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시를 과연 포기해야 하는가?
1. 정시를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은?
정시의 경쟁력을 갖춘 사람은 분명히 있다. 특히 높은 수준의 고등학교일수록 그런 유형이 더 많아진다. 우수한 학생들이 몰려 있어 내신성적을 따기 어려울 경우 오히려 모의고사 성적이 훨씬 높은 경우다. 내신 4-5등급이고, 모의고사는 1-2등급이라면 내신에 맞춰 수시를 지원할 이유는 없다. 게다가 우수한 학생들이 몰려 있는 학교일수록 수능 수준에 맞는 수업이 가능하고 대다수의 학생들이 꾸준하게 공부하는 면학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어 환경을 넘어서려는 혼자만의 노력 없이도 분위기에 편승만 해도 수능 대비에 더 유리한 면이 있다. 물론 같은 학교라도 문과보다 이과 학반일수록 그런 경향은 더 두드러진다.
그러나 1,2학년의 모의고사 등급만으로는 함부로 속단하기 힘든 불안요소가 있다.
고3 때까지 지속적으로 꾸준히 열심히 할 수 있는지 여부도 사실 확신할 수 없는 데다가, 고3이 되고 실제 수능에서는 재수생과 숨겨진 N수생(상위권 대학생이 의대나 더 높은 수준의 대학을 가기 위해 반수를 하는 경우)의 유입을 고려할 때 영어(와 한국사)를 제외하고는 상대평가 시스템에서는 1-2등급이 하락할 수 있는 확률 높은 가능성도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신과 모의고사 성적이 비슷하거나 모의고사 성적이 내신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 경우 정시에 몰입하는 것은 확실히 위험부담이 크다.
물론 두 가지를 다 완벽하게 대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긴 하다.
예전 학교에서 서울대 의대를 수시와 정시로 합격한 학생들의 사례를 보면, 수시를 준비한다고 수능에 다소 소홀할 수밖에 없던 학생은 수시에서 합격하지 못했다면 정시로 서울대 의대 진학이 어려웠을 것이다. 반면에 정시를 노린 학생은 서울대 의대 아닌 의대진학이 가능한 내신성적을 갖추고 있었지만 수능에 대한 경쟁력을 고려하여 수시는 무시하고 정시만 올인해서 결국 서울대 의대에 정시로 합격했다. 이 학생의 경우 수시를 기웃거렸더라면 정시에서 원하는 성과를 거두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이 두 학생의 경우 수시와 정시를 모두 다 가지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울대 의대를 진학할 수 있었다. 물론 수시로 진학한 학생인 경우 수능에만 몰입했다면 서울대의대 합격이 가능했지만, 그 당시 내신 전교 1등으로 받을 수 있는 서울대 지역균형의 티켓을 활용하여 더 높은 확률을 잡은 건 현명한 선택이었다. 수능은 평소에 성적이 좋았더라도 실전에서 생각지도 못한 사소한 변수로 사소하게 어긋나기만 해도 목표성취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시의 경쟁력은 내신이 망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결국 내신성적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우수한 수능역량이다. 본인이 수능에 대한 어느 정도의 준비도와 적응과정을 거치고 있는지, 학년이 올라가고 문제가 더 어려워지고 극상위권 N수생들과 맞짱을 떠도 밀리지 않고 멘탈을 관리하면서 꾸준히 공부할 자신이 있는지를 따져보는 것이 중요하다.
2. 어쩔 수 없이 정시?
일단 게으른 사람은 정시를 선택 당한다. 내신성적만으로 진학하는 교과전형조차도 중간기말고사 외에도 과정평가라고 불리는 수행평가도 꼼꼼하게 다 감당해야 한다. 그리고 지원옵션을 늘리기 위해서 비교과도 함께 준비해야 한다. 그러나 다소 우수한 성적의 학생 중에서 그런 꼼꼼함도, 치밀함을 발휘하기 귀찮은 학생들은 수능공부가 정말 편하긴 하다. 매 순간 긴장할 이유도 없고, 귀찮게 이것저것 챙기지 않고 원하는 방향의 공부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 하나는 미리 기억해야 한다. 평소에 수시준비 학생들이 겪었던 마음의 부담을 수능 한 번으로 다 짊어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 압박감은 겪기 전에는 상상만으로 알 수 없다. 멘탈 갑인 큰 딸은 시험을 앞두고 라떼를 말하는 아빠에게 “내가 아빠를 닮았다면, 시험 전 날 이렇게 마음 편할 리가 없다”라고 말하곤 했는데, 수능을 앞두고는 사소한 것에도 감성이 폭발하고, 평소 안 하던 눈물도 흘리고, 불안하고 답답해하며 갑자기 집 밖으로 뛰쳐나가 한참을 걷고 돌아오곤 했다.
그래서 난 늘 정시파이터들에게도 이런 조언을 한다.
“어떤 경우에도 시험에 대한 예의를 다해라”
수능은 실력만이 아니라 평소 공부습관, 멘탈관리하는 것까지 함께 종합적으로 측정하는 시험이니, 시험이라는 기회에 어떻게 시험을 대할지에 대한 자세를 평소에 연습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3. 중간고사, 기말고사 치면 누구나 정시파이터, 원서 쓸 땐 누구나 수시지원자
이쯤에서 정시 파이터를 선언하는 심리를 보려 한다. 고등학교 수준에 관계없이 대부분은 마음에 드는 원하는 내신성적을 얻기 힘들다. 우수한 학교일수록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사소한 실수도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사실 어떤 수준의 학교라도 1등급에 수렴하는 학생들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이건 거의 인간승리나 다름없는 성취다.
한두 과목이라도 망쳤다는 생각이 들면 리셋 증후군 같은 마음으로 정시 파이터를 선언하기 쉽다. 이미 지나간 내신성적은 바꿀 수 없지만 수능은 지금부터 새롭게 역사를 만들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거기에는 인지부조화를 해결하려는 심리가 들어 있는 거다. 자신이 자존심으로 목표하는 대학에 이르지 못할 성적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우니 다른 가능성을 찾으며 마음이 편해지려는 심리다.
내신성적은 상대평가라서 문제가 어려웠어도 나 혼자 망친 게 아니라면 최악의 상황은 아닌 거고, 학년이 올라가면서 얼마든 최종 내신성적 산출값을 바꿀 기회도 있으며, 입시에는 늘 플랜B가 있기 마련인데 오히려 그런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감정에 치우쳐 판단하게 되면 내신에 대한 포기라는 너무 성급한 결론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선택이 치명적일 때는 이렇게 정시파이터를 선언하고 고3이 되었는데 생각보다 모의고사 성적이 더 잘 안 나오고,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재수생과 N수생이 존재감을 드러내는 9월 모의평가(게다가 아직 완전히 다 드러냈다고 볼 수 없다. 9월 모평을 응시 안 하고 수능을 응시하는 극상위권도 다수 존재하기 때문)에서 자신의 성적을 가채점 결과로만 비교해 봐도 오히려 망했다고 생각했던 내신에 의한 수시보다 나을 게 없을 경우다.
비슷한 성적이라면 오히려 수시가 훨씬 더 유리하다. 6개 카드를 쓸 수 있는 데다가 수시 비중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정시는 3개의 카드라고는 하지만 군별로 하나씩 지원하기 때문에 원하는 대학이 겹치거나, 합격 가능성을 둔 역학관계를 생각하면 결정하기 너무 어렵다. 게다가 다군은 원하는 대학이 목록에 거의 없어 보통은 가군, 나군 한 개씩 2개의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게 보편적이다.
그리고 수시지원의 경우 6개 카드인데다가 수능을 잘 칠 것도 아니면서 아직 정시의 기회가 남아 있다는 심리로 인해 보통은 상향지원을 하는 경우가 많다. 정시로도 갈 수 있는 적정 수준의 대학을 굳이 수시로 지원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불안한 마음에 정시보다 더 낮은 대학을 지원하거나, 결과적으로 수능성적이 좋았을 때에라도 어쩔 수 없이 합격한 수시대학에 끌려가는 소위 “수시납치”를 피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많은 학생들이 실제로 일어나지도 않을 수시납치를 당할 거라는 헛된 망상으로 수시의 기회를 다 날려버리는 경우도 있다. 고3 담임할 때 수시원서 쓸 때 그따위 대학은 안 간다고 코웃음을 치다가 정시로 근처로 못 가는 사례도 안타까울 정도로 많았다. 수시를 냈다면 쉽게 합격할 수 있었음에도...
그래서 수시합격의 비결 중의 하나는...
“남들 합격해서 후회할만한 대학을 지원한다.”
그러면 정시로 근처도 못 갈 대학을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도 한다.
어쨌든 지금의 성적으로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 정시파이터 선언에 신중할 이유가 된다.
그런데 정시 파이터 선언의 더 큰 이유는 공부하기 싫어서다. 내신의 부담을 감당하고 싶지 않아서다. 이런 학생들은 남들 내신시험 공부할 때 수능 공부를 해야 하는데 보통은 놀고 있다. 그리고 남들 중간고사 끝났다고 놀러 가는데 함께 놀러 간다. 결국 평소에 치열하게 공부하지 않을 이유를 찾는 가장 흔하고 죄책감 없는 선택인 것이다.
다시 말해 정시파이터를 선언하는 것은 중간, 기말고사를 망쳐서가 아니라 수능의 명확한 경쟁력, 그것도 이후에 훨씬 더 발휘될 수 있는 종합적 능력을 다 고려한 후에 신중하게 결정할 일이다.
4. 학종은 금수저전형인가?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의외로 교육특구가 아닌 지역에서 정시로 갈 수 없는 대학을 훨씬 더 잘 가는 기회가 되는 고른기회전형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때 내신 1등급을 다 찍고도 수능최저를 못 맞춰서 불합격하는 사례가 60%가 넘는 것을 감안하면, 수능에서 고득점을 받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운 일일 수도 있다. 내신보다 더 오랜 준비와 꾸준함이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며, 보통은 사교육의 혜택으로만 가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의 SAT등의 시험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는 현상이다. 집안의 재력이 수능이나 SAT의 고득점과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도 유의미한 통계라 볼 수 있다.
그러니 지금으로서는 수능으로 진학하는 정시전형이 진정 금수저 전형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모두가 원하는 서울 상위 15개 대학 중심으로 정시전형을 40%로 확대하게 된 배경도 이런 상황에 맞닿아 있다.
5. 수능은 왜 힘들고 어려운가?
일단 영어 절대평가가 된 영향이 크다. 영어를 빼면 자격시험처럼 평타만 치면 아무런 영향력이 없는 한국사를 제외하고, 국어, 수학, 탐구영역만 남는다. 그러니까 이 세 영역의 중요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탐구영역도 2과목만 응시한다. 예전에 4과목까지 응시할 수 있었지만 학생의 부담을 줄여준다고 2과목까지로 제한한 것이 오히려 역설적이게도 더 큰 부담을 가져왔다. 4과목을 응시해도 전략과목 2과목 외에는 전력을 다하지 않아 서로 모집단을 키워주며 등급 확보에 도움을 주고받았는데, 2과목으로 줄어들고 나니 모두가 두 과목에 다 집중하게 되고, 모집단은 절반으로 줄어들었고, 선택과목에 따라 모집단이 달라서, 만점을 받아야 1등급을 확보했다고 안심할 수 있는 지경이 되었다. 문제수가 많지 않아 과목에 따라서는 한 개 틀릴 때마다 등급이 하나씩 하락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그걸 만회할 방법이 뚜렷하지 않다. 상대평가 영역이 3개에 불과하며 모두 제한된 문항수에서 등급을 변별해야 하는 부담으로 소위 킬러문제들이 잠복해 있다. 실제로 수학의 경우 킬러문제는 사실상 의대생을 변별하는 문제다. 내가 아는 제자는 수학 킬러문제를 찍어서 맞혀 의대를 가기도 했다. 결국 수학 4점짜리 한두 문제가 의대여부, 명문대 여부를 결정한다. 물론 다른 영역의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전제로 하는 이야기다. 전체적으로 문항수가 많지 않으니 최상위권대학의 경우 문제 한두 개로 당락이 결정되고 지원 가능 여부도 달라진다. 이 상황에 실수는 용납되지 않아, 많은 학생들이 탐구영역의 한 과목 실수로 재수를 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이 상황에서 변별의 사명을 띠고 국어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
제일 만만한 탐구영역도 모두가 다 몰입을 하니 킬러문제가 자꾸 영향력을 발휘한다. 시간 내 풀 수 없는 문제도 배치가 되기 때문에 시간싸움이 되기도 한다. 이런 현상 타임어택이라는 용어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평소에 모의고사가 잘 나와도 불안할 수밖에 없다. 모의고사는 수능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매년 수능의 난이도가 다르다. 그리고 자신에게 유리한 조합의 문항이 출제될 수도 있다. 내가 아는 학생 중 자신 있던 물리분야가 국어 독서지문으로 나와 어려워진 상황에서 표준점수 대박 난 사례로 있었다.
수능대박은 보통 자신 있는 분야의 문제가 어렵게 나올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평소의 성적에 좌절할 이유는 없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면 여전히 기회는 있다. 수능대박은 멈추지 않은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니까...
늘 강조하지만 평가원모의고사라도 여전히 수능은 아니다. 6월, 9월 평가원 모의고사는 최적화된 시험이라기보다 수능의 최적화된 난이도를 위해 시험해 보는 성격이 크다. 자신의 점수에 기복이 있다면 그 원인을 철저히 분석해서 대비하면 된다. 그리고 그건 자신의 실력이 들쭉날쭉해서가 아니라 시험 난이도가 들쭉날쭉해서인 거다. 물론 충분한 실력보다 그 이상의 실력을 안정적으로 갖추면 난이도에 관계없이 좋은 성적을 받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그 성적이 수능성적은 아니다. 오히려 일찌감치 이뤄낸 모의고사 높은 성적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방심하게 만들어 수능 때까지 노력을 멈칫하는 악영향이 되기도 한다.
6. 정시의 불안요소
1) 수시보다 정시 비중이 압도적이라는 정시의 한계가 있다. 입시제도가 어떻게 달라지냐에 따라서 비중은 가변적이지만, 지방대나 전문대의 경우는 수시의 비중을 줄일 의무도 없고, 줄일 여력도 없다. 대학 측에서 수시의 장점은 학생을 선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렬로 줄을 세워서 한 가지 잣대로 동시에 선발해야 한다면 대학의 서열과 서열에 따른 학생선발도 고정될 것이다. 정시비중이 커졌다는 것은 모두가 원하는 서울 상위권 대학 15개에 해당되는 것이며 대부분의 대학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막연하게 내신성적을 망쳤다고 정시만 바라보고 있다가 충분히 갈 수 있는 대학들을 놓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먼저 해야 한다. 확고하게 정시만 바라보던 학생들도 수능 직전 9월 평가원 모의고사를 치르고는 수시로 대거 돌아선다. 성적이 생각보다 잘 안 나와서이기도 하지만, 모두가 수시원서를 쓰는데 혼자 묵묵히 정시에만 집중하기에는 상대적 박탈감까지 느끼며, 기회도 빼앗긴다는 느낌이 절실해지기 때문이다.
수시의 장점 중 하나는 모든 대학을 제한 없이 다 써볼 수 있다는 것이다. 정시로는 서울대를 쓰고, 연세대와 고려대 중 하나를 골라야 하지만, 수시는 다 쓸 수 있다. 면접일 등이 겹치더라도 다 썼다가 선택해서 가면 된다.
2) 최상위권이 너무 촘촘하게 몰려 있다. 최상위권 대학을 노리지 않는다면 한두 문제로 대 학 선택에 큰 영향이 없을 수도 있지만, 학과 선택에 압박감으로 작용할 수는 있다. 안정권이냐 아니냐는 결국 한두 문제로 결정되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상위권을 변별하기 위한 문제에 대한 부담도 커서 마음을 완전 비우지 않으면 좌절감도 크게 느낄 수 있다.
3) 변수싸움일 수도 있다. 난이도, 자신에게 맞는 문제 유형과 소재, 선택과목 유불리, 당일 컨디션 등 예측할 수 없는 많은 것들과 맞서야 한다. 그저 평소에 철저한 준비로 흔들리지 않는 실력과 멘탈을 관리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4) 생각보다 큰 압박감에 실력 발휘를 제대로 못하고 무너져 내릴 수도 있다. 1교시 마치고 바로 귀가하는 극단적인 경우는 그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들으려 하지 않아도 다른 학생들이자기 답을 정답처럼 주장하는 소리가 그렇게 잘 들릴 수 없다. 그럴 때 흔들리지 않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평소의 멘탈관리와 당당한 실력쌓기가 더 필요하다.
7. 대학은 왜 수시를 선호할까?
일단 수시입학생들은 대개 성실하다. 모든 영역에서 빈틈없이 성실하고 인성도 어느 정도 이상 갖춘 학생들이 학생부종합전형의 인재다. 대학생들끼리도 출석이나 과제에 성실한 학생들을 자기들끼리 학생부종합형 인간이라고 말한다고 한다.
8. 정사파이터에 대한 어른들의 시각
정시전형은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를 얻기 힘들다. 모의고사 자체가 금방 성과가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고 늘 떨어질 위험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며, 그로 인해 안정적인 실력을 갖추기 전까지는 성적의 기복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성실함을 미덕으로 본다. 그리고 정시는 통계적으로 보나, 막강한 N수생의 존재감으로 보나 좁은문으로 보이는 게 당연하고 실제로도 그렇다. 그리고 아이들이 당장의 기분으로 정시라는 생각을 할 수 있지만 지속적인 노력이 보장된 이성적 판단인지에 대해서는 여간해서 신뢰를 보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부모님들은 입시를 잘 알건 모르건 정시파이터들을 진심으로 지지해 주기 어려운 것이다. 그런 상황을 넘어설 수 있는 강인함이 정시파들의 자격조건일지도 모른다.
9. 정시파이터의 자세
routine 즉 일상으로 승부한다. event가 아니도록 만드는 게 중요하다. 내신 시험은 평상시에 수행평가가 있더라도 결국 event적인 시험관리가 먹히는 학교가 많다. 그러나 수능은 다르다.
일희일비하는 자세에서 벗어나야 한다. It ain’t over till it’s over.라는 말을 품을 수 있는 자만이 정시파이터 자격이 있다. 그리고 당장 어떻게든 증명하려 애쓰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기웃거리지 않아야 한다. 수시파들도 수시원서쓰고 마음 놓거나 고민이 많아져서 수능최저를 문턱에서 못 맞추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매순간이 공부 안할 이유인 지뢰밭이다. 그걸 이길 수 있는 힘은 열정도 의욕도 아니다. 그저 호흡하듯 의식하지 않는 습관의 형성에 따른 평온한 일상의 반복이다. 당장의 성취를 욕심내지는 않지만 그래도 매순간 성장에 기뻐하며 의미를 부여하면 결코 지루한 길도 막막한 길도 아니다. 할 수 있는 역량만큼만 이뤄내면 되는 거다.
내신은 매 순간 완전한 수준의 중간성과를 요구한다. 그러나 수능은 정말 기본부터 제대로 성장하며 해나갈 수 있다. 위에서 이야기한 여러 가지 요인들을 극복할 경우에 주어지는 배움과 성장의 축복이다.
10. 정시파이터들에게 당부
1) 자신만의 성장에 집중한다. 다른 학생들과의 경쟁과 당장의 성적은 자신의 성장을 점검하는 이성적인 판단 외에 감정적인 성취감이나 좌절감으로 포장하지 않도록 애써야 한다. 특히 더 위험한 것은 너무 좋은 성적이 나올 때이다. 모의고사를 자신의 실력을 객관화하는 기회로 생각하되 자신의 실력이 온전히 드러난 건 아니라는 자세가 중요하다. 모의고사로 객관화되지 않은 자신의 실력과 노력은 하나라도 새어나가지 않고 수능에서 드러날 것이다. 수능은 각자의 실력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드러내도록 많은 출제위원들이 합숙하며 피와 땀으로 만든 문제이기 때문이다.
2) 아무리 마음이 급해도 출발점을 인정하고, 자신만의 속도를 받아들인다. 지금 초라한 출발이라도, 속도가 느려도 괜찮다. 시간이 더 지나면 더 이상 그곳에 있지도, 그 속도 그대로이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조급함으로 자신의 출발점을 받아들이지 않고 남의 속도나 진도에 맞추려고 한다면 노력은 죽으라고 하는데 성적은 죽으라고 안 오르고 정체되며 재수해서도 다를 게 없는 신기한 현상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3) 수능은 벼락치기와 다르다. 암기보다 이해능력에 특화된 시험이다. 국어의 경우 그 작품이나 글에 대해 알고 있냐는 지식이 아니라 스스로 해석할 수 있는지의 본질적인 역량을 평가한다. 수학도 반복해서 암기하듯 유형을 익혀서 점수를 얻는 내신과는 다르게 완전 새로운 느낌의 문제를 만나게 되어 있다. 영어지문도 EBS 직접연계되는 소수의 지문을 제외하고는 완전 처음 보는 지문이다. 그래서 공부방법도 그에 맞춰야 한다. 특히 국어와 영어는 매일 조금씩이라도 낯선 글을 꾸준히 읽는 습관이 필요하다. 영어의 경우에는 꾸준히 읽을 수 있는 기본기(어휘, 핵심문법, 구문독해력)를 빨리 먼저 갖추는 게 우선이다.
습관이 들 때까지 처음에는 의식하면서 애써서 노력해야하지만 이내 힘들지 않게 공부할 수 있게 된다. 수능공부는 공부한 것 같지도 않게 호흡하듯 밥 먹듯 하는 것이 핵심이다. 소문내면서 뭔가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도 납득시키기 위해서(당장 성적이 잘 안 나오니 그런 열정을 보여야 할 것 같은 막연한 두려움에) 요란하게 공부하는 건 지속성을 얻기 어렵다. 초라해 보이는 한 걸음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걸 멈추지 않는 사람에게만 정시파이터로 당당하게 수능장에 서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