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갈 수 없게 된 날부터,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

정치 도시 피렌체와 단테 신곡 사이 어디쯤

by 달숲작가

커피 마시며 단테 — Coffee with Dante

# 3


피렌체와 단테

추방당한 자가 쓴 가장 아름다운 복수,

그리고 어머니처럼 안아주는 이성에 대하여


돌아갈 수 없게 된 날부터,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

1302년, 단테는 피렌체에서 영구 추방 선고를 받는다.

돌아오면 화형. 그것이 고향이 그에게 내린 판결이었다. 그는 짐을 꾸릴 시간도 없었다. 작별 인사를 건넬 틈도 없었다. 그날 이후 단테는 평생 피렌체의 성벽 안으로 발을 들이지 못했다. 그리고 그날 이후, 『신곡』이 시작되었다.


추방이 없었다면 신곡도 없었다. 상실이 없었다면 언어도 없었다.


단테는 고향을 잃은 대신 세계를 얻었다. 그러나 그것이 위로가 되었을지는 — 아무도 모른다. 그는 끝내 피렌체로 돌아가지 못하고 라벤나에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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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피렌체 — 보이지 않는 주인공


피렌체는 『신곡』 전체를 관통하는 보이지 않는 주인공이다.


단테는 지옥에서 피렌체 출신 죄인들을 수없이 만난다. 그들 중 많은 이가 자신을 추방한 정적들이다. 단테는 그들을 지옥의 각 층에 배치하고, 그들의 죄를 영원히 기록했다.


이것이 단테의 복수였다. 칼이 아니라 문장으로. 권력이 아니라 언어로. 그는 자신을 추방한 자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아니, 그는 지금도 살아 있다. 그를 추방한 자들의 이름은 잊혔지만, 단테의 이름은 남았다.



아, 피렌체여!
네가 그토록 위대하여
육지에서도 바다에서도 네 날개를 펼치고,
지옥에서도 네 이름이 퍼져 있구나!

— 단테, 『신곡』 지옥편 제26곡


찬사처럼 들리지만 조롱이다. 피렌체의 죄인들이 지옥에 가득하다는 것.


그 위대한 도시가 지옥에서도 이름을 떨친다는 것. 단테는 웃으며 썼을 것이다. 혹은 울면서. 사랑과 증오는 같은 온도를 가진다.


· · ·


지옥편 제23곡 — 어머니가 된 이성


지옥을 걷는 단테는 두려워한다. 실수한다. 때로 주저앉고 싶어한다.


그것이 『신곡』이 위대한 이유다. 완벽한 영웅의 이야기가 아니라, 겁먹은 인간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독자는 신이 아닌 단테와 함께 지옥을 걷는다.


지옥편 제23곡. 악마들에게 쫓기는 장면이다. 단테는 앞에서부터 악마들을 '매' 또는 '날짐승'으로 표현해왔다. 그리고 이 장면에 이솝 우화를 겹쳐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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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는 앞으로 일어날 상황을 모르는 채로 이 우화를 떠올렸다.

이것이 시인의 직관이다. 논리보다 먼저 진실에 도달하는 것. 이성이 계산을 끝내기 전에, 시인은 이미 알고 있다.

그리고 이 곡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 나온다. 악마들이 쫓아오자, 베르길리우스가 단테를 품에 안는다.


선생님은 얼른 단테를 안고서
다음 구렁으로 미끄러져 내려간다.
그 모습은, 자다가 집에 불이 난 것을 발견한
어머니가 속옷만 걸친 채 아이를 안고서
집을 빠져나오는 것에 비유되었다.

— 단테, 『신곡』 지옥편 제23곡


이성의 안내자 베르길리우스가 결정적 순간에 어머니가 된다.


논리가 사랑이 되는 순간이다. 계획이 아니라 본능. 판단이 아니라 반사. 그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안았다.

우리를 구하는 것은 언제나 논리가 아니라 사랑이다.


· · ·


금빛 납 외투 — 위선의 형벌


악마들을 피해 내려온 단테는 새로운 구렁에서 또 다른 죄인들을 만난다. 느리고 지친 발걸음으로 눈물 흘리며 걷는 자들. 그들이 입은 것은 금빛 외투다. 그러나 그 안은 납이다.


겉 :금 빛 — 화려하고 거룩해 보인다

속 :납 — 극도로 무겁고 고통스럽다


그들은 영원히 그 무게를 지고 걷는다.


살아서 걸쳤던 화려한 외투가 죽어서 형벌이 되었다.


단테의 지옥은 공정하다. 각자가 살면서 선택한 것이 그대로 형벌이 된다. 위선자들은 겉과 속이 달랐다. 그러니 형벌도 겉과 속이 다르다. 금빛이지만 납이다. 아름답지만 고통이다. 단테는 위선의 본질을 물리적 구조로 완벽하게 표현했다.


피렌체의 정치인들, 성직자들, 위선자들이 여기 있다. 단테를 추방한 자들이 여기 있다. 그들은 영원히 그 무게를 지고 걷는다. 느리고 지친 발걸음으로. 눈물을 흘리며.


· · ·


돌아갈 수 없게 된 날부터,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


단테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어느 날 문이 닫힌다. 되돌릴 수 없는 선택, 돌아갈 수 없는 관계, 다시 살 수 없는 시간. 그 문이 닫히는 순간을 우리는 상실이라 부른다. 그러나 단테는 그것을 신곡으로 출발했다.


베르길리우스가 단테를 안고 달아나는 장면에서 나는 오래 감동했다. 이성의 안내자가 어머니가 되는 그 순간. 단테의 글에서 결정적 문장은 언제나 본능처럼 나온다는 것이 느껴진다. 계획한 문장이 아니라 터져 나온 문장이 독자의 가슴에 남는다.


글쓰기도 그런 것이 아닐까. 돌아갈 수 없게 된 날들이 쌓여 문장이 된다. 상실이 언어가 되고, 추방이 서사가 된다. 단테가 그것을 증명한다. 칠백 년 전, 피렌체의 성문 밖에서.


달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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