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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윗리윗 Jul 20. 2022

움직임에서 비롯하는 낯선 시공간의 예감

리윗-리윗 인터뷰#4 : 조해나 작가

조해나 Haena Cho
작가

서울시립대학교 환경조각학과 학사 및 석사를 졸업했으며, 주요 개인전으로는 금호미술관 《Turbulence》(2022), D/P 《Vertigo》(2021), OCI 미술관 《유사위성》(2020)등이 있으며, 단체전으로는 사가 《그리니치 천문대를 공격하라》(2022), 안양 공공예술 프로젝트 《APAP6》(2019), 노르웨이 오슬로 NOMAD AIR 《Seoul Media L__og》(2017)등이 있다.

인스타그램 @haenince
홈페이지 https://www.haenacho.com/

조해나 작가의 작업은 저마다의 에너지와 속도로 부단히 움직인다. 공간을 거닐며 이들의 움직임을 살펴보고 있노라면, 작품이 지닌 시각 정보와 신체의 균형 감각 사이에서 발생하는 미묘한 어긋남이 감각의 틈새로 파고든다. 일순간 우리는 미지의 시공간으로 미끄러지듯 아득해진다.  


감각에 대한 기준이 무너져 내릴 때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지점이 분명히 있거든요.
무언가 전치될 때 생기는 감각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공간과 운동성을 다루고 있습니다.


조해나 작가는 사물이 갖고 있는 기능과 형태를 해체하고, 자신이 담고자 하는 내러티브를 바탕으로 이를 운동성을 가진 존재로 재창조한다. 또한 영상을 전달하는 '스크린'이 가진 부동성에 의문을 가지고 스크린 자체를 움직이거나 공간과 조응하는 조형물과 결합시키는 등 조각적인 태도를 기반으로 한 실험을 진행한다. 이렇게 탄생한 작업에서 발현되는 파동은 저마다의 연결성을 가지고 다양한 공명을 만들어낸다. 공간을 거니는 시선과 조응할 때 비로소 다채롭게 전개되는 움직임의 파동은 우리의 인지 속에서 어떠한 시공간으로 확장될 수 있을까?


금호영아티스트 – 2부《Turbulence》(2022), 금호미술관, 전시 전경 ©조해나


인터뷰에 앞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사물의 움직임에 대한 관심을 시작으로, 조각을 기반으로 한 영상 설치 작업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영상을 담아내는 스크린의 부동성에 의문을 가지고, 단순히 전달 매체로만 인식되는 스크린에 대한 물음을 토대로 매체 특성을 다각적으로 조망하면서 관습적 인식과 태도를 뒤틀어보는 실험적 연구를 지속해오고 있습니다.


작업에 대해 이야기할 때 '조각'을 중심에 두고 계세요. 사실 복합 매체를 사용하시는 만큼 작업을 다양한 장르의 프리즘으로 살필 수 있을 텐데요. 작가님의 시선으로 보는 ‘조각’이란 과면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저는 제가 ‘조각적 태도’로 미디어를 다룬다고 생각해요. 처음 영상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 때는, 조각에서 쓰이는 ‘캐스팅 기법’(*액체 상태의 재료를 형틀에 부어 넣어 굳혀 모양을 만드는 기법)과 연결 지어 생각하게 됐어요. 예를 들어 <시간의 공백>(2016)이라는 작업은 8차선 도로의 영상을 찍고, 프레임들을 스톱모션 하듯 이미지화하여 레이어를 쪼갠 뒤 그 이미지를 다시 편집하여 만든 영상이에요. 자르고 붙이는 작업을 반복하면 정말 많은 레이어가 쌓이거든요. 결과물은 평면일지라도 제게는 영상에서 덩어리가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각을 4년 동안 하다 보니 전통 조각의 재료와 도구를 사용하지 않을 뿐이지 컴퓨터로 조각적인 행위를 하고 있더라고요. 하지만 이러한 행위가 꼭 ‘조각’으로 포착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에요. 그보다는 무언가를 만들고 탐구할 때 제게 내재된 자연스러운 방식이 ‘조각적 태도’이기 때문에 이것이 작업을 할 때에 발현되는 것 같습니다.

<Blank Time> (2016) ©조해나


전통적인 조각과는 조금 다른 모습의 작업을 하고 계세요. 조각을 처음 '스크린'과 연결 지어 작업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저는  입체가 주는 생동감에 매력을 느껴 조각을 전공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작업을 하다가 문득, 고정된 시점을 전제로 한 평면적인 입체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물음이 생겼죠. 그래서 생동감 있는 움직임을 기록하기 위해 영상에도 관심을 갖게 됐어요. 그런데 영상을 스크린이라는 평면으로 보여주려다 보니, 또 다시 같은 고민에 부딪히게 되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영상을 좀 더 입체적으로 다룰 수 있을까?’ 생각을 하다가 처음에는 영상에 등장하는 오브제를 함께 놓거나, 스크린 자체를 조각해서 입체감 있게 보여주는 시도를 하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조각과 스크린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하게 되었어요.

(좌) <Elliptical Orbit> (2016) / (우) <Transparent Smog> (2016) ©조해나


북서울시립미술관의 《조각 충동》(2022)을 비롯하여 다양한 전시에서 '조각'에 대한 조망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코로나로 인해 우리의 시각 환경이 빠른 변화를 겪게 되었고, 수동적으로 이를 따라가는 지점에서 생기는 피로감이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관찰자의 시선을 다채롭게 할 수 있는 게 조각 매체라고 생각을 해요. 지금 그런 지점들이 필요한 시기이기 때문에 조각을 다루는 전시가 많아지는 것 아닐까요? 조각을 감상할 때는 관람객들이 자신만의 정면성을 만들며 능동적인 태도로 관람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마치 불 멍, 물 멍 때리듯이, 조각의 촉각, 감정, 시간성을 느끼며 다양한 생각에 잠길 수 있는 지점이 있고요. 저는 이런 것들이 제가 생각하는 조각의 조건 혹은 강점이라고 생각해요. 때문에 제 작품을 만들 때도 아날로그적인 방식을 채택하고, 회전운동, 빛 등을 이용해서 관객이 천천히 감각에 집중할 수 있도록 연출해요. 요즘처럼 다양한 전시를 통해 조각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오는 게 좋아요.


최근 금호미술관에서 진행하신 개인전 《Turbulence》(2022)를 비롯하여 《VERTIGO》(2021), 《유사 위성》(2020) 등 움직임을 연상케 하는 용어가 개인전 제목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전시의 중심 개념을 설정하는 과정이 궁금합니다.

저는 과학 이론 책 중에서도 용어 사전을 보는 것을 좋아해요. 정의 내릴 수 없는 현대 미술을 하다 보니, 몇 문장으로 복잡한 개념을 정의하는 과학 용어 사전이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전시나 작품을 구성할 때도 ‘여기에 적용이 될 수 있는 과학 이론은 무엇일까?’, ‘어떻게 정의를 내려볼까?’ 생각하는 게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또 과학자의 언어에서 주어를 지우면 마치 제 작업을 설명하는 것처럼 느껴지고는 했는데 이러한 지점이 매우 신선했어요. 이번 《Turbulence》(2022) 전시에서도 작품 제목이 과학 용어 거든요. ‘Turbulence(난기류)’를 설명할 때 빠질 수 없는 용어들이 있어요. 만일 a + b = c일 때, b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이론이면 b를 어떻게 내 작업과 연결할 수 있을까, 또 그것의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이론은 무엇일까를 찾아 넣는 식으로 작품 안에서 복합적인 현상을 표현하는 것 같아요.

(좌) <Text _Escape Velocity> (2017) / (우) <White Shadow> (2021) ©조해나


작품 대부분이 끊임 없이 움직이고 있는데요. 움직임을 이루는 다양한 속성을 어떻게 설정할 지에 대한 고민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움직임이라는 감각은 상대적이라서, 움직이는 물체의 속도보다 더 빠른 게 있으면 상대적으로 그 움직임은 느려 보이죠. 이처럼 움직임이 속도감을 내포하다 보니 각기 다른 속도의 움직임이 함께 놓여 있을 때 큰 효과를 발휘한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작품에 등장하는 움직임을 절제해서 어느 한 작품이 튀지 않게 비교하면서 만들어요. 마치 자동차를 움직이는 부품들처럼 제각기의 속도로 움직이지만 동시에 하나의 것을 움직이는 거죠. 이처럼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박자와 속도감으로 작품의 움직임을 나눠서, 이를 통해 공간의 흐름을 만들어 내는 데에 신경 쓰고 있어요.


개인전마다 선보이는 <Title>(2015~) 시리즈를 통해 엿볼 수 있듯이, 전시장 자체를 고유의 흐름을 지닌 시공간으로 만들고자 하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전시 연출에서 특히 신경 쓰는 지점이 있다면요?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작품들이 만들어내는 움직임을 통해 눈으로 인지할 수 없는 거대한 유기체적 덩어리를 만드는 것이 목표기 때문에 공간을 중요시 하는 편이에요. 제가 직접 느끼는 공간 감각을 중요시 여기기 때문에 사전에 공간을 면밀히 탐색하죠. 이후에는 공간을 모델링을 하고, 작품의 디테일을 구상해요. 공간을 위한 장소 특성적 작업을 한다기보다는 마치 그곳에 있어야 하는 것처럼 공간의 흐름을 지배하는 작업을 만들려 하고 있습니다.

<Title> (2015~) ©조해나
(좌) <dented-space>(2021) /(우) <Penumbra> (2021)©조해나


가장 최근의 개인전 《Turbulence》(2022)에서는 공간과 작업의 조응을 위해 어떤 점을 신경 쓰셨나요?

이번에는 특히 기둥 작업을 신경 썼어요. 전시 공간을 보니, 상대적으로 안쪽은 층고가 높고 율동감이 있는데 반해 가장 처음 발 딛게 되는 공간은 눌려 있고 답답한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반대되는 텐션을 주고 싶다는 고민을 하면서 공간을 다뤄보았어요.《타원궤도》(2016)에서 선보인 <고정된 축> 작업을 발전시켜 작업을 하였죠. 수많은 기둥이 건축물을 받치고 있는 파르테논 신전을 거니는 장면을 상상했어요. 이 작업은 관찰자의 시점에 따라 다르게 느껴져요. 기둥이 회전한다고 느끼는 시점을 기둥 내부의 공간을 중심으로 바꾸어보면 마치 전시장의 천장과 바닥이 서로 역방향으로 돌고 있다고 느낄 수 있겠죠. 우리가 지구의 자전 공전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처럼 한눈에 느껴지지 않더라도 공간만이 가진 흐름과 움직임이 있다고 생각을 해요. 이런 것을 어떻게 시각적으로 풀어볼까 하다가 이 작업이 나오게 되었어요. '기둥 사이를 천천히 거닐다 보면 구겨지는 공간과 공존하고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만든 작업이에요.

<Meridian> (2022) ©조해나


관객으로 하여금 인지와 감각의 흔들림을 경험하게 만드는 지점에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계신데요. 이러한 감각 경험을 실제로 겪은 적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저의 신체도 위치나 균형 감각에 예민한 것 같아요. 멀미도 심한데다가, 작년에는 이석증으로 크게 고생을 했거든요. 이석증을 앓은 이후로는 모로 누워서 못 잘 정도로 균형 감각이 더 예민해졌어요. 마치 제가 가만히 있는데 땅이 울렁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이처럼 감각의 혼란을 겪을 때는 저의 시각과 제가 느끼는 위치 감각에 괴리가 있다 보니, 작품을 제작할 때 힘이 들어요. 그렇지만 감각에 대한 기준이 무너져 내릴 때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지점이 분명히 있거든요. 무언가 전치될 때 생기는 감각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공간과 운동성을 다루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요즘의 관심사와 앞으로의 계획을 소개해주세요.

최근에 개인전을 끝내고 작업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그간 움직임을 시각적으로 해석해왔기 때문에 다른 방법을 통해 멈춤과 통제의 감각을 발견하는 것에 관심이 생겼어요. 또한 다양한 운동성 중에서도 '진동'에 관심을 갖고 있어요. '진동'의 운동성은 인과관계가 분명한 지점이 있거든요. 진동으로 인해 어떤 결과들이 발생되어 누적되고, 그것이 시간성까지 보여주게 되는 류의 작업을 해보려고 고민하고 있어요.

그리고 제가 올해 9월부터 QNS 양자 나노 연구소 레지던시에 참여하게 됐거든요. 미술가 입장에서는 과학자들이 주는 피드백이 관객 혹은 미술 관계자에게 듣는 관점과 다른 부분이 재미있었어요. 제가 작품에 과학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보니, 전시 관련 글을 수학기호나 과학이론으로 시원하게 정의 내려보고 싶다고 생각했거든요. 연구소에서 작업을 소개하는 시간을 갖고, 오픈 스튜디오 개념으로 하반기에 전시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저와 뜻이 맞는 연구자들과 협업을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서 앞으로의 시간이 기대 됩니다.




Credit

기획 / 인터뷰 | 리윗-리윗(이재화 이현경)

편집 | 이재화

자료제공 | 조해나

문의 | leewithx2@gmail.com

인스타그램 | @leewithx2

ⓒ2022. leewith-leewith, Haena Cho. All right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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