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위대한 이야기는 혼자 태어나지 않는다.

호메로스에서 출발하는 단테 신곡 사이 어디쯤

by 달숲작가


커피 마시며 단테 — Coffee with Dante

#2


호메로스에서 출발하는 단테 신곡

지하세계로 내려간 자들의 계보,

그리고 그 끝에서 별을 본 시인


모든 위대한 이야기는 혼자 태어나지 않는다.


단테의 『신곡』을 처음 읽는 사람은 묻는다. 왜 단테의 안내자는 시인 베르길리우스인가. 왜 하필 로마의 시인이 지옥과 연옥을 함께 걷는가. 그 질문의 답은 단테보다 훨씬 앞에서 시작된다. 호메로스에서 시작된 하나의 흐름이 베르길리우스를 거쳐 단테에게 닿았고, 단테에서 다시 흘러 지금 우리에게까지 왔다.


문학은 강이다. 혼자 흐르는 강은 없다.


· · ·

<지하 세계를 걸은 자들의 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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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호메로스는 지하세계를 처음 언어로 만들었다. 『오디세이아』 제11권, 오디세우스는 마법사 키르케의 지시에 따라 저승의 입구로 내려간다. 그곳에서 그는 죽은 자들의 혼령을 만난다. 어머니의 혼은 아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아킬레우스의 혼은 산 자의 세계를 그리워한다.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만이 또렷한 목소리로 말한다.



나는 차라리 땅 위에서 남의 머슴으로 살겠소.
아무 재산도 없는 가난한 사람 밑에서라도.
죽은 자들 모두를 다스리는 왕이 되기보다는.

— 호메로스, 『오디세이아』 제11권 · 아킬레우스의 혼



영웅 아킬레우스가 저승에서 고백한다. 죽은 자들의 왕보다 산 자들의 머슴이 낫다고. 이것이 호메로스가 지하세계를 통해 말하려 한 것이다 — 삶은 죽음보다 낫다. 아무리 초라한 삶이라도.


· · ·


베르길리우스는 호메로스를 읽었다. 그리고 그 지하세계를 로마의 언어로 다시 썼다.


『아이네이스』 제6권에서 아이네아스는 쿠마이의 무녀 시빌라의 안내를 받아 저승으로 내려간다. 그곳에서 그는 아버지 안키세스를 만난다. 안키세스는 아들에게 로마의 미래를 보여준다. 앞으로 태어날 영웅들의 얼굴들. 아직 오지 않은 역사.



Facilis descensus Averno;noctes atque dies patet atri ianua Ditis.


아베르누스로 내려가는 길은 쉽다. 저승의 검은 문은 밤낮으로 열려 있다.

— 베르길리우스, 『아이네이스』 제6권



내려가는 것은 쉽다. 문제는 돌아오는 것이다.


베르길리우스는 알고 있다. 지하세계로의 하강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살아서 돌아오는 것은 선택받은 자만이 할 수 있다고. 단테도 이 문장을 읽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여정을 시작했을 것이다.



· · ·


단테가 베르길리우스를 안내자로 선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나는 스승인 당신에게서 배웠다는. 당신의 언어가 나를 만들었다는. 단테는 지옥의 첫 관문에서 베르길리우스를 만나자마자 말한다.


Tu se' lo mio maestro e 'l mio autore.

당신은 나의 스승이고 나의 근원입니다.

— 단테, 『신곡』 지옥편 제1곡



스승과 제자가 함께 지옥을 걷는다.


그러나 연옥의 꼭대기에서 베르길리우스는 멈춘다. 이성이 닿을 수 있는 끝이 거기다. 그 너머는 사랑이 이끌어야 한다. 베아트리체가 나타나고, 베르길리우스는 사라진다. 단테는 스승 없이 혼자 천국을 향해 오른다.


스승은 제자가 혼자 설 수 있는 곳까지만 데려다준다.

그 이후는 제자의 몫이다.



· · ·


단테 이후, 그 문은 닫히지 않았다.


존 러스킨은 단테를 읽고 예술의 도덕성을 논했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단테의 기억과 시간을 자신의 소설 속에 녹였다. T.S. 엘리엇은 『황무지』에서 단테의 지옥을 현대 도시로 소환했다. 보르헤스는 단테를 평생의 책이라 불렀고, 그의 미로 같은 소설들은 『신곡』의 구조를 닮았다.


그리고 지금, 여행 문학이라는 장르 전체가 단테의 후예다. 낯선 곳으로 떠나고, 그곳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변화한 채로 돌아오는 이야기. 그것은 지옥을 통과해 천국에 닿는 단테의 구조와 다르지 않다.




· · ·


문학은 혼자 쓰이지 않는다.


호메로스가 없었다면 베르길리우스가 없었고, 베르길리우스가 없었다면 단테가 없었다. 단테가 없었다면 엘리엇도, 프루스트도, 보르헤스도 달랐을 것이다. 그 흐름은 지금 이 순간에도 멈추지 않고 있다.


우리가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 강에 발을 담그는 일이다. 수천 년 전 시인의 목소리가 지금 내 귀에 닿는 것. 죽은 자들의 언어가 살아 있는 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 그것이 문학이 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기적이다.


L'amor che move il sole e l'altre stelle.

태양과 다른 별들을 움직이는 사랑.

— 단테, 『신곡』 천국편 마지막 행


호메로스는 삶이 죽음보다 낫다고 했다. 베르길리우스는 내려가는 것은 쉽지만 돌아오는 것이 어렵다고 했다. 단테는 그 모든 것을 통과한 끝에서 사랑이라는 단어 하나를 붙잡았다.


세 사람이 같은 곳을 향해 걸었다. 다른 시대에, 다른 언어로, 다른 길을 통해. 그러나 그들이 마지막에 가리킨 것은 같았다. 살아야 한다는 것. 어둠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 결국 사랑이라는 것.


커피가 아직 따뜻하다면, 잠시 그 이름들을 입 안에서 굴려보라. 호메로스. 베르길리우스. 단테. 수천 년의 시간이 음절들 안에 담겨 있다.


달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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