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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은 Sep 02. 2024

사는게 재미가 없었다.

35살이 되면서 삶의 색깔이 점점 퇴색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루하루가 마치 회색빛으로 물들어 가는 듯했다. 학교와 집을 오가는 단조로운 일상은 지루함의 극치를 달리고 있었고, 긴 코로나 기간 동안 연애마저 끝나버린 내 삶은 이제 무의미한 공허감에 쌓여 있었다. 그동안 지켜왔던 일상적인 안정성조차 내게는 무겁고 숨막히는 짐처럼 느껴졌다.


임용공부는 내 안의 열정을 꺾어놓은 장벽이 되었고, 더 이상 책을 펴는 것이나 강의 계획서를 작성하는 것이 아무런 자극이 되지 않았다.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보려 했지만, 마음 속에서는 희망의 불씨가 점점 꺼져가는 것만 같았다. 재미있는 것들을 찾아보려 했지만, 마치 바닥을 쳤던 옛 연애의 잔해처럼, 내게는 아무런 열정이나 끌림을 주지 못했다.


매일 아침, 알람 소리에 일어나서 일터로 향할 때면, 삶의 그늘 속에 갇힌 기분이 들었다. 저 멀리 빛나는 무언가가 있는 듯했지만, 내 발걸음은 그곳에 도달할 수 없는 것처럼 무거웠다. 주말이 오면 무엇을 할까 고민하기보다는, 그저 시간을 죽이는 데 급급했다. 나는 마치 삶의 경주에서 뒤쳐진 경주마처럼, 언제쯤이라도 끝을 볼 수 있을지 모른 채 그저 그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이런 무료한 시간 속에서 나는 도파민이 도는 재미있는 것을 찾고 싶었다. 삶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여러 가지를 시도해보았지만, 무엇 하나 내 마음을 꽉 잡아주지는 못했다. 매일 같은 반복 속에서 나는 '뭔가 오랫동안 해보고 싶은 게 없었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럴 때, 친구가 나에게 하나의 제안을 했다.


“언니, 나처럼 스윙댄스를 시작해봐. 주말에 나갈 곳도 생길 거야.”

주말에 집 밖을 나가서 놀 곳이 필요하긴 했지만, 스윙댄스라는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이는 것이 내게는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춤? 지금 내가 춤을 춰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친구가 다시 한 번, “그러면 나랑 같이 춤추는 사람들을 만나볼래?”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 한 마디에, 나는 호기심이 생겼고, 더는 걱정할 필요 없이 그냥 따라가보기로 했다. 친구와 함께 춤추는 사람들을 만나는 순간, 내 마음 속에서 뭔가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삶의 회색빛을 벗어나기 위한 첫걸음을 내딛기로 결심했다.


"스윙에서는 남자는 리더, 여자는 팔뤄라고 하죠. 그리고 저희는 춤을 안추는 사람들을 머글이라고 부릅니다."


'머글'이라니! 춤을 추지 않는 사람들을 그렇게 부르다니!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어처구니없고 웃기기도 했다. '머글'이라는 단어는 마치 마법이나 특별한 세계와 관련된 용어처럼 들렸다. 그러나 그 용어가 단순히 웃음거리나 장난이 아니라, 춤을 추지 않는 사람들을 그렇게 구분하며, 그들만의 특별한 세계에 속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취급한다는 사실에 약간의 충격을 받았다.


그 무리 속에서 춤을 추지 않는 내가 계속 그들과 함께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 자신이 외부인처럼 느껴졌다. 춤을 추지 않는 나는, 마치 그들만의 특별한 세계에 속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들과는 다른, 즐거운 순간들을 경험하지 못하는, 다소 밋밋하고 재미없는 존재로 스스로를 바라보게 되었다.


사실 그 시점에서 나는 정말로 삶의 재미를 잃어버린 것처럼 느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지쳐가고 있었고, 일의 부담과 스트레스는 점점 커져갔다. 집에 돌아가면 부모님은 결혼하라고 잔소리를 하시고, 친구들은 연애와 사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상황에서, 나는 나만의 삶의 색깔을 찾지 못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연애는 끝났고, 새로운 취미를 찾으려는 노력을 하고 있었지만 그마저도 제대로 된 결실을 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내가 과연 어떤 의미 있는 활동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끊임없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삶의 재미를 찾지 못한 채, 일상에 지쳐가고 있었다. 주말이면 나갈 곳이 없어 지루한 시간을 보내야 했고, 가끔은 주변 사람들의 활기찬 모습이 더욱 뚜렷하게 대비되어 보였다. '머글'이라는 단어는 나의 현재 상태를 더욱 부각시키며, 내 삶에 색다른 즐거움을 찾기 위한 갈망을 더욱 자극했다. 이대로 계속 지내기에는 내 삶이 너무나도 평범하고 지루하게 느껴졌다.


“목요일에 정기모임인데, 한번 와보실래요?”

술자리에서 친구의 제안에 귀찮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그래, 가볼게”라고 답한 나는 사실 그 말의 진짜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머글'이라는 단어에 호기심을 느끼고, 무심코 약속을 했던 것이다. 그렇게 내일은 스윙댄스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다.


그날 밤, 나는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모임장소에 도착했다.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서, 마치 내가 들어서면서 별도의 세계에 발을 들인 듯한 느낌이었다. 사람들이 열정적으로 춤추는 모습은 상상 이상으로 화려하고 에너지 넘쳤다. 나는 그들의 빠르고 유려한 스텝에 감탄하며, 동시에 ‘저렇게 춤을 추면 정말 기분이 좋을까?’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곳에서 두 시간 동안 춤추는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마음속에서 작은 불꽃이 일었다. ‘왜 다들 이렇게 행복해 보이지? 춤을 추면 정말 그렇게 기분이 좋을까? 아니, 저 동작들은 너무 복잡해 보이는데, 나도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이 계속 맴돌았다. 춤을 추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진심 어린 즐거움이 가득 차 있었고, 그 에너지가 나를 자극했다.


그날 저녁, 나는 너무도 큰 충동을 느꼈다. ‘이런 행복한 분위기 속에 나도 참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초급 단계인 지터벅 수업을 등록하기로 결심했다. 내 마음속에서 불타오르는 호기심과 ‘머글’이라는 단어에 대한 복수심이 작용한 것 같기도 했다. 한 달 동안의 기다림이 길게 느껴졌지만, 그 동안에 그 새로운 세계를 향한 기대감이 나를 설레게 했다.


수업이 시작될 날이 다가오면서, 난 ‘정말로 이 춤을 출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들었지만, 동시에 ‘그래, 해보자!’는 결심도 강해졌다. 그날의 결정을 통해, 나는 스윙댄스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고, 이후 내 삶의 새로운 장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등록을 마치고 나서, 나는 비로소 현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춤’이라고는 춰본 적이 없는 내가, 어떻게 그 어려운 동작들을 마스터할 수 있을까? 나는 뭔가 엄청난 도전에 직면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 등록을 할 때는 단순히 새로운 취미를 시작하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제 막상 시작하기 전에는 걱정이 밀려왔다.


가장 걱정되는 부분은 동작 하나하나를 외워야 한다는 점이었다. 춤추는 모습은 멋있어 보였지만, 스텝 하나하나가 마치 외계어처럼 느껴졌다. ‘이걸 다 기억할 수 있을까? 특히 저 스텝, 그거 진짜로 사람들이 다 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내가 과연 그 복잡한 동작들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불안감이 몰려왔다.


내가 상상한 것은 춤을 추면서 발이 엉켜서 넘어지는 내 모습이었다. 한 번도 춤을 춰본 적이 없는데, 이 복잡한 스텝들을 어떻게 해낼 수 있을까? 그 스텝을 처음 봤을 때, 마치 나만의 퍼즐을 풀어야 하는 느낌이었고, 나는 그 퍼즐이 너무 어려워서 포기하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그 걱정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닫게 된다. 지금은 주 7일 중에 주 5일을 춤추러 다니는 나 자신을 상상해보면, 그 당시의 나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불안과 걱정이 몰려왔던 그 시점이 지나고 나니, 춤을 추는 것이 얼마나 즐겁고 삶에 활력을 주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결국, 그 모든 걱정과 불안은 내가 새로운 도전에 뛰어들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고, 지금의 나는 그 선택이 얼마나 잘한 결정인지 실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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