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먹는 것도 죄인가요

by 나로살다

- 이건 엄마가 잘 못 하는 거에요.

내 말을 권장사항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은데,

그러다 나중에 큰일 납니다.


- 네...


- 온 가족이 작정을 하고 해도 될까 말까인데,

이렇게 해서는 정말 후회할 거에요.

아이가 어려운 병을 이겨냈는데, 관리가 안되어서

인생이 힘들어지는 건 너무 억울하지 않을까요?


- 네...



5번 연속 교수님의 호된 질책을 맞는다.

요즘 세상에 회사에서도 이렇게 아프게 말로 때리지는 않는데, 정말 쓰라리고 눈물마저 날 것 같다.


교수님의 진료가 잡힌 날은

그 전 주부터 잠이 안오고 스트레스로 심장이 떨린다.

악몽을 꾸고, 소화 불량에 시달릴 정도이다.



문제가 뭐냐면,

은우의 성장 그래프는 우측 상향이지만 (다행히도)

체중 그래프가 신장 그래프보다 더 가파른 것이 문제다.


정상 아이라면 그렇게 뚱뚱한 편은 아

다 키로 갈 것이다, 라고 할 텐데

은우는 항암 치료를 한 아이라

성인병에 상대적으로 취약하다고 한다.

그래서 조기에 관리하지 않으면

어린 나이에도 당뇨, 고지혈증, 콜레스테롤 등의 문제가 발생할 위험이 크다고 하신다.



솔직히 치료를 마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그저

종양의 재발 여부나 다른 심각한 부작용 들이 없는지를 집중해서 보느라 식습관, 운동은 그야말로 '권장사항' 으로 받아들였던 게 맞다.



그런데 은우가 너무 너무 잘 먹고,

키도 크고,

체중도 팍팍!!!! 늘고, 하다 보니

이제 소아 성인병 방지가 top priority 로 치고 올라왔다.



- 그래서요 교수님, 운동을 많이 시키려고 해요. 수영이랑 축구를...


- 운동가지고 안됩니다. 적게 먹여야되요.

먹는 걸 줄여야되요.


- 그런데 은우가 너무 잘 먹어요...


- 치료 마친 아이들, 가족들이 주변에서 자꾸 먹이려고 하죠, 그러면 안됩니다. 애를 망치는 거에요.


- 네...





정말 어렵다.

안 먹는 아이를 먹이는 것이 어려운 것은

주변에서 봐서 너무도 잘 알지만,

잘 먹는 아이를 적게 먹이라니.


더군다나 최근 입이 터진 은우의 형도 있는데,

그럼 한 명은 먹이고 한 명은 먹이지 말란 말인가!

이 무슨 가혹하고 잔인한 형벌이란 말인가!!!



고민 끝에, 한가지 방책으로

밥을 현미와 잡곡을 많이 섞어

입맛이 좀 꺼끌하게 한 적도 있다.

흰 쌀밥 보다 건강에 좋다고도 하고,

무엇보다 꺼칠하면 아이들이 잘 안먹지 않을까, 하고.



그러나 은우는 현미밥도 잘 먹었다.

나물도, 생선도, 고기도, 김치도,

뭐든지 너무나 복스럽고 맛있게 잘 먹는다.



부엌에서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나거나

뭔가 음식 냄새가 나거나

내가 퇴근 후 늦은 저녁을 간단히 차려 먹을 때면

어디선가 그 통통한 엉덩이를 튕기며

얼굴 한가득 화사한 웃음을 지으며 나타나



- 우와, 맛있겠다.

- 엄마, 나 한 입만 먹고 싶다.

- 뭐 만드는 거야??



라며 기웃거리는 이 귀염둥이를

어떻게 내칠 수 있단 말인가.



괴로운 시간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치킨 냄새가 진동을 할 때이다.

누군가 배달 시킨 치킨의 잔향이 모두의 후각을 자극할 때면, 여지없이 아이들이 합창을 한다.


- 아! 치킨 냄새!!

- 엄마, 우리 치킨 시켜먹자!!!



튀긴 음식, 정제 탄수화물을 줄이라고 지시를 받은 나에게는 정말 힘든 숙제다.


- 치킨 안돼. 병원에서 치킨 안된다고 했어.

생선 구워서 시금치랑 먹자.

- 아아아아아~!!!!!!!!!! (격렬한 반항)




그나마 오븐에 구운 치킨은 나을 것 같아

결국 어제는 치킨을 시켰다.


은우는 내 눈치를 보며


- 엄마, 나 치킨 못 먹잖아.

- 이 치킨은 괜찮아.

- 진짜?????? 오예쓰!!!!


라며 달려온다.

웃기면서도 속상하고, 귀여우면서도 기특하다.


- 아니, 이게 얼마만의 치킨이냐!

먹는 걸 멈출 수가 없네~!!!

왜 이렇게 맛있어!!

배가 이만큼 나왔는데 왜 배가 고픈거지??

세상에는 왜 이렇게 맛 없는게 없을까?



조잘 조잘 대며 맛있게 먹는 은우를

온 가족이 한가득 미소를 띠고 바라본다.


물론, '적게' 먹는 것이 포인트라서

- 이제 그만 먹어!!! 라고 해야 하는데...


이런 순간에는 정말...

차마 입 밖으로 하기가 힘든 말이다 ㅠㅠ



맛있게 치킨을 먹다가

갑자기 일어나 춤을 추고

또 치킨을 먹다가

노래를 하고

그렇게 즐거운 저녁을 먹더니

- 잘 먹었습니다! 하고는

형이랑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레슬링을 한다.



다음 진료 때는 호된 질책은 벗어났으면 좋겠는데.

아직 4개월이나 남았지만

벌써부터 체한 것 같은 기분이다.



맛있게 잘 먹는게

죄는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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