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듬히 기대어
“엄마… 다.. 온.. 거… 아.. 니.. 야?”
“헉. 헉. 조. 금. 만.. 더. 가. 보. 자.”
히말라야를 등반할 때 고산병이 종종 산악인들에게 나타난다.
우리는 히말라야를 등반하지도 않았지만 넘어야 할 고비가 너무 높아서 산소가 부족하고 숨이 쉬어지지 않는 게 느껴졌다.
어지럼증이나 쓰러 지기 직전인 우리에게 히말라야를 온전히 정상에 오르도록 돕는 헬퍼가 안타깝게도 없었다.
뜨겁던 여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고 비가 왔는지. 습기가 찼는지 알 수 없는 불빛 없고 한치의 산소의 미동도 없는 시간을 지났다.
이 시간에 우리에겐 내가 어디 서 있는지 조차도 모르도록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고통을 참아내느라 느끼지 못했으니까.
“엄마.. 내가 기말고사를 보러 오지 않아서 5점 감점한다고 학교에서 전화가 왔어.”
동공조차 초점이 흐려진 아이의 눈을 보고 난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올랐다.
‘뭐라고? 멀쩡한 두 다리로 학교에 등교해서 누구 덕에 이렇게 누워 아무것도 못하는 신세가 됐는데.’
온몸이 찬 서리를 맞은 것 마냥 부들부들 떨려오는 것을 어금니를 꽉 물고 학교에 찾아갔다.
이게 현실이구나.
이곳은 나처럼 아무것도 발악하지 못하는 부모에겐 차디 찬 얼음장이고 보듬어 주는 곳이 아니구나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면서도 선생은 없고 의무를 다하는 직장인은 보였다.
슬펐다.
아팠다.
내 아이는 이런 차가운 곳에서 얼마를 더 다녀야 하는 거지?
그들도 누군가의 자식이고 누군가의 부모인데 어떻게 이렇게 대할까.
머리가 너무 아파 집에 오자마자 타이레놀을 먹고 잠깐 누웠다. 이 현실이 너무 싫었다.
‘왜! 왜! 너라면 그 말을 듣겠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니?’
‘왜 내 애가 저러고 누워 있는데!’
머리를 뉘인 베개가 흥건히 젖도록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조금만, 조금만 힘내봐” 재활센터 트레이너 코치님은 아이의 딱딱한 다리를 부여잡고 온 힘을 다해 누르고 있었다.
“으~~~~~~악~~~~~~~”
“잘했어. 오늘은 0.5도 꺾었어. 이제 마사지하자.”
아이가 재활을 끝내는 시간에 좀 일찍 도착한 나는 기운이 쪽 빠진 트레이너 코치님을 뵙고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어머니 이제 휠체어 말고 목발을 이용하면서 좀 더 재활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가야 할 것 같아요.”
선수들을 재활하는 트레이너는 선수의 몸도 돌보지만 멘털을 챙기기도 하고 계셨다.
어디가 학교이고 어디가 병원일까?
내 아이를 인정해 주고 내 아이의 성향과 기질을 알아주는 곳에서 아이가 옳고 바르게 자라 사랑받고 사랑 주는 아이가 되길 바랐는데.
그게 안 되는 걸까?
아이의 저녁을 봐주고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며 차 안에서 하염없이 울었다.
지쳐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보고 있으니 2개월 된 아이가 모세기관지염으로 입원했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사랑하는 내 아이.. 사랑이… 너무 사랑스럽고 보드랍던 아이가 태풍에 휩싸여 홀로 폭풍 속에서 허우적거리는구나.
‘사랑아 엄마가 힘이 없어 미안해. 엄마가 바보 같아서 미안해.’
히말라야 중턱에서 고산병에 휘청이는 우리에게 손을 내미는 헬퍼는 없었지만 상황 상황 그때마다 이겨낼 수 있는 마음을 주셨다.
매일 아이를 만나고 아이의 밝게 웃는 얼굴을 보고 어플로 셀카를 귀엽게 찍으며 같이 웃고 견딘 그 시간이 지금의 우리에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다 필요 없어 그냥 살아 있으면 된 거야. 이 정도도 얼마나 감사하다고.
너는 너의 존재 자체로 엄마를 엄마답게 하니까.
상처가 남아 쓰리고 아프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매일 아이의 상처자국을 보면 다시 상처가 살아나 아이도 나도 다시 그때 그 시간으로 데리고 간다.
상처가 흐려지는 그때가 마음의 상처도 흐려지는 때일까?
시리도록 아픈 시간 속에서 우린 따스히 비춰주는 태양은 없었지만
36.5도에서 조금씩 차가워지는 온기로 서로를 얼지 않게 보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직은 저체온증이 오지 않았으니 조금 더 힘을 낼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