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윗-리윗 인터뷰#5 : 김수연 작가
김수연 Suyeon Kim
작가
국민대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개인전으로는 P21 《오늘의 날씨》(2022), 갤러리2 《HOLD ME》(2021), 도쿄의 SH Art Project 《WHITE SHADOWS》(2019), 베를린의 Aando fine art 《ENCYCLOPEDIA_Vol.1 Early efforts of ballooning》 (2016), 갤러리2 《Shadow Box》(2013)를 선보였다. 울산시립미술관(2022), 뮤지엄헤드(2021), OCI미술관(2020),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일민미술관(2019), 부산시립미술관(2018) 등에서 열린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한바 있고, 화이트블럭천안창작촌(2021), OCI미술관창작스튜디오(2018),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 국제교환프로그램(2017)에 입주작가로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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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작업 활동 10년 차인 김수연 작가는 관심 가는 소재들을 기반으로 꾸준히 폭넓은 작업 활동을 해왔다. 흥미로운 점은 그의 회화 작업에 입체가 없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텍스트를 입체물로 구현하고 입체를 회화로 옮기는 그의 작업 방식은 자신만의 꾸준한 관찰과 관심을 바탕으로 한 치밀한 연출과 계획의 과정을 거쳐 이윽고 회화 작업으로 연결된다.
존재했는데 사라져 버린 것들, 눈에 안 보이는 데 있는 것들, 그래서 내가 계속 보고 싶은 것들을 회화의 대상으로 삼는 것 같아요.
그가 작업의 소재로 삼고 있는 새, 식물, 춘화, 날씨 등은 경험을 바탕으로 선택된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소재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것들, 존재하지만 사라져 버린 대상들을 담길 원하는 작가의 염원이 공통적으로 깃들어 있다. 식물, 사물을 아우르는 대상들에 대한 따뜻하고도 애정 어린 시선을 담고 있는 작가의 시선을 함께 따라가 보자.
인터뷰에 앞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저는 식물도감, 백과사전, 춘화집 등에서 발췌한 텍스트를 입체물로 구현하고, 그것을 정물화의 형식으로 담아내는 작업을 진행해오고 있습니다. 저에게 있어 그리기는 두려움에서 시작합니다. 두려움은 빈 화면을 무엇으로, 왜,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심상을 물질적 매개 없이 캔버스에 바로 그려내는 것에 의심을 두고, 특정한 주제를 물질로 치환하여 현실에 구현하고 이를 다시 회화로 나타내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먼저 마주하고 싶은 장면이나 풍경, 대상을 구체적으로 실현시켜 줄 수 있는 수단으로써 사진을 수집하여 나름의 이미지를 구상한 다음, 이를 바탕으로 입체 오브제를 제작하고 그것을 최종 결과물인 회화로 담아냅니다. 근래에는 날씨로 표상되는 시간을 물질로 치환시키는 것에 집중하고 있는데 비, 바람, 무지개, 진눈깨비 등과 같은 다양한 기후적 현상을 경유한 주관적 경험을 이미지로 담아내는 작업을 진행 중입니다. 자연적인 것과 인위적인 것, 인상과 상상, 정확함과 부정확함, 채움과 비움, 자연에 대한 사유와 손의 노동이 만들어낸 그림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출력하여 입체로 만들고 이를 회화로 옮기는 과정을 지속해 오셨는데, 이러한 과정으로 작업하게 된 이유와 계기가 궁금해요.
중학교 때부터 입시 미술을 했는데 정물, 석고 그리기를 정말 좋아했어요. 대상을 화면 안에 구성해 빛과 그림자, 조명 설치 후 똑같이 그려내는 걸 좋아했어요. 사진은 어떻게 보면 정말 실재에 기반한 풍경을 담는 매체 이잖아요. 가상의 무언가를 상상할 때 최소 단위로서 사진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입시 미술의 프로세스랑 똑같다고 생각하며 시작했어요. 실재적인 것들의 조합이 가상의 장면이나 풍경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실재의 것들을 모아 놓고 실재적이지 않는 것을 그리게 된 거죠.
그래서 그런지 전반적인 연출도 신경을 많이 쓰신다는 느낌이 들어요.
원래 세트 스타일리스트가 꿈이었어요. 학창 시절에 쎄시 등의 잡지를 좋아했고 신발, 가방이 놓여 있는 배경, 주얼리가 놓여 있는 테이블 등을 꾸미는 일을 막연하게 하고 싶었거든요. 근데 제가 그림을 그리는 과정의 에스키스가 항상 뭔가를 세팅해 놓고 출발한다는 점에서 유사한 것 같더라고요.
전시마다 새, 식물, 춘화 등의 중심 소재를 선정하여 작업하셨는데 이처럼 특정한 대상을 선택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저는 주로 작업을 할 때 현재 관심사를 기반으로 한 중심 소재를 선택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하나의 내용으로 작업한다고 생각해요. 초기작은 조류 도감의 도판 이미지를 스캔하고 32마리의 새를 만들었어요. 작업의 제목들이 이 새의 학명이에요. 도서관에서 책장을 넘기는데 그게 새의 피부 같았고 기념비적으로 죽은 새들의 조각을 만들어 초상을 그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한 작업 중 가장 죽음이라는 관념과 직접적으로 맞물렸던 작업인 것 같아요. 이 한 마리의 새를 만들기 위해 같은 학명의 새이지만 개체는 다른 약 50마리 정도의 새 피부를 엮어 만들어요.
식물 작업은 2012년부터 지금까지 10년 정도 하고 있어요. 예전에 금호 레지던시 입주작가 보고전을 준비하는데 할당된 장소의 높이가 6m였거든요. 이 공간을 오롯이 채울 수 있는 뭔가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찰나 레지던시 작업실 한편에 죽어 있는 식물을 보게 됐어요. 죽어 있는 식물을 보는데 할머니 염했을 때가 떠올랐어요. 사람의 수분이 날아가 부피가 줄어든 모습이 식물이 말라죽어 납작해져 있는 모습과 비슷하게 느껴졌어요. 영원히 죽지 않는 식물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다른 작업의 대상 선택 이유도 듣고 싶어요. 그리고 대상 선택에 따른 정서 변화도 있을까요?
그다음으로 제가 백과사전 시리즈를 했는데 일요일에 하는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프로그램 아시죠. 그게 1970년대 출판된 『세계의 상식백과』라는 책의 에피소드들을 가지고 만들더라고요. 3차 대전 이후 신문처럼 빠르게 읽을 수 있게끔 만든 상식 백과래요. 어느 날 책을 봤는데 ‘이 사실을 모르면 넌 상식이 없다.’고 단언하는 스타일의 문장들이 너무 재미있었거든요. 그래서 거기서 제일 허구 같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뽑았어요. 그리고 실제 존재했거나 그때 당시 가설이거나 존재했지만 지금은 사라져 버린 것들에 관해 우주의 가설, 군함에 얽혀 있는 유령 이야기, 행성의 가설 등의 이야기를 담으며 백과사전 시리즈를 진행했어요. 그리고 하늘을 나는 열기구 시리즈를 독립시켜하게 됐어요. 하늘을 날려고 하는 사람들의 무모한 시도에 관한 섹션이었는데 평생 보고 싶어 하는 장면을 위해 창작을 해 나가는 게 작가의 마음이랑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다음 했던 게 춘화 시리즈인데요. 고양 레지던시 프로그램으로 대만에 가게 됐는데 당시 대만은 과거 일본의 지배 영향으로 음식점 등에서 우끼요에나 춘화의 이미지들을 흔하게 볼 수 있었어요. 이 당시 제가 연애를 안 하고 있었어요. 연애를 안 한 기간이 좀 되다 보니까 그 춘화의 이미지들 대만에서 마주쳤던 춘화의 이미지들이 저한테는 이미 사라지고 없어진 것들인 거예요. 찾아보니 나라별로 춘화를 그리는 스타일이 좀 다른데 춘화가는 공통적으로 심리적인 상상의 풍경화를 그리는 사람이래요. 화가의 상상의 여지가 이만큼 있는 거잖아요. 제가 30대에 아시아 여성 화가로서 춘화를 그린다면 정물화식으로 풀어보고 싶어서 사랑의 정물화이지만 춘화 같이 만들어 봐야겠다라는 생각으로 은유적으로 그림을 그렸던 것 같아요.
날씨 작업은 재작년부터 했어요. 제가 샤머니즘 마니아거든요. 3년 전 신점을 처음 보러 갔어요. 거기서 아가씨 빨리 병원 가라고 해서 다음 날 갔는데 몸에 혹이 4개가 있었던 거예요. 그때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해 믿게 된 것 같아요. 수술을 하고 몸이 편해졌는데 그리고 싶은 게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슬럼프였던 것 같아요. 그러던 중 비를 관찰하는데 마음이 너무 편안해지더라고요. 그리고 어느 순간 비를 새고 있더라고요. 108배하면 마음이 좀 편안해지는 것처럼. 사실 카운팅 할 수 있는 요소가 아니잖아요. 우연치 않게 비가 잠깐 멈췄다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을 때 웅덩이에 떨어지는 비를 카운팅 하기 시작하면서 내가 요즘 가장 많이 보고 나에게 영향을 주는 게 날씨면 비를 그려볼까 하는 생각에서 날씨에 집중을 해서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바람 시리즈>(2022)에서는 데이터와 툴을 이용하여 바람 자체를 수집하고 그 흔적을 이미지화했습니다. 바람을 채집한 이유와 이러한 제작 방식을 택한 이유가 궁금해요.
저는 원래 계획적으로 작업을 진행하는 스타일인데, 나를 떠나 비의도적으로 나올 수 있는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하다가 바람을 채집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드로잉적 요소를 화면 위에 적극 수용해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왔어요. 그래서 선적인 요소들을 좀 채집하고 싶은데 이때 한참 날씨를 생각하고 있을 때고 눈에 보이지 않는데 존재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보니 여러 날씨의 인상들 중 바람을 적극적으로 그려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실 그림 그리려고 채집하기보다는 그냥 매일 같이 하다 보니까 이런 흔적들이 쌓이게 됐는데 이것 자체가 너무 아름다운 거예요. 그래서 그림을 그리게 됐고. 1년 중 가장 바람이 사나운 계절이 봄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3, 4, 5월 바람을 채집하게 됐어요. 여기에 들어가는 숫자들은 그날의 날짜랑 시간이에요. 우연적인 요소를 채집하고 싶어 붓을 줄에 매달아 바람에 흔들리게 두었는데 매일같이 나가 아름다운 순간이었을 때 그 붓을 거뒀어요. 딱 거기까지만. 근데 이게 굉장히 주관적인 거라 시간 분, 초가 다 다르게 기입돼 있거든요. 4월 같은 경우는 이런 식으로 채집해서 화면 안에 이건 30일이 다 들어가져 있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4월의 바람이 압축되어 있어요. 저에게는 아름다운 흔적인 거죠.
<snow and rain>(2022)에서 귀여운 눈알들은 어떤 의미일까요?
작년부터 눈이 오는 풍경에 눈알을 달았어요. 저희 어머니께서 군인의 딸이셨는데 저를 엄격하게 훈육하셨어요. '혼자 있어도 자연은 항상 너를 지켜보고 있기 때문에 행동 거지를 똑바로 하면서 살아야 된다'라는 말을 오랜 시간 듣고 자랐거든요. 어느 날 아침 화방에 재료를 사러 갔는데 혼자 서 있는데 첫눈이 왔어요. 근데 혼자 있다는 생각이 안 들더라고요. 눈이 저를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겨울 눈이 내릴 때 눈을 달아 표현하게 되었어요.
기본적으로 대상에 대한 애정이 느껴져요.
네 그런 것 같아요. 저는 존재했는데 사라져 버린 것들, 눈에 안 보이는 데 있는 것들, 그래서 내가 계속 보고 싶은 것들을 회화의 대상으로 삼는 것 같아요.
앞으로의 관심사와 계획을 소개 부탁드립니다.
요새 가장 관심사는 날씨인데요. 작업실이 산속에 있기 때문에 변화하는 날씨를 집중해서 볼 수 있는 환경이에요. 그리고 내 지역의 바람의 방향들이 어떻게 그래프화 되어 있는지 이유 없이 보곤 해요. 날씨, 바람의 방향 어플도 있거든요. 앞으로의 계획은 제가 올해 10년 차 활동이 돼서 연말에 10년 동안의 작업들이 좀 갈무리되는 책을 준비할 것 같습니다.
Credit
기획 / 인터뷰 | 리윗-리윗(이재화 이현경)
편집 | 이현경
자료제공 | 김수연
문의 | leewithx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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