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만 이해돼
두발로 선 다는것.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건강을 잃어 본 사람많이 건강을 더 생각하고 작은 것에 감사함을 더 느낀다고 하던데 나도 그랬다.
잃을게 뭐가 있어? 라고 생각했지만 가진 것이 물질많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신체라는 걸 너무 아프게 알게 되었다.
“엄마 나 자퇴하고 싶어”
“응?”
수술후 걷지 못하는 아이를 남편과 나는 아이를 어떻게 해든 스스로 걷게 하려고 애를 쓰기 시작했다.
무릎뼈가 으스러 지고 연골이 한쪽은 없지만 어떻게 해서든 붙여주고 평생 장애로 남을지 모른다는 의사쌤의 말을 들었지만
아이를 더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감사하게도 수술은 100%라는 장담은 할 수 없다고 하셨지만 병원에서 할 수 있는건 끝났기에 집으로 왔다.
이젠 재활을 어떻게 하는지가 관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의 재활을 위해 재활 도구를 찾아 대여하고 일반 휠체어는 사용할 수 없어 대여할 수 있는 휠체어 업체를 수소문 했다.
감사하게도 휠체어를 금방 대여 할 수 있었고 아이의 병원을 오가는 일과 집안에서의 생활은 조금은 편해 졌다.
그럼에도 몇달전까지만 해도 혼자서 로봇 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스스로 다니고 친구들과 놀러도 다니던 아이가
혼자 외딴 섬에 갇힌 기분이 드는 것 같았다.
아이는 누워서 며칠을 보내다 자퇴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
아찔했다. 자퇴를? 중학생이라고. 자퇴후 어떻게 할 건데.
무지의 엄마인 나는 뭘 어찌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건 좀 더 뒤에 생각하고 우선 걸을 수 있는것 만 생각할까?”
“엄마 나 너무 억울하고 화나서 도저히 학교 다니고 싶지 않은걸.”
그럼에도 자퇴는 아니라고 타이르고 우선 걷자라고 아이를 얼르고 타일렀다.
수술한 곳의 통증이 너무 아파 진통제를 달고 있었지만 어린 나이이기도 하고 진통제의 성분이 독해 시간이 정해진 시간에만 자동 투입되는 진통제의 버튼을 밤새 누르기도 하고
움직이지 못하게 깁스를 해 놓은 곳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아 발가락이 살짝 나온 곳으로 밤새 손 선풍기를 들고 아이를 다독이며 조금이라도 고통을 덜게 해주려던 시간들
우리는 우리만의 전쟁중에 서로 아등바등 살아내려고 애를 썼다.
너무 아프고 속이 상해 울고 싶지만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아이를 붙잡고 울고 싶으면 크게울어도 되. 참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며 소리조차 크게 내지 못하는 우는 아이를 안아줬다.
언제나 참는것에 익숙해진 아이는 자신의 감정조차 제대로 표현하는게 서툴렀다.
한창 예민한 사춘기에 엄마의 수발로 대소변을 받아내야 하는 아이.
상상조차 하지 못하던 일들로 인해 아이는 혼자서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너무 작고 여려 바람춤을 추는 듯 휘적이던 아이가 아이의 몸무게의 두배가 넘는 아이에게 무게를 견딜 수 없었을 거다.
왜 하필.
이라고 하소연하고 아무리 외쳐바도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내야 하기에 멍하게 놓아버린 아이의 정신을 옆에서 계속해서 끌어내 주려 했다.
“괜찮아. 엄마가 걷게 해 줄께. 조금만 더 구부려 볼까?”
아이의 굽어진 다리를 잡고 있는 힘껏 아이의 다리를 구부리려 할때마다 아이는 내 어깨에 얼굴을 묻고 아린 신음을 내뱉었다.
아이의 재활을 할 때마다 나의 심장에 금이 가는 것 같았다.
재활을 하고 아이는 아픈 다리와 참아내느라 물었던 호흡을 내뱉으며 누워있었고 난 아린 아이의 호흡이 담긴 나의 심장을 쓰러내리느라 방에 들어가 한참을 앓곤 했다.
“자퇴하고 싶어” 이 말의 의미를 알 것 같다. 나같아도 그럴 거 같아.
그치만 그날도 아이와 나의 힘든 고비를 베게에 흐르는 나의 눈물과 같이 잘 흘려보낼 수 있었던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