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깊은 어둠이 가장 밝은 빛의 출구다.

루치페로와 단테 신곡 사이 어디쯤

by 달숲작가

커피 마시며 단테 — Coffee with Dante

# 5


루치페로와 단테

단테가 설계한 가장 위대한 역설

빛을 가져오던 자가 어둠의 중심이 되기까지


가장 깊은 어둠이 가장 밝은 빛의 출구다.

단테는 지옥의 가장 깊은 곳에서 루치페로를 만난다. 그리고 그를 통과해 나온다. 그러나 그 단순함 안에 단테가 설계한 가장 위대한 역설이 있다.

가장 아름다웠던 자가 가장 깊은 곳에 있다. 불꽃처럼 빛났던 존재가 이제 얼음 속에 갇혀 있다. 한때 신의 곁에서 빛을 발했던 자가, 이제 그 빛을 잃고 어둠의 중심이 되었다. 단테가 루치페로를 마주했을 때, 그것은 공포의 장면이 아니었다.

그것은 슬픔의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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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빛을 가져오는 자

루치페로(Lucifero). 라틴어로 빛을 가져오는 자(Lux + ferre)다. 새벽별, 금성의 이름이기도 하다. 가장 먼저 뜨고 가장 늦게 지는 별. 어둠 속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존재.

그 이름을 가진 자가 지금 지구의 중심, 얼음 속에 박혀 있다. 단테는 이 이름을 그대로 신곡에 썼다. 그가 한때 무엇이었는지를 잊지 않게 하기 위해서. 이름과 존재의 극단적 대비. 빛을 가져오던 자가 이제 빛이 없는 곳의 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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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의 얼굴 — 삼위일체의 패러디

단테가 묘사한 루치페로는 우리가 상상하는 악마와 다르다. 그는 세 개의 얼굴을 가졌다. 신이 세 위격으로 완전하듯, 루치페로는 세 얼굴로 완전히 타락했다.


Tre Facce — 루치페로의 세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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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섯 개의 날개. 스랍(세라핌)의 날개다. 신의 보좌 가장 가까이에 있는 천사의 날개. 루치페로는 그 날개를 아직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날개가 지금 하는 일은 하늘을 나는 것이 아니다. 날개짓이 바람을 만들고, 그 바람이 코키토스 강을 얼린다.

탈출하려 할수록 더 깊이 갇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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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입 — 두 종류의 배신


Tre Bocche — 루치페로의 세 입에 물린 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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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에게 세계는 교황권과 황제권으로 이루어진다. 그 두 축의 정점을 배신한 자들이 가장 깊은 곳에 있다. 배신은 사랑의 완전한 소멸이다. 믿었던 자를 배신하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이 완전히 죽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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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불이 아니라 얼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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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에게 죄의 본질은 사랑의 왜곡이다.

사랑이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거나, 사랑이 지나치거나, 사랑이 부족한 것. 그 중에서 가장 깊은 죄는 사랑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루치페로는 그 얼음의 중심에 있다. 신을 사랑하다가 신을 배신한 자. 가장 뜨거웠던 사랑이 가장 차갑게 얼어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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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역설

I 가장 강한 자가 갇혀 있다


루치페로는 지옥에서 가장 크고 가장 강한 존재다. 하지만 그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날개를 퍼덕일수록 얼음이 두꺼워진다. 진정한 무력함은 힘이 없는 것이 아니다. 힘이 있어도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II 가장 아름다웠던 자가 가장 추하다


빛을 가져오던 자, 신의 곁에서 빛났던 자가 이제 세 개의 얼굴을 가진 괴물이 되었다. 아름다움이 타락하면 추함이 된다. 높이 올라갔던 것이 떨어지면 더 깊이 추락한다.


III 지옥의 왕이 지옥의 죄수다


루치페로는 지옥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지옥의 가장 깊은 곳에 박혀 있다. 왕이 가장 비참한 죄수다. 지배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은 가장 깊이 갇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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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치페로는 울고 있다

여섯 눈에서 눈물이 흘렀고,
세 턱에서 피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 단테, 『신곡』 지옥편 제34곡


지옥의 왕이 울고 있다. 단테는 이유를 굳이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독자는 느낀다. 후회인가. 고통인가. 아니면 자신이 무엇을 잃었는지 알기 때문인가.

한때 빛이었던 자가, 이제 어둠의 중심에서 영원히 운다. 그 눈물이 얼어붙어 자신을 더 깊이 가둔다. 울수록 더 갇힌다. 슬퍼할수록 더 얼어붙는다. 이것이 단테가 설계한 가장 잔인한 형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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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치페로를 통과하다


단테와 베르길리우스는 루치페로의 몸을 타고 지구 반대편으로 빠져나온다. 지구의 중심을 지나는 순간, 위아래가 뒤집힌다. 루치페로의 다리가 위로 향하고, 머리가 아래로 향한다. 단테는 혼란스러워한다.


우리는 지구의 중심을 통과했다.
이제 반대편이다.

— 베르길리우스, 『신곡』 지옥편 제34곡


루치페로는 지구의 중심에 박혀 있다. 그의 몸이 지구를 관통한다. 그를 통과해야만 지옥을 빠져나올 수 있다. 가장 깊은 어둠을 통과해야만 빛으로 나올 수 있다. 루치페로는 지옥의 끝이자, 동시에 출구다.


추방당한 자가 가장 깊이 추락한 자를 본다. 고향을 잃은 자가 하늘을 잃은 자를 본다. 단테는 루치페로에게서 자신의 그림자를 보았는지 모른다. 오만과 추락. 빛과 어둠. 한때의 영광과 현재의 비참함. 루치페로는 단테의 가장 깊은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두려움을 통과해야 별을 볼 수 있다.


e quindi uscimmo a riveder le stelle.

그리하여 우리는 나왔다, 다시 별들을 보기 위해.

— 단테, 『신곡』 지옥편 제34곡 · 마지막 행


지옥편의 마지막 단어는 별(stelle)이다. 연옥편의 마지막 단어도 별이다. 천국편의 마지막 단어도 별이다. 단테는 『신곡』의 세 편을 모두 별로 끝낸다.

루치페로는 빛을 가져오는 자였다. 하지만 이제 그는 빛이 없는 곳의 중심에 있다. 그를 통과해 나온 단테는 별을 본다. 빛을 잃은 자를 통과해야 빛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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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치페로는 울고 있다.
얼음 속에서, 영원히, 혼자.

눈물이 얼어붙어 자신을 가두고, 날개짓이 바람을 만들어 자신을 더 깊이 얼린다. 탈출하려는 모든 시도가 더 깊은 감금이 된다.
지옥은 신이 만든 감옥이 아니다. 자신이 만든 감옥이다. 우리도 그렇게 살 때가 있다. 탈출하려 할수록 더 깊이 갇히고, 벗어나려 할수록 더 단단히 묶이는 것들. 그것이 우리 안의 루치페로다.
별은 언제나 거기 있었다. 다만 통과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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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깊은 어둠이 가장 밝은 빛의 출구다. 곧 나 자신을 생각했다.


우리 안에도 루치페로가 있다. 탈출하려 할수록 더 깊이 갇히는 것들. 날개를 퍼덕일수록 더 두꺼워지는 얼음. 그것은 때로 집착이고, 때로 후회이며, 때로 자신이 만든 이야기 속에 스스로를 가두는 것이다.


단테는 루치페로 앞에서 오래 머물지 않았다. 보고, 통과하고, 떠났다. 그것이 답이다. 어둠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통과하는 것. 두려움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걸어 들어가는 것.


그리고 나오면 — 별이 있다.


달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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