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도 아이 하나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
유치원을 다니다가
초등학교로 가는 순간,
학부모가 가장 걱정하고 걱정하는 것은
바로 아이가 혼자서 교실에 가야하는 것이다.
도어 투 도어로
또는 셔틀 투 도어로
아이를 기관에 보내던 학부모에게
혼자서 교문에서 교실을 찾아가는 것마저
처음에는 큰 걱정거리가 되기도 한다.
등교할 때는 교문에서 스스로 교실을 찾아오지만
다행스럽게도
하교할 때는 담임 선생님
또는 방과후 선생님이나 늘봄 선생님이
교문까지 아이를 하교 지도해준다.
등교하는 아이의 손을 잡고 오는
부모님을 만난 적이 없으니,
담임 선생님의 입장에서
아이들 하교지도를 할 때
종종 여러 가지 근거로 추정하여
눈치 상
누구를 찾으러 오신 건지 알아맞춰야하는
일들이 생기곤 한다.
점점 가까워지는 교문에서
기특한 표정으로 자녀를 바라보는 엄마들 사이에
할머니인 것 같기도 하고,
이모님인 것 같기도 한 오묘한 나잇대의
어른들도 함께 서 계신다면
어떤 관계인지 유추하는 것은
학기 초에 꽤나 어려운 일인데
왜냐하면 드러내고 당신은 누구신지
누구를 찾아온 건지 물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본인이 누구 할머니, 할아버지라고 말씀해주시면 모를까
정말이지 눈치 상 대충 감을 잡긴 하지만
꽤나 헛다리를 짚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한 번은
담임을 맡고 있던
아이의 할머니이신 줄 알고,
아이의 학교 하루 생활 중
전달해야할 상황을 상세히 안내하고 보니
본인은 할머니가 아니고
이모님이라고 고백하셨다.
또 한 번은,
하교지도를 하는데
늦게 도착하는 보호자를 기다리는
반 아이에게
곧 오시는 분이 아빠의 엄마인지,
엄마의 엄마인지
(요즘은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단어를 주의해서 사용함)
물어보았더니 평일에 자기 집에 일해주시는 이모님인데
할머니 나이라서 할머니라고 부른다고 말해줬다.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이 동네에서 대부분의 아이들 시간을 챙기는 사람은
이모님 또는 할머니들(가끔 할아버지들)이다.
연예인 뺨치는 아이의 스케쥴이 빼곡히 적힌 수첩을
소중히 주머니나 핸드폰 사진으로 넣어두시는데
요일별 선택형 방과후,
학원이나 병원 예약 등의 스케쥴이 꽉 채워져 있다.
보통은 요일별로 상이하기 때문에
헷갈릴 경우 혼동을 초래하게 되므로
고도의 집중력을 요한다.
담임 선생님은
긴급 연락처를 메모해두는데,
부모님 연락처에 추가하여
이모님이나 조부모님 연락처도
함께 남겨두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물론 먼저 가르쳐주는 경우에만)
하교하거나 학교 일과 중
여벌옷이 필요한 난감한 일이 일어나거나,
열이나거나 아플 때
또는 급히 전화해야할 때
담임 선생님과 바로 연락이 닿는
누군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종종
멀리서 하교를 위해
아이들을 기다리는 인파를 향해
담임 선생님을 졸졸 따라오는 학생들을
줄 세워 다가가고 있노라면
마치 패션위크의 모델이 되어
워킹을 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
나도 관객석에 앉아있고 싶은데
일단 무대까지 진출해야하는 초보 모델이 된 마냥
마스크를 쓴 날은 상관없지만,
나의 표정, 옷 매무새, 머리스타일까지
괜시리 신경쓰여 하교지도할 때
여러모로 어려운 점이 있다.
물론 학부모가 되어보니
자기 자녀를 놓칠세라 아이를 좇느라고
선생님은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긴 했지만.
수많은 시선을 한 몸에 받는 것은
연예인이 아닌 한
정말이지 견디기 쑥쓰러운 일이다.
한 반에 약 30명, 9반까지 있다면
하교 때마다 약 270명의 어른들 앞에서
아이들을 줄세워 걷는 모습이
매일 생방송으로 중계되는 느낌은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어쨌든
아이의 하루 일과를
바쁜 엄마가 함께 할 수 없는데,
다른 누군가 도와줄 수 있다는 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래서인지 좋은 이모님들의 몸값은
해마다 오르고 구하기 어렵다고 알려져있다.
오래 가는 분들은 거의 1년 이상을
아이와 함께 해주시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계속 바뀌는 것은 아이에게도 좋지 않고,
부모에게도 불안요소이기 때문에
오래 해주시면서도 무난한
괜찮은 이모님들은 정말로
구하기가 힘들다.
저학년 때는
이모님 외에
꽤나 많은 조부모님들을 만나게 되는데
손주들을 바라보는 눈빛 속에
귀여움과 안스러움
그리고 피곤함이 함께 묻어나기도 한다.
젊음 학부모에게도 엄청난 체력이 소모되는 일이니
매일 자녀 대신 손주를 케어하고
학원에 라이딩해주는 일은
정말로 사랑의 힘이 아니라면
유지하기 힘들다.
솔직히 담임 선생님의 입장에서
그러니까 제3자의 눈에서 보자면,
아이들은 자기 학교 일과를 마치고서
교문에 누가 서 있느냐에 따라
표정과 말투가 달라진다.
당연하겠지만
주로 엄마 또는 아빠가 있을 때
함박웃음과 안도감을 보인다.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처럼
달콤한 표정이랄까.
그 다음은
자기의 투정이나 짜증을 받아주는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님 말고
진짜 조부모님)을 만나면
응석받이로 변해
찡찡거린다.
마지막으로
놀이터에 가자고 하면
자기 말을 잘 들어주는 이모님을 보면
약간은 무신경한 얼굴을 보이기도 하는데,
때로는 사무적으로 대하기도 하는
(아마도 엄마나 아빠가 요구하는 바를 해야하기 때문에)
이모님에게는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않는다.
내가 어릴 때
대부분의 친구들이
엄마가 교문에 오셨던 것 같은데,
요즘
더군다나 이 동네는
엄마가 매일 오는 경우가
어림잡아 반 정도 밖에 안되는 것 같다.
(방과후나 학원을 가는 아이들을 제외하면)
그래서 사실
가장 귀엽고
사랑스러운 시기의 대부분을
다른 사람 손에 키워야 하는 것이
때로는 서글프지 않을까
괜시리 혼자서 감정이입하곤 했다.
물론,
높은 연봉과 전문직의 자리에서
또는 자신만의 커리어를 탄탄히 하고 있겠지만,
한편으로 돌아오지 못할
아이의 소중한 시간을
함께 못해서 참 아쉬울 것 같다고
그렇게 생각한 적이 많다.
오지랖같은 마음이 앞서
내 딸도 크면
결국 이런 과정을 겪어야할테고
자신의 커리어를 공고히 하고 싶다면
정작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적어지고
아이를 다른 사람 손에 키워야하는걸까
답답한 상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분명,
자신을 기다려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만으로도
정말로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라고
결론지었다.
언젠가 아이들은
스스로 교문 밖을 나설테고
혼자서 자신의 일과를 해내겠지만,
교문이 너무 크고
학교 밖은 아직 낯설고 무서울 때
함께 해주기 위해
추운 날도 더운 날도
묵묵히
자신을 교문에서 기다리던 누군가의 품을
어렴풋이 기억하며 살아가지 않을까.
그게 부모님이든 이모님이든 조부모님이든
행복한 기억은 누구든 함께였다면
그걸로 괜찮을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