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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건교사 옥쌤 Oct 09. 2021

고양이를 키운다면 잘 먹어야지

건강인, 건강묘2: 건강인의 체지방 감량법


 유명한 사람의 말을 인용하는 건 피하고 싶다. 자칫하면 나 이런 것도 안다고 잘난 체하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에리히 프롬의 이 글귀는 꼭 소개하고 싶다.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결코 강렬한 감정만이 아니다. 이것은 결단이고 판단이고 약속이다.



 사랑은 판단을 전제로 한다. 어떤 사람은 자연스럽고 억누를 수 없는 감정이라고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사랑은 책임감을 기반으로 관계를 유지하자는 약속이다. 연인 사이뿐만 아니라 부모가 자식에게, 인간이 반려동물에게 주는 사랑도 해당된다고 본다. 따라서 반려동물을 키운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충실히 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사료와 물을 챙겨주고 놀아주며 쓰다듬어주는 식의 보살핌을 넘어서, 서로의 건강과 안위를 통해 함께하는 시간을 지키고 연장해내야 한다.


 우리 첫째, 둘째와 함께 오랜 시간을 온전하게 보내고 싶다. 사랑하는 존재와의 시간을 지켜내기 위한 노력은 아깝지 않다. 이 시간을 벌기 위해 건강해지기로 결심했고 가장 먼저 내 건강을 진단해봤다. 건강 진단을 위해 생활습관을 돌아봤는데 다른 습관은 다 좋지만 식습관에 문제가 있었다. 엉망이 되어버린 식습관으로 인해 체지방이 늘었고 건강에 위협을 받고 있었다.


 어떤 술수를 써야 원수 같은 지방을 없애버릴 수 있을까?  쫄쫄 굶거나 약물의 힘을 빌리는 등의 방법으로도 가능하긴 하다. 하지만 건강을 망칠 수 있는 방법은 피하고 싶었다. '건강'이 최종 목표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이것저것 많이 보고 읽었다. 세상 참 좋아졌다. 유튜브를 열어보면 전문가들이 5~10분 내에 유익한 정보를 간단명료하게 알려준다. 계속 열리는 광고를 묵묵히 보며 제작자들이 돈을 더 벌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하고는 인슐린의 작용, 유산소 운동의 효과 등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머릿속에 꾸역꾸역 집어넣었다.


 하도 많은 영상을 찾아봤더니 다양한 정보들이 머릿속에서 짬뽕이 되어버렸다. 얼기설기 얽힌 정보들을 나름 하나하나 뽑아내 보고 다시 뭉쳐본 결과 당장 해야 할 일이 정해졌다. 입 속에 들어오면 행복이 솟아오르는 음식들을 끊어야 했다. 혀 끝에 맴도는 달콤함은 적이다. 매콤함과 짭조름함은 입맛을 돌게 하니 나빴다. 당연히 술은 끊어야 했다.


 사랑하는 나의 애기들 두 마리를 위해 3개월 정도는 참을 수 있다. 딱 3개월만 단당류 음식을 끊어서 옆구리와 아랫배에 집중적으로 저장해둔 지방을 풀어내기로 결심했다. 잠시만 안녕, 달달 구리들. 지옥 같은 일상에서 순식간에 천국으로 데려다줘서 고마웠어.


  다이어트의 첫 관문을 거쳐야 한다.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고 협조 구하기. 따로 계획하지는 않았다. 친한 동료들과 갖는 티타임에서 충동적으로 선언을 했다. 소울메이트, 데이트 메이트 뭐 그런 말 많던데 우리 직장 동료들은 나와 일종의 푸드메이트 관계라고나 할까? 각종 맛집 탐방이며 디저트 타임을 제일 많이 갖는 사람들이기에 꼭 알렸어야 했다.


 "저 당분간 이런 거 안 먹어요. 과자, 아이스크림, 케이크! 달달 구리들!"

 

 동료들은 살짝 입을 헤 벌린 채 멍한 눈으로 내게 시선을 고정하며 모든 움직임을 멈췄다.


"살 빼는 건가요?"

 "그럼 내일 떡볶이 먹으러 가는 건요?"


 아. 맞다. 내일 퇴근하고 떡볶이 먹으러 가기로 했지.

 "떡볶이 먹고 나서 시작할래요."


 동료 A가 테이블에 펼쳐진 빵조각을 입에 물며 말했다.

 "근데 떡볶이가 엄청 살찌는 음식인 건 알아요?"


 알다마다.

 "그럼요. 지난겨울에 제가 인체실험을 좀 해봤어요."

 진짜다. 하필 떡볶이에 꽂혀 정신 못 차리는 겨울이었다. 참 대단한 음식인데 이제야 알아봤다. 쌀떡볶이, 밀떡볶이, 즉석떡볶이, 판 떡볶이, 국물떡볶이, 매운 떡볶이 등등. 하여간 종류도 많은데 종류별로 다 맛있다. 다이어트 돌입 시 최후의 만찬으로 선택하기에는 딱이다.


  앞으로 이어지게 될 식이 관리를 위해 내 영혼을 미리 달랠 필요가 있었다. 결심 첫날이지 않냐는 동료들의 놀림은 가볍게 무시한 채 부득불 떡볶이 만찬에 참여했다. 무슨 TV 프로그램에도 나오고 줄 서서 먹는다는 맛집이었는데 가게 주변으로 풍기는 냄새가 코에 닿기에 동료들에게 즉시 기대평을 공유했다.

"아. 냄새부터 다르네요. 여긴 진짜 맛집이 맞을 거예요."

 그러자 동료 B는 진지한 표정으로 동료 C를 돌아보며 말했다.

 "옥림 선생님이 그렇게 말한다면 진짜일 거예요."

 신규인 C가 눈을 크게 뜨며 우리 둘을 훑어보자 B가 설명했다.

 "ㅈOO J. 맛집 M. 투어 T를 줄여서 JMT라는 모임이 있는데, 옥림 선생님이 회장이에요."

 (ㅈOO는 직장 이름이다.)

  그러자 C는 납득이 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어울리시네요."


 맛집은 맛집이었다. 도저히 나란히 앉을자리가 나질 않아서 여러명의 동료들이  팀으로 찢어졌다. 떡볶이, 치즈 떡볶이, 튀김, 꼬마김밥, 순대를 셋이서 사이좋게 나눠먹고는 극락 구경을 한참 하고 있을 , A 화려한 검색 능력을 뽐내며 주변 아이스크림 맛집을 찾아냈다. 역시나 줄을 서가며 먹는 맛집이랬다. 우리는 든든한 배를 부여잡고 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아이스크림 가게로 달려갔다.


 진열대에 전시된 아이스크림이 파스텔 빛을 발하고 있었다. 쌀맛이 제일 유명하다길래 가까이 다가가서 구경했다. 영롱한 빛깔이 이태리에서 먹었던 젤라토를 떠올리게 했다. 동료들은 쪼르르 줄을 서서는 먹을 맛을 고르기 시작했고 차례대로 계산했다. 아이스크림을 받아 든 동료들이 나를 돌아보았다.


 "전 안 먹어요."


 모두 입을 벌렸고 D의 눈은 사슴과 같이 커져서는 촉촉이 젖었다. 그렇게 슬픈 일인가?

 "이럴 수가. 그렇게 먹는 걸 좋아하는 사람인데. 이럴 리가 없어! 왜죠? 왜 그렇게만 해야 하는 거죠?"

 기가 차서 웃음이 나왔다.

 "어제 말했잖아요. 당분간은 안 먹어보려고요."


  맛보지 못해 한이 된 그 아이스크림이 시작이었다. 이후 3개월간 달달한 음식들은 전부 끊었다. 오후 3시마다 찾던 서랍 속 과자는 사람들에게 하나씩 나눠줬다. 구내식당에서 나오는 디저트는 애초에 받지 않았고 인기 있는 간식이면 받아뒀다가 친한 동료들에게 줬다. 딱히 생각 없이 사는 것 같다가도 뭐 하나에 꽂히면 뚝심 있는 성향인데, 이럴 때는 좋다. 목표가 생기면 목표 달성을 위해 인내하는 편이다. 착한 사람들은 성실하다고 평가해주고, 솔직한 사람들은 독한 년이라고 부른다.


 첫 한 달은 다른 식이 조절 없이 딱 단당류만 끊었는데 체지방이 2kg 빠졌다. 원래 표준 체중의 수준이었으니 이 정도면 선방했다고 봤다. 2개월 차에는 밥 섭취량을 아주 조금 줄였다. 그런데도 쭉쭉 빠졌다. 워낙 식이가 엉망이었다. 케이크나 빵, 과자에 맥주 2~3캔을 식사 대용으로 먹어대던 사람이었으니깐. 점차 반찬을 야채 위주로 바꿔나갔다. 물론 양질의 단백질 공급을 위해 닭가슴살, 계란, 연어 등을 적극 활용했다.


 먹는 걸 좋아해서 오히려 편했다. 떡볶이, 치킨뿐만 아니라 입에 넣었을 때 어떤 맛이든 나면 좋아한다. 부들부들 입 안에서 고소한 맛을 내는 두부도 , 오도독 씹히면서 약간의 기름기가 입안에 맴도는 견과류도 좋다. 양상추를 씹을 때 나는 아삭아삭 소리, 치커리가 뿜어내는 쌉싸름한 맛을 즐긴다. 요즘은 닭가슴살도 참 맛있게 나온다. 갈릭맛, 수비드, 블랙페퍼 맛.. 퍽퍽하지도 않고 부드럽다. 심지어 냉동실에서 꺼내 전자레인지에 2분만 돌리면 바로 먹을 수 있다. 닭가슴살을 이렇게까지 발전시킨 대한민국의 기술에 경의를 표한다. 세상으로 뻗어 나가라. K-닭가슴살.


 각종 야채의 맛에 빠져들어 아예 입맛 자체가 변했나 싶을 때쯤, 체지방 4kg이 사라졌다. 업무 과다를 핑계로 내 몸에 덕지덕지 붙여뒀던 지방이 딱 4kg이었다.


 지방이 빠져나가니 괜히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 변해 보였다. 코가 좀 더 높아 보이는 것도 같고 얼굴이 작아졌나 싶기도 하고... 만족스러웠고 욕심이 났다. 좀 더 빨리, 더 많이 빼고 싶어졌다. 탄수화물을 아예 전부 끊어버리는 걸 어떨까? 아침, 점심을 전부 다 소식해버리고 저녁은 아예 안 먹는 건 어떨까? 지금 내가 하는 식이는 평범한 식사지, 다이어트식은 아니잖아! 다이어트 식이를 해야 더 잘 빠지지 않을까? 두부는 단백질이 많고 저칼로리라지만 지방이 꽤 많잖아, 먹지 말자! 견과류도 그래! 고구마? 너무 달아, 당이 많다는 뜻이야, 먹지 말자. 쌀밥 따위 안 먹는다. 샐러드만 먹는다.


 꾹꾹 눌러왔던 강박적 성향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이 극히 줄어들었다. 저녁 식사는 거의 하지 않고 배고픈 상태로 운동을 했다.


 고생 끝에 기쁨이 오는 걸까? 2주 만에 몸무게가 훅 빠졌다. 짜증이 쉽게 나서 누가 내 옷자락을 스치기만 해도 으아아악 소리 지를 정도였지만 기뻤다. 당장 몸에 핏 되는 원피스를 입고 외출했다. 전에 입었을 때랑은 왠지 달라 보이는군! 성공이야, 이만하면 됐을 거야!


 인바디 결과가 기대되는걸! 몸무게가 이 정도로 빠졌다면 체지방이 표준이하는 나올 텐데, 앞으론 어떻게 조절한담? 의기양양하게 인바디 위에 섰다.


 고장이 난 게 분명했다. 몸무게는 줄었고 체지방은 오히려 늘었다. 골격근량은 확 줄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뭔가 착오가 있는 게 분명했다. 몸이 부었거나 화장실을 다녀오지 않았거나 뭐 기타 등등의 이유로도 오차가 있을 수 있다. 먹는 양을 줄였으니 골격근이 줄어드는 건 어쩔 수 없다지만, 체지방이 늘었을 리 없다. 특히 여자는 생리주기에 영향을 많이 받으니깐 그 영향을 받은 거 같다. 그래서 3일 후, 1주일 후 각각 한 번씩 다시 재봤다. 여전했다. 체지방은 늘고 근육량이 줄었다. 심지어 생리도 늦어졌다.


 사실 몸무게가 줄어드는데도 옆구리가 다시 두툼해지는 이상 현상이 있었다. 애써 모른 척해왔다. 인바디 수치를 보고 나서야 인정했다. 어디서 실수가 있었는지 살펴보자. 유튜브 박사님의 도움을 받아 전문가들이 만든 영상을 머릿속으로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하도 많은 영상을 보았더니 또 짬뽕이 되어버렸다. 정보들을 하나하나 뽑아내서 내 멋대로 해석해보았다. 극단적인 탄수화물 제한이 이어지면 몸은 이 상황을 비상사태로 받아들인다. 살아남기 위해 우리 몸은 처절하게 영양분을 저장해둔다. 근육을 태워서 에너지를 내고 지방을 차곡차곡 쌓고... 결론은 내 몸은 '비상! 비상!!!!'을 외치고 있었다.


 방구석 의자에 걸터앉아 따져보기 시작했다. 굳이 왜 이러고 있는가? 벌거벗고 다닐 계획이라도 있는가? 기적이 일어나서 내 몸이 세계 최고 핫바디가 되어도 남사스럽다고 헐벗고 다닐 것 같진 않은데. 뭐하러 이렇게 살을 빼고 있는 거지? 살을 뺀다고 돈을 더 벌 수 있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무엇 때문에 이렇게까지 해야지? 내가 왜 굳이 다이어트를 시작했지?  


 고개를 돌려보니 우리 첫째가 화장대에 크리스마스 트리 모양으로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애와 눈이 마주쳤다. 오래 같이 있고 싶어서 건강해지려고 한다더니, 날씬한 몸매가 되고 싶어서 완전 맛이 가버렸었다.


 "너네 때문이었지. 맞다, 맞아."

 첫째의 정수리를 손가락으로 긁어대다가 뒤로 물러나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엄마가 미안해."

 첫째가 눈을 천천히 깜빡이며 고개를 살짝 들어 올렸다. 괜찮아,라고 대답하는 걸까?

 "다시 한번 해볼게."

 냐앙 대답해준다. 그 소리가 듣기 좋다. 더 들어보려고 끊임없이 말 걸고 대답해달라고 애원하던 시절이 있었다. 첫째는 그리 많이 우는 편이 아니었다. 드물게 한 번씩 울면 숨죽여가며 듣고는 했다. 10년이 지나, 이제는 첫째가 나를 바라보며 울어도 그 소리를 자연스럽게 흘려듣기 시작했다. 내 일에 집중하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 한참 모자라고 부족한 인간. 우리의 시간을 연장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더니 그것마저도 제대로 못 하는 바보.


 반성하며 이전의 패턴을 찾았다. 야채와 단백질, 양질의 탄수화물이 포함된 식사를 삼시세끼 규칙적으로 먹었다. 당연히 운동은 꾸준히 했고 물과 영양제를 꼬박꼬박 챙겨 먹었다.  몸에 좋지 않은 음식들은 피했다. 그 결과, 근육이 좀 붙고 지방이 빠졌다. 체력도 좋아졌다. 알람이 울리기 전에 눈을 떠서는 애기들 화장실 치워주고 물과 사료를 새로 갈아준다. 그러고도 시간이 남아서 책을 읽는다. 알람이 울리면 그때서야 출근 준비를 시작한다. 몸이 좋아지니 주변이 맑고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뿌옇게 안개가 낀 것 같이 느껴졌었는데, 이제는 아침이 상쾌하다. 건강이 온몸과 정신으로 느껴졌다.


 아직도 완벽하지는 않다. 여전히 어설프다. 정신 건강에 이로울 것이라고 판단되면 달콤한 디저트를 음미한다. 못 참고 배달 어플로 떡볶이를 시켜서는 혼자서는 도저히 못 먹을 양을 꾸역꾸역 먹어대기도 한다.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아서 그냥 굶었다가 급 몰려오는 허기에 허겁지겁 집에 있는 음식들을 몽땅 입에 털어 넣기도 한다. '알았어, 그럼 맥주 딱 한 모금만 할게'라고 말하고는 엄청난 속도로 맥주를 흡입해버리고 "한 잔 더!"를 외치는 날도 있다.


 그런 날이 있을 수 있다. 인간이기에 당장 눈앞의 욕구를 완전히 참아낼 수는 없다. 다양한 사건 사고를 마주하고 나서 나 자신이 너덜너덜해지는 느낌이 드는 날에는 일탈을 하고 싶은 게 당연하다. 그러면 가끔은 그냥 맛있게 먹고 행복해하면 된다. 그다음 날에 사랑하는 고양이와 가족들을 떠올려보면 된다. 그래, 다시. 다시 한번 해보자. 잠도 잘 자고 운동도 꾸준히 하고 먹는 것도 잘 먹자. 서로 웃는 얼굴 오래오래 마주 볼 수 있게 건강하자. 함께 하는 시간을 더 연장시켜봐야지. 이게 도움이 된다면, 도움이 안 될지라도 어쨌든 최선을 다 해봐야지. 맞다. 난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 우리의 시간을 연장할 의무가 있는 사람. 건강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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