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나고 슬픈 일들
내가 가르쳐야만 하는 아이들의 교재에는 어처구니없는 이야기가 많이 수록되어 있다.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는 다시 읽어보자면 그저 성범죄자 납치범과 피해자의 이야기일 뿐인데, 어린아이들의 교재에 여전히 로맨틱하게 수록된 것을 보며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야기를 읽은 아이들에게는 꼭 선녀의 기분은 어땠을까? 하고 되묻는다. 아이들은 행복했을 거라 답변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멈춰서는 안 된다는 어떤 책임 의식이 생긴다.
여자아이들에게는 그게 만약 너에게 일어난 일이라면? 하고 되묻는다. 그러자 대번 슬프고 엄마가 보고 싶을 것 같다는 답변이 나온다. 남자아이들에게는 여동생이나 누나, 친한 친구에게 벌어진 일이었다면 어땠을까, 물어본다. 그들 역시 슬프고 불쌍하다는 답을 한다. 교재에 이런 이야기를 수록하더라도 선녀의 마음을 되짚어 볼 수 있도록 하는 문제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최근 1020 세대의 딥페이크 성범죄가 이슈다. 인기 있는 아이돌 그룹 멤버의 성범죄도 논란이 되고 있다. 어린아이 시절부터의 교육 환경에 책임이 없을까? 나 역시 어린 시절 선녀와 나무꾼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읽었다. 나라에 공을 세운 이에게 공주를 선물로 주는 이야기들도 기억한다. 그로부터 십수 년이 지나도록 비슷한 이야기가 문제없이 교재로 발간되고 있는 지금, 수많은 십 대 청소년들의 성범죄가 수면 위로 드러나는 중이다. 미래에는 안전할까? 아마 아닐 것이다. 교육 환경에는 여전히 문제가 많다.
교재 속 성차별 표현들은 너무 많아서 하나하나 짚기 어려울 정도다. 그림 속 엄마는 늘 앞치마를 매고 있고 아빠는 늘 양복 차림이다. 아빠가 일하느라 힘드니 ‘아빠에게 힘내라는 편지 쓰기’ 문제가 나올 때는 이혼 가정의 아이들의 눈치를 보기도 한다. 엄마가 해준 음식 중 어떤 걸 가장 좋아하냐는 질문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 9세 아이들이 공주의 병을 고쳐주면 공주와 결혼하게 해 주겠다는 내용의 지문을 읽고 문제를 풀어야 했다. 삼 형제가 합심해 공주의 병을 고쳤는데, 내가 임금이라면 공주를 누구와 결혼시킬지 묻는 문제가 있었다. 한 아이가 공주를 다른 곳에서 더 가져와서 나눠준다는 답을 적었다. 충격이었다. 교재에서 ‘공주’라는 ‘인물’을 물건처럼 다루니 아이들 역시 그렇게 생각했나 보다. 공주는 사람이니 아무 데서나 막 가져올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걸 인지시킨 후에야 ‘공주에게 물어보고 결정한다’는 답변이 나왔다. 2024년에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싶지만, 이런 내용이 수록되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이런 건 문제가 있는 내용이라고 알려줄 수 있어 다행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내 앞의 귀여운 아이들이 나중에 그릇된 성의식을 갖지 않기를 원한다. 교재 속 수많은 성차별 표현들이 언젠간 하나 둘 고쳐지기를 바란다. 나아가 이런 교사들에게 사상 교육이라 매도하지 않기를… 그래야만 아이들이 안전하고, 나아가 나도, 내 동생도, 내 친구들도 안전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