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롯이 네 인생이잖아

고통의 외마디

by 스완

고통을 느껴 본 자 많이 고통을 말할 수 있다.


아픈 건 몸 많이 아니었다. 사고였지만 수습은 손을 잡아줄 곳 없이 허우적거리는 우리들의 몫이었다.


“왜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있어요?”


난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아 어떻게 하면 내 아들을 바로 세울지만을 생각했다.

불면증이 생기고 불안이 스멀스멀 들어오는 어둑한 새벽에도 아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고

사례를 찾아봤다.


어디에도 구원자는 없었다.


그런 나에게 손 내민 것은 두통과 불안, 두려움이 어느새 슬쩍 손을 잡고 나에게 웃고 있는 듯했다.

그럼에도 나는 나를 볼 수 없었다. 내겐 아들만이 보였으니까.


아들을 케어하던 어느 날 이제는 힘에 부쳐 더 이상 못하겠다고 드는 시간이 왔다.

그러던 중 재활트레이너를 하시는 지인이 찾아왔다. 감사했다. 연락을 할 정신도 없고 그분이 재활 트레이너를 하고 계시는지도 몰랐다.


몇 해만에 내 아이의 소식을 듣고 걱정이 돼서 찾아오셨다고 하셨다.

지푸라기라도 잡은 심정으로 간절하게 도움을 요청했다.


집에서는 재활을 할 수 없다고 하셨다.


인생에 처음 겪는 일들이 왜 이렇게나 많은지 알 수가 없었다.

지인은 아이의 깡마른 다리를 이곳저곳 만지시며 재활을 시켜 주시더니 근처의 재활센터를 찾아보라고 하시며 아이를 응원하고 가셨다.


수많은 재활센터 중 어떤 곳이 우리 아이에게 맞는 병원일까? 눈이 벌겋게 충혈되고 핏줄이 터지는 줄 도 모르고 아이의 병원을 알아보고 중간에 다시 입원한 곳에 가서

수많은 검사와 중간결과를 듣고 왔다.


나의 고통을 알아줬을까? 집 근처에 한 달 전에 운동선수를 위한 재활센터가 타지에서 이전했다고 했다.

아이를 태우고 재활센터로 향했다.

아이와 나는 간절한 눈빛으로 좋은 소식이 들려오길 바라며 입원 수속을 했다.

골다공증 증상도 보이고 이렇게 하면 굳어져 온전히 걸을 수 없다고 하시며 강도 높은 재활을 시작했다.

운동이라고는 취미도 없던 아이는 하루종일 땀이 범벅이 되도록 재활트레이너와 운동을 하고 외마디를 지르는 일들이 반복되었다.

매일 아이의 재활센터 문 앞에 서 있던 나는 등 뒤에서 들려오는 아이의 신음 섞인 외침을 들으며 온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잘 이겨내자. 조금만 버텨줘, 넌 할 수 있어 ‘


나의 마음속 소리가 전해 질까? 모른다. 그렇지만 나의 첫 아가는 언제나 잘 참아주고 잘 견뎌줬었다. 이번에도 꼭 그럴 거다.

다시 두 발로 잘 걷고 잘 뛸 수 있을 거라고 손가락 마디가 다른 손에 남을 정도로 꽉 쥐고 기도했다.


너무 아파 힘들어하는 아이와 그걸 들으며 복도를 거닐던 나의 한 달이 흘러갔다.


“엄마. 집에 가고 싶다. 이제 링거는, 아니 바늘은 보기도 싫은데. “ 한 달 내내 맞던 링거와 주삿바늘에 아이는 짧은 투정을 부렸다.

“너도 알잖아.. 그동안 잘 견디고 이겨낸 거. 엄청 자랑스러운 아들이야. 이제 조금만 더 맞으면 될 거야.”

“너에게 다시 쓰는 훌륭한 삶이 될 거야. 넌 해내고 있고 해냈으니. 우리 조금만 더 힘내자.”



다시 재활의 긴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아직도 넘어야 할 고비들이 많았다.


“엄마 나 그만할래.”

아이는 며칠을 병원에서 끙끙 앓더니 그만하고 싶다고 했다


“무슨 소리야. 아냐. 넌 할 수 있어. 넌 충분히 이겨 낼 거야. 우리 아들 두 다리로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거 맘 것 하고 싶어 했잖아. 분명히 할 거야. 너의 로봇공학자의 꿈도 이룰 수 있을 거야.

그러니 조금만 힘내자. “

“왜 나만 이렇게 고통을 받아야 하는데. 엉엉”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 들 뭣하랴..

이곳저곳에 도움을 청해도 학교일로 정신이 없어도 나 몰라라 하는데…

너에게 뭐라고 할 수 있겠니.


그럴수록 더 강하게 나를 붙잡았다.


“아들.. 우리 꼭 일어서자. 그래서 누구보다 훌륭하고 멋지게 클 거야. 원망하느라 마음 쓰지 말고 우리 하루하루 잘해나가는 것에 감사하자.

아들은 지금도 너무 잘하고 있어. 대단해. 이만큼 했잖아. 분명 넌 네가 이루고 싶은 것 다 할 거야. 이렇게 힘든 고비도 잘 견뎠잖아 “









몸의 고통을 잘 참고 견디며 마음을 돌 볼 시간이 없었을 때 몸 도 재활과 시간이 필요했다.

그저 온전히 몸이 서는 것에 초점을 맞추던 우린 병들고 멍이 들고 점점 깜깜해지는 마음의 병엔 시선을 멀리 하고 있었다.



“엄마 나에게 이렇게 한 일들 똑같이 해 줄 거야”

“아들.. 그래.. 그래.. 그렇지만 그들은 그들의 삶이고 우린 우리 삶이잖아. 악한 마음은 접고 너만 보자. 너만”


마음이 여리던 아이는 자신의 삶을 통제로 바꿔버린 한 사건이 생각도 바꿔버린 듯했다.

뇌의 모든 것들이 생겨나고 바뀌는 사춘기에 감당하기 쉽지 않은 일들을 겪었으니 당연하지.


그렇지만 엄만 그로 인해 네가 다치는 건 싫어. 엄만 온전하진 않지만 지금껏 해온 내 아이가 어디서든 인정받고 사랑받는 아이의 삶이 되길 바라거든.




온전함을 유지하는 것에는 마음에도 몸에도 근육과 재활이 필요하다.


두 번째 수술 후 복도에 나와 같은 마음으로 신선한 공기가 필요한 공룡의사 선생님이었나 보다.

숨이 턱턱 막히는 나의 마음에 한줄기 차가운 바람이 들어가면 숨통이 튀이려나.


‘공룡쌤은 뭐가 그리 답답하신가요?’


병원의 긴장감과 두려움이 가득한 이곳에서 잠깐의 웃음의 약을 선물해 준 병원의사쌤들의 위트에 세포에 다시 기운이 돌았다.


아이에게 마음을 쓸어주는 말을 하면서 나도 지쳐 갔나 보다. 육신의 피로가 누적이 되니 정신적 충격을 여밀 틈이 없었다.






아이를 케어하며 나의 마음을 적었던 나의 글이 다시 보고 있어도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아이의 몸은 곁에서 케어하고 마음도 쓸어주고 만져주고 있었지만, 나의 마음은 아직도 깨진 항아리에 통증이 남아 있나 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살같안의 섬세한 마음 세포들이 아린 통증으로 새살이 잘 돋아나지 못했나 보다.



나에겐 감당하지 못할 고통이었나 보다 내가 고통을 다 소화시키지 못한 고통.

그래서 아직도 아린 것들이 느껴지나 보다.

아이의 삶을 통제로 바꾼 사건이 나의 삶과 생각도 통제로 바꿔놓았으니 당연한 거겠지.





어둠이 강한 이 시기에 우리의 찬란한 인생이 피어오르고 있는 거겠지.

어둠이 있어야 밝음이 더 밝게 느껴지니까.


어둠이 무섭고 아프지 않게 두발 땅에 잘 딛고 한걸음 한걸음 빛을 향해 걸어가야겠다.

오롯이 네 인생이고 나의 인생이니까.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