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하는 용기
비가 그친 후 씻겨진 세상이 그냥 무조건 깨끗할 줄 알았다.
그렇지만 씻겨진 것이 아닌 지저분한 것이 더 자세히 드러났다.
차라리 눈이 내려 얼려버렸으면 보지 않아도 될 텐데.
회피로 그 시간들을 보내버리려 하던 이들의 일들이 나에게도 보이지 않아 삶이 조금은 가벼워졌을지도 모를 텐데.
‘내가 무얼 그렇게 잘못했나요?’
‘이게 가장 아이에게 최선일까요?‘
어떻게 그렇게 철저히 외면할 수 있는지 단단히 닫혀 있는 마음의 문들은 열 수 없었다.
‘괜찮아. 그래도 이렇게 잘 지내고 있잖아’
세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살아내는 법을 터득하는 듯했다.
“엄마 오늘은 운동하고 로봇 대회준비하러 학원에 갈 거니까 데려다주세요”
“그래.. 많이 먹고 기운 내서 잘하고 와. 어서 먹어”
중학교에서의 마지막 대회일지도 모르는 동해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일찍부터 운동을 하고 서둘러 늦은 점심을 먹인 후 학원이 있는 타 지역으로 차를 몰았다.
사랑이는 목발을 짚고 학원에 들어가고 뒤이어 나는 아이의 로봇부품이 가득 든 가방을 들고
학원으로 들어갔다.
학원에 들어간 사랑이는 좋아하는 것을 하는 이 시간이 아픔을 치유하는 시간이었다.
아픈 것도 잊은 채 웃으며 밤늦도록 이어지는 대회 준비를 하면서도
즐거워했다.
“긴 시간인데 피곤하지 않아? 오늘은 생각대로 프로그램도 짜지고?”
“응. 그런데 모르면 선생님이 옆에서 이야기하면 그냥 풀리더라고.”
“엄마 00 부품이 부족한데 그거 이번에 더 있어야 할 것 같아요. ”
돌아오는 차 안에서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간 시간이 되었다.
자정이 다 돼 가는 시간이라 사랑이와의 대화는 어느새 잠잠한 밤풍경과 같이 지나가는 차소리만 들렸다.
7년이라는 시간 동안 피곤이라는 것을 이겨 낼 수 있는 좋아하는 것
무언가를 지독히 사랑한다는 건 아픔을 잊게 하는 도구일지도 모르겠다.
집에 돌아온 사랑이는 기절하듯 침대에 누웠다.
재활훈련에 없던 근육을 키우는 일들이 고되 근육통과 온몸의 신경세포들이 아우성을 치지만 타이레놀을 의지해 잠을 다시 잔다.
잠깐의 진통제의 효과로 세포의 기능들이 자라는 동안 단잠을 자고 일어날 수 있길 바라며 곁에서 아이의 다리를 주무르고 하루종일 목발을 사용하느라 까지고
쓰라린 어깨에 약을 발라 주었다.
어느새 아이는 고요한 품속에 안긴 2살의 아기로 변해 있었다.
한계상황은 일종의 벼랑 끝 체험입니다.
우린 벼랑 끝 체험을 한 것일까?.
온기를 나눠 다시 일어난 우린 서로에게 기대는 법도, 고통의 순례의 길에 마주하는 법을 끝도 없이 이어진 벼랑 끝 체험에서 배우고 있었다.
“엄마. 코치님이 선수들은 이런 일들이 허다하대. 그렇지만 그들도 다시 걷고 뛴다고 하셨어.
나 오늘은 1도 꺾었어. “
“드디어 한쪽 목발 없이 걸을 수 있다. 야호”
언제나 웃어주는 아이
그렇게 우리는 아픔을 웃음으로 대하는 법을 배워갔다.
작은 것에 감사하는 것. 이렇게 우리는 앞으로의 멀리가 아니라 지금 눈앞에 닥친
일들 중 작은 변화에도 감사하며 행복해하며 이겨냈다.
‘넌 잘할 수 있어. 이렇게 해냈으니까.’
세상의 폭풍이 휘몰아쳐도 서로를 믿어주고 든든히 받쳐줄 수 있는 기댈 곳 이 있으면 뭐가 두렵겠니.
아직도 바보 같고 아직도 모르는 것 투성이지만 그럼에도 엄만 모든 순간 너를 사랑하고 너를 믿는단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픈 날을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고야 말리니]
책을 읽다 푸슈킨의 구절을 보았다.
‘기쁜 날이 오려면 얼마나 견뎌야 하는 걸까?’
차오르는 내 안의 물이 마중물을 기다리지도 않고 어딘가 부딪히면 툭 하고 댐이 터지는 듯 터져 나왔다.
아이는 조금씩 더 잘 견뎌내고 더 나아지고 있는데 오히려 나는 그렇지 못했다.
아이에게 밝은 표정과 아이를 보는 돌봄의 온도를 내리지 않기 위해 나의 마지막 온도까지도 박박 긁고 있었다.
‘그런데.. 그럼에도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
아이들의 기질에 맞게 기다려 주고 다양하게 배울 수 있는 곳에서 살아보고 싶어.
아니… 그 당시에 치이던 모든 것이 진저리가 났다.
다른 곳은 이렇지 않겠지.
무조건 티켓을 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