음을 내디디면서 행복했을 뿐인데 어쩌다 보니 도달해 있는 놀라움이 진정한 성장과 도달의 더 확실한 신호입니다.


큰 딸이 대학교 1학년 때 서울에서 밴드부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하였습니다. 매주 연습을 재미있게 하며 공연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코로나로 공연이 취소되었습니다. 딸에게 괜찮냐고 물으니까 좀 아쉽긴 하지만 매주 즐겁게 연습을 했고 그 긴 과정 중에 충분히 행복했으니 괜찮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후 관객없이 유튜브 라이브 콘서트를 진행하긴 했습니다.)

이 얘기를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해주었습니다. 결과만을 바라보지 말고 매 순간 즐겁고 행복한 과정이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서 말이지요.

그중 한 학생이 영어기말고사에서 한 문제 마킹 실수를 하여 1등급이 멀어진 것 같은 속상함에도 저한테 들었던 그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결과를 떠나서 그냥 즐겁고 행복하게 영어 공부를 했고 그만큼 영어실력이 늘고 자신감이 생겼으니 그걸로 괜찮다고 후회 없다고 자신의 소감을 제게 전했습니다.

그런데도 결국 영어에서 1등급을 받게 된 것을 확인하고는 예상치 못한 성취에 더 큰 기쁨을 표현하던 그 학생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저 과정 중에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여 행복했다면, 점수를 떠나서 분명 실력이 성장했을 것이고 과정 중의 행복만으로도 충분히 보상을 받은 거였습니다. 그런데 결과까지도 좋다면 덤으로 주어지는 보너스 같은 기쁨일 수 있다는 것을 그 학생은 체험한 것이죠.

수업시간에 들은 사소한 제 이야기도 마음에 담아 두었다가 삶에 적용하는 그 학생의 태도와 배움의 자세에 교사로서 전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어쨌든 그래서 늘 그랬듯 결론은 이겁니다.

행복할 만큼만.. 매 순간 행복할 만큼만... 언제까지나 행복할 만큼만...

그리고 자신은 그저 행복했을 뿐인데 마지막 걸음을 내디딘 곳에서 뜻밖의 결과와 성과에도 행복이 따르게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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