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실점을 잡아가는 중
너무 긴박한 일정에 도착 후 하루 만에 탈이 났다.
퇴원 후 다음날 밤 비행기를 탔으니 이해도 되고 미안하고 오만가지 생각이 지나갔다.
긴장도가 높은 가족은 직접적으로 긴장을 안 하는 것도 같은데 세포들이 알아서 긴장을 했다.
내 안의 세포가 새로운 곳에서 익숙하게 지내려고 정비를 하나보다.
아이들이 평소 좋아하는 누룽지를 한 트렁크를 싸왔기에 점심으로 누룽지를 끓여줬다.
고소하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냄새가 솔솔 나기 시작하고 아이들이 누워있다 마법에 이끌린 듯 인덕션 앞으로 몰려들었다.
“엄마… 냄새만 맡았는데 기운이 나는 것 같아. “
때론 향기, 때론 냄새인 후각으로 어둠을 몰아내기도 어둠에 떨기도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섬세한 손길이 우릴 어디로 데려갈지 알지 못하지만 기분 좋은 냄새, 안정을 주는 냄새에만 머물고 싶었다.
보글보글 끓던 누룽지를 한 그릇씩 떠 감사기도를 드렸다.
타국에서의 고향의 맛..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되던 것이 감사로 당연하게 바뀌었다.
그렇게 싫어서 떠나왔는데 온 지 얼마나 됐다고 그 나라의 작은 것이 이렇게 감사하게 될까?
숟가락으로 떠서 호호 불어 들숨 날숨에 몸 안으로 스미는 누룽지의 따뜻한 숨이 마음도 몸도 편안함으로 바꿔주기 시작했다.
‘고향의 맛’이구나…
따뜻한 고향의 맛, 내 나라의 맛을 세포에게 하나씩 전해주고 나자 어디서든 버틸 수 있는 세포로 정비를 마친 듯했다.
한달살이의 혜택으로 아이들의 첫 등교에 맞춰 집 앞으로 도시락이 배달되었다.
오늘은 아이들의 첫 학교에 면접을 보러 가는 날이다.
많은 정보와 유학원을 알아본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이곳에 오기 전까지 매일 밤낮으로 서칭을 하며 고른 이곳,
이 나라의 학습은 어떨까? 어느 정도는 알고 있지만 세부적인 내용들은 알 수 없어 이곳에서 유학원을 운영하시는 분에게 정보를 얻었다.
집 앞에서 셔틀을 타고 아이들이 첫 학교에 등교를 했지만 우리 숙소에서 바로 보이는 학교였다.
이 나라의 규칙상 모든 아이들이 라이딩을 하게 되었다. 걸어오는 아이들도 있지만 다양한 시스템을 갖춘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경험해 보기로 했다.
아이들이 예비 교실로 들어가는 것을 본 후 면담 시간에 맞춰 아이들의 학교에 도착했다.
아이들은 각자의 레벨테스트를 하고 교복을 맞추고 점심식사카드 등 여러 부수적인 일들을 마친 후 레벨에 맞추어 교실로 들어갔다.
다행히 큰 아이는 자기 레벨의 반으로 정해지고 언어가 미숙한 둘째는 한 단계 낮은 레벨로 반이 정해졌다.
이질적이면서도 정겨워 보이는 이곳의 자연과 학교가 조금은 정겹게 느껴졌다.
내 품에 보호는 일찍부터 독립했지만 이젠 정말 각자의 자기 세상으로 걸어가는 시간이었다.
두 아들의 세상을 만들어 가는 새로운 시작이 두렵기도 긴장되기도 설레기도 했다. 아니… 간질거리는 긴장감이 더 컸다.
‘잘 해낼 거야.’
믿는 만큼 크는 아이라고 했으니 아이들 각자에게 맞는 길을 준비하시고 각자의 만남을 예비하셨을 거야.
나에게 다독이는 말을 해 주며 아이들보다 더 긴장되고 떨리는 마음에 위로의 어루만짐을 해 주었다.
난 나대로 살아내는 방법을 알아야 하니 이젠 정말 이곳에 정착하는 법을 터득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넌 어디 가서 든 잘 살 거야”
친정엄마는 어릴 적부터 나에게 이런 말을 자주 해 주셨다. 부정보단 긍정을 많이 하는 나에게 이 말이 용기를 주었다.
“나를 만들고 계획하신 이유가 있을 거야”. 힘이 들 때마다 두려움 보단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나에게 알려주는 지도였는지 모른다.
How are you?
링깃으로 환전을 하고는 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 정류장에 앉아 나에게 물었다.
I’m afraid.
두렵다. 아니 무섭다.
언어도 자유롭지 못한 내가 이런 결심을 하고 실행을 하다니. 홀린 건 아닐까?
앞으로는 어떻게 하지?
경제적인 활동은 어떻게?
아이들을 어떤 학교를 찾아줘야 하지?
이곳에서 진짜 살아낼 수 있을까?
순간 두려움의 감정이 ‘사랑해’라며 나를 꽉 안아주는 것 같았다.
머리를 흔들었다.
‘난 두 아들의 엄마라고’ ‘이곳에서 나를 향한 만남과 계획이 있을 거야’
언제 올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지만 검색을 한 버스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리며 두려움에게 틈을 내어주지 않게 괜스레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국은 어플도, 정류장에 도착시간도 나오는데… 살기로 했지만 비교가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의식 없이 누리던 것들이 감사와 불평의 줄타기를 했다.
한참을 기다려 타고 먼지가 폴폴 날리는 창가에 서 창밖으로 스쳐가는 페낭시내를 바라봤다.
예쁘네..
한적하기도 한 야자수 잎이 힘을 빼고 살아가도 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화창한 날씨에 하나씩 지나가는 야자수를 보며 다시 기운이 났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마트에 들러 생필품을 샀다. 이제 이곳에 정착해야 하니 카트도 사고 물건을 담아 숙소까지 걸어오는 길을 체크했다.
학교에서 도착한 아이들은 재활 훈련을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헬스장에 갔다.
숙소에 기본적으로 헬스장이 있어 우리만의 트레이너 실이 돼버렸다.
다른 한국인 분들은 그냥 한 달 살기 체험을 하러 오신 분들이라 이곳엔 잘 안 오신다고 프런트 담당자가 말을 전하곤 가버렸다.
덕분에 우린 신경도 쓰지 않고 모든 운동기구를 열심히 이용했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빠짐없이 노트에 적었다.
하루비용, 시간, 사는 법, 대응하는 법, 클레임 하는 법, 기다리는 법, 학교를 고르고 면접이메일을 보내는 법,
이곳에서의 사는 법을 하나하나 기록하며 내가 살아가야 하는 방식을 터득하기 위해 꼼꼼히 기록했다.
이곳에서의 사는 법은 내려놓는 마음을 갖는 것이란 것도 알게 되었다.
어디로 , 어떻게 갈지 알지 못하지만 내 앞에 등대의 불빛을 잘 따라가게 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