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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로살다 Apr 06. 2024

밤, 숨, 품

나의 밤은 소란하다.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소란함이다.


둘째 치료 기간 동안 집 안의 공기 살균을 위해 설치한

세스코 살균기가 작게 위잉-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달항아리 모양의 가습기도 스으- 소리를 낸다.


깨어있을 때 쉬지 않던 큰 아이의 입은

잘 때도 쉬지 않는다.

잠꼬대 치고는 너무나 정확하여

나는 아이의 잠꼬대와

몇 번이나 대화를 한 적이 있다.



어떤 날은 숨소리가 격하고 불규칙적이라,

호흡이 어려운 건 아닌가, 스탠드를 켜고 아이의 얼굴을 살펴 보았다.


그랬더니, 뭐가 그렇게 우습고 신이 나는지

자면서도 낄낄 거리면서 웃고 있는게 아닌가?


무슨 꿈이길래 저렇게 즐거운지,

꿈을 비춰주는 거울이라도 있으면

들여다 보고 싶어진다.



작은 아이는 이번 주에 코가 좀 막히는지

잠자는 숨을 가만히 들어보면

그르릉 소리가 작게 울리는 것 같다.


어둠 속에서 손을 위로 더듬어

'잘 때 필요한 것들' 라인업 중

유칼립투스가 들어간 유스트 스프레이를

작은 아이의 베게와 주변에 뿌려준다.



더 작았을 때부터 엎드려서 자는 버릇이 있는 작은 아이를 거북이 뒤집듯이 발라당 뒤집어 바로 눕힌다.

그리고 등을 가로질러 겨드랑이에 손을 넣고

옆구리를 단단히 잡은 후 베게 위로 올려 눕혀 준다.



작년만 해도 엎드린 아이를 번쩍들어

베게 위에 눕히는 일이 한 번에 가능했는데,

이제는 두 번에 나누어 해야 할 만큼

아이는 무거워지고, 길어지고, 두툼해졌다.



뒤집혀 베게에 바로 누운 아이는

자는 중에도 쭈쭈를 한다.

다리를 쭉 펴고 하는 쭈쭈.

살며시 허벅지를 만져보니 제법 단단하다.


숨을 죽이고 아이의 숨결을 들어보니

그르릉 소리가 거의 사라졌다.



큰 아이의 그림자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앉는다.

두리번 두리번 거리며 뭔가를 찾는다.


- 호나, 엄마 여깄어.

- 아, 놀래라.


아이는 이내 내 품으로 파고 들어온다.


- 꿈꿨어? 엄마 없는줄 알았어?

-  ......




이미 다시 잠 속으로 빠져든 아이다.




아이들이 이렇게 폭 잠드는 평화로운 밤은

일년 중 의외로 며칠 없다.



잠들기까지의 리츄얼(의식)도

참으로 소란하다.


아니, 그나마 간소화된 것이라고 해야할까?



큰 아이는 항상 나의 왼쪽 겨드랑이를 파고 든다.


- 들어갈래.


아이의 복실복실한 머리가 나의 왼뺨을 간지럽혀

머리를 한 번 쓱- 쓸어 정리를 하고

앞 머리를 휙 들어 올리고 이마에 입을 맞춘다.


- 잘 자라. 사랑해.

- 응 나도. 엄마 사랑해 잘 자 알러뷰 굿나잇.

- 응 굿나잇.



둘째도 질 세라,


- 엄마, 사랑해 알러뷰 굿나잇.

- 응 은우도 잘 자, 사랑해.



첫째와 달리 파고들지 않는 개성의 둘째.

그래, 존중한다.


팔을 뻗어 이마를 쓰다듬어준다.




아기 때부터 잠들지 않기 위해 사투를 벌이던 첫째는,

지금도 어떻게 하면 1분이라도 늦게 잘 수 있을지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 엄마, 나 귀에서 소리가 나

- 엄마, 나 동화책 읽어줘

- 엄마, 나 배가 너무 고파

- 엄마, 나 밴드 붙여줘

- 엄마, 나 옷이 좀 젖었어



- 응 안돼, 아침에. 얼른 자라.


- 힝...





드디어, 이제 잠 들기 전에 마지막 의식이 남았다.


- 엄마, 알았시무리~ 아! 그렇치! 아- (아래턱을 손으로 들어 입을 닫는 동작) 오~~키 오키!!!!!!!



첫째의 이 레퍼토리는,

하나씩 아이가 했을 때 내가 빵터지고 너무 귀여워했던 말과 행동들이다. 그걸 모두 엮여서 매일 밤 잠들기 전 시리즈로 보여주는 것이다.


기 전에 내가 웃는 것을 보고 싶어서일까.




- 엄마, 난 엄마가 웃는 걸 보는게 좋아.



언젠가, 정말 웃긴 이야기를 하길래

와하하 깔깔 웃었더니

함께 웃으면서도 시선은 나를 향하고 있던 째가

했던 말이다.




이렇게,

드디어 두 아이는 잠이 들고

가랑가랑한 숨소리의 돌림노래 속에

나의 밤은 시작된다.



저 멀리,

자동차인지 오토바이인지, 부릉- 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래, 누군가에게는

귀갓길일 수도 있고,

야식을 시켜먹는 시간일 수도 있고,

심야 영화를 보러 가는 중일 수도 있는

10시에서 11시 사이의 시간.


이것이


숨소리와


꿈소리와


따뜻한 품의 온기로 가득한


나의 소란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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