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그냥 말하면 되지 않는가.

알레고리와 단테 신곡 사이 어디쯤

by 달숲작가

커피 마시며 단테 — Coffee with Dante

# 4


알레고리와 단테

보이는 것 너머에 있는 것을 쓰는 법


직접 말하면 되지 않는가. 진실을 그냥 말하면 되지 않는가.


그 질문이 오래 남는다. 우리는 왜 돌아서 말하는가. 왜 이야기를 만드는가. 왜 비유를 쓰는가. 진실이 있다면 그냥 말하면 되지 않는가.


그러나 진실은 때로 직접 말해서는 닿지 않는 곳이 있다. 인간의 마음 깊은 곳. 그곳에는 논리가 아니라 이야기가 닿는다. 설명이 아니라 비유가 닿는다. 개념이 아니라 이미지가 닿는다. 우리는 개념으로 변하지 않는다. 이야기로 변한다.


단테는 그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지옥을 설명하지 않고 걸어 들어갔다. 죄의 목록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죄인들의 얼굴을 보여주었다. 그것이 알레고리다.


알레고리(allegory)란 무엇인가. 표면의 이야기 아래 다른 이야기가 흐르는 것.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문학적 언어. 단테의 지옥은 지옥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의 지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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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위대한 문학은 두 겹으로 되어 있다. 겉에는 이야기가 있다. 사람이 걷고, 말하고, 죽고, 살아난다. 그러나 그 아래에는 다른 이야기가 있다. 보이지 않는 이야기. 겉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안의 이야기를 읽는다.


알레고리(Allegoria). 그리스어로 '다른 것을 말하다(allos + agoreuein)'. 하나를 말하면서 다른 것을 가리키는 것. 손가락이 달을 가리키는데, 우리는 손가락이 아니라 달을 보아야 한다. 알레고리는 그 손가락이다.


단테는 그 손가락을
가장 정교하게 만든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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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겹의 의미 — 단테의 원칙


단테는 『향연(Convivio)』에서 직접 말했다. 글에는 네 가지 의미가 있다고. 그는 『신곡』을 이 네 겹으로 썼다. 표면에는 한 남자가 지옥과 연옥과 천국을 여행하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그 아래에는 인류의 죄와 구원이 있고, 그 아래에는 도덕적 지침이 있고, 가장 깊은 곳에는 신을 향한 영혼의 여정이 있다.


Quattro Sensi — 단테의 네 겹 의미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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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이야기가 네 개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그것이 단테가 쓴 방식이다. 그리고 그것이 『신곡』이 칠백 년이 지나도 읽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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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아트리체와 베르길리우스 — 살아있는 알레고리


Personaggi Allegorici — 알레고리로 읽는 두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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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길리우스가 천국의 문 앞에서 물러나는 장면은 그래서 슬프다. 이성의 한계. 아무리 위대한 지성도 혼자서는 닿을 수 없는 곳이 있다는 것. 그 자리에서 베아트리체가 온다. 은총이 이성의 손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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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의 구조 — 죄의 철학


지옥의 구조 자체가 알레고리다.

단테의 지옥은 아홉 개의 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죄가 깊을수록 중심에 가까워진다. 그 구조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에서 왔다.


Struttura dell'Inferno — 지옥의 알레고리적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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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만이 폭력보다 더 깊은 지옥에 있는가. 폭력은 짐승도 한다. 그러나 기만은 인간만 한다.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고귀한 능력 — 이성과 언어 — 을 가장 나쁜 목적에 쓰는 것. 그것이 기만이다. 지옥의 구조는 단순한 공간 배치가 아니다. 그것은 죄의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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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 아래를 보라



O voi che avete li 'ntelletti sani,
mirate la dottrina che s'asconde
sotto 'l velame de li versi strani.
오, 건강한 지성을 가진 그대들이여,
이 기묘한 시구의 베일 아래 숨겨진
가르침을 바라보라.


— 단테, 『신곡』 지옥편 제9곡


단테는 독자에게 직접 말한다. 베일을 보지 말고, 베일 아래를 보라고.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야기 너머를 읽으라고. 그것이 알레고리를 읽는 법이다.


그러나 그것은 알레고리를 쓰는 법이기도 하다. 베일을 만드는 것. 이야기를 쓰면서 이야기 너머를 가리키는 것. 보이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


알레고리는 희망의 언어다.

지금 말할 수 없는 것을 나중에 말하기 위해, 직접 말할 수 없는 것을 돌아서 말하기 위해 — 베일을 만드는 것. 그 베일이 진실을 보호하고, 동시에 진실을 전달한다. 단테가 교황을 지옥에 집어넣고도 살아남은 이유가 거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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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l suo profondo vidi che s'interna,
legato con amore in un volume,
ciò che per l'universo si squaderna.
그 깊은 곳에서 나는 보았다,
사랑으로 한 권의 책 속에 묶인,
우주 속에 흩어져 있는 모든 것을.


— 단테, 『신곡』 천국편 제33곡


단테는 천국편의 마지막에서 말을 잃는다. 신의 빛 앞에서. 언어가 닿지 않는 곳에서. 그는 고백한다 — 내가 본 것을 말할 수 없다고. 그러나 그는 쓴다. 말할 수 없는 것을 쓴다. 알레고리로. 비유로. 빛의 이미지로.


우주가 한 권의 책이다.
그 책을 묶는 것은 사랑이다.

직접 말하면 되지 않는가. 그 질문이 글을 쓸 때마다 돌아온다.


내가 쓰는 글에도 겹이 있는가. 겉에는 이야기가 있고, 그 아래에는 다른 이야기가 있는가. 나는 손가락을 쓰고 있는가, 아니면 달을 가리키고 있는가.


좋은 글은 말하지 않는다. 가리킨다.

독자가 스스로 도달하도록 길을 만들어준다.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동행하는 것. 단테가 베르길리우스와 함께 걸었듯이, 독자와 함께 걷는 것.


한 문장씩. 한 이미지씩. 베일을 만들고, 그 아래에 진실을 놓는다.


달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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