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비집고
아침부터 기운이 없었다.
말레이시아 페낭의 날씨는 너무 따뜻하고 좋은데 실내에선 어디서든 냉기가 가득했다.
밤엔 창문을 열면 벌레랑 도마뱀이 많이 들어와서 창문을 닫아야 했고 에어컨이 밤새 돌아갔다.
산후풍이 있는 나는 에어컨으로 온몸이 아파 혼자서 여름 안의 겨울밤을 지내야 하는 날들이 많았다.
아침 일찍 레지던트숙소의 청소를 해주러 온 인도네시아 소녀가 “your face doesn’t look good? “이라 물었다.
나의 상황을 들은 소녀는 문밖으로 나갔다 들어오면서 믹스커피를 가지고 왔다.
“my gift is cheer up”이라며 수줍게 내민 커피가 고마웠다.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이구나.
서툰 영어와 몸짓발짓으로 조금씩 알아가며 마음의 온도를 나눠주고 있었다.
카펫에서 개미군단이 줄을 지어 들어온 것을 발견하고 카펫을 제거하고 개미를 없애달라는 요구에 며칠을 힘들어할 때도 이곳의 이방인인 내게 따스하게 마음의 온도를 나눠주었다.
그분도 이방인이지만 그럼에도 이곳에서 오랜 시간을 지내며 사는 법을 익히고 이들의 문화에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것이 보기 좋았다.
사는 지혜를 배우는 거겠지.
혼자서 여기저기 도움을 구하던 내게 손을 내밀어주고 따스한 시간을 내어주고 이곳의 맛집이라는 곳의 커피와 빵을 사주셨다.
이곳의 상황을 여러 가지 알려주시고 학교방문할 때의 순서와 집 구하는 것, 아이들 교육에 대한 내용들을 그동안 살아오면서 든 경험들을 스스럼없이 나눠 주시는 모습이
너무 감사했다.
깊게 다가가지도 멀리 가지도 말라는 어떤 문구가 생각났지만 우선은 다가가고 싶었다.
이제는 익숙해진 이곳의 향내가 갑자기 싫증이 나는 순간들이 훅 치고 들어온다고 느낄 땐 더 그랬다.
“이게 뭐라고”
몸의 한계가 아니라고 했지만 왔나 보다 느끼고 한인마트를 물어물어 찾아갔다.
그곳에서 고국의 온기를 느끼고 싶었고 마음을 데워주고 감싸줄 밴드가 필요했다.
하교를 한 아이들과 동네투어를 시작하며 이곳저곳 다니다 20분쯤 걸어 한인마트를 찾았다.
오랜만에 보는 한국물건에 아이들도 너무나도 반가워했다.
마음밴드를 처방하고 돌아와 벤치에 앉아 가지고 간 책을 꺼내 들었다.
이게 나에게 필요한 거구나. 예민한 성격이 다치기도 쉬운 세밀한 감정이니 무심히 넘기고 받아치는 위트도 필요하단걸 느꼈다.
이곳에 온 지 벌써 한 달이 다 되어 갔다. 이렇게 적응하느라 시간의 흐름을 미처 느끼지 못한 것 같았다.
약속한 시간이 다 되어간다는 걸 안 우리는 주말에 이곳의 명소라는 곳을 찾았다.
관광객이 많은 곳이라고 했지만 우리의 방문 때는 감사하게도 많지 않아 아이들도 남편도 한적하게 이곳의 풍경을 즐겼다.
아무리 유명한 관광지에게도 사는 이에게는 별 감흥이 없는 것 같았다.
이곳저곳에 흔적을 남기려고 사진을 많이 찍고 기념품을 사는데 나에겐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다.
‘어차피 이곳에서 살면 매일 볼 텐데 뭐’
라는 생각에 ‘좋네. 음.. 그런데 이건 고려해야 하고, 저건 아닌 거 같고, 우리가 이곳에서 산다며 어떤 지역에서 살아야겠다.’라는 현실적인 이유들만 계속 맴돌았다.
페낭의 국제학교 중 다른 곳을 찾는 날이었다.
국제학교라는 곳을 처음 방문했을 때도 느꼈지만 ‘왜 우린 아이들이 행복해 보이지 않을까?’ ‘이곳의 아이들은 긴 시간 토론을 하면서도 왜 웃음이 떠나지 않지?’
학교 방문중 한 수업에 참관을 하면서 궁금했다.
선생님 포함 8명이 한 시간이 넘도록 토론을 하면서도 다양하게 풀어가는 수업시간이 마냥 부러웠다.
물론 이곳도 아이들이 선행을 하기도 하고 하교 후 다양한 활동을 하지만 아이들이 정하는 것이 많고 자신들의 진로를 고민하며 11학년부터는 한해에 과목도 많지 않은 수업을 하며 진로를 위해
더 다양한 것을 체험한다고 한다.
이곳에 있으면서 여러 학교를 다녀보니 아이들에게 각자의 재능을 스스로 묻고 아이들의 경험을 이끌어내는 것을 보았다.
타국의 삶이란 바라보는 그림처럼 좋지는 않지만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것 ’ 아이들은 그걸 바라지 않을까? 생각됐다.
나에게 틈이 생겨 온기가 들어온 것처럼
남편과 아이들에게도 온기가 들어 씨앗이 자랄 수 있기를 기대해 보며
바닷가를 걸으며 괜스레 하늘을 올려다봤다.
우리 잘할 수 있겠지?
이게 맞는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