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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이 Mar 12. 2022

별이 쏟아지는 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아직 텔레비전이 없던 시절이었다. 그러니 해변의 백사장은 밤에도 우리들의 놀이터가 되어주었다. 한여름 낮의 열기로 데워진 집은 저녁에 쉽게 식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모두들 저녁을 먹고 시원한 바닷바람을 쐬러 밖으로 나오곤 했다. 어른들도 백사장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한참을 놀다가 자러 들어갔다. 

여름 밤하늘에 촘촘히 수놓아진 무수한 별들은 너무도 넘쳐서 마치 언제라도 쏟아져 내릴 것 같았다. 우리는 돗자리를 깔고 나란히 누워 찬란하게 반짝이는 별들을 감상하며 국자 모양의 북두칠성 찾기 놀이를 했다. 그러다가 가끔은 별똥별이 떨어지는 게 보이면 모두가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나곤 했다. 누군가가 할머니한테서 들었다면서 떨어진 별똥별은 황금으로 변한다고 해서, 모두가 귀가 솔깃해서 정말이냐고 되물었고 방금 떨어진 별똥별이 학교 뒷산 어디쯤인 것 같은데 찾으러 가보지 않겠냐고 누군가 제의했다. 그러자 금방이라도 뛰어갈 것처럼 너도 나도 일어나 앉았는데, 다른 누군가가 눈으로 보기에는 가까이 떨어진 것 같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멀 수가 있다고 반박하자 이내 모두의 호기심이 식어버렸다.

우리 앞집에는 당시 초등학교 6학년에 다니는 언니가 살았는데, 어린 내 눈에 이 언니는 뭐든 못하는 게 없는 마술사처럼 보였다. 이 언니는 리드쉽도 강해서 저녁이면 종종 동네 아이들을 백사장에 모아놓고 팀을 짜서 축구 비슷한 공차기 놀이도 조직했고 숨바꼭질, 술래잡기 등 온갖 종류의 놀이들을 즐겼는데, 문제가 생기면 언제나 언니가 규칙을 상기시키는 해결사 역할을 했다. 언니와 함께한 놀이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연극이었다. 어떤 내용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언니가 상상해낸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언니는 연극에 사용되는 부품으로 못쓰는 하얀 헝겊조각으로 인형을 만들었는데, 다 만들고 나서 우리가 보는 앞에서 바늘로 인형 다리에 콕 찔렀다. 이게 웬일인가, 바늘로 찌른 자리에서  빨간 피 한 방울이 올라오지 않는가? 나를 비롯한 모든 아이들이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감탄사를 연발했는데 언니는 끝내 어떻게 해서 피가 나왔는지 설명해 주지 않았다. 그것은 지금도 내 기억 속에 하나의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아무튼, 그 일로 인해서 나와 동네 조무래기들은 언니를 마술사로 우러러보며 늘 함께 놀자고 졸졸 따라다녔다. 언니는 진짜 마술사처럼 무엇이든 놀이에 필요한 거면 척척 잘 만들어냈고, 상상력도 무궁무진해서 우리를 늘 즐겁게 해 줄 줄 알았다. 아쉽게도 초등학교를 졸업한 해에 언니는 우리에게 인사 한마디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집안이 가난했던 언니는 당시의 가난한 시골 소녀들이 어김없이 택하는 길인 공장 노동자나 도시의 부유한 가정의 식모살이로 가지 않았나 싶다.

음력으로 칠월 칠성 날이 오면 우리는 밤을 애타게 기다렸다. 그날 밤은 견우와 직녀가 1년에 한 번 만나서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그 눈물이 비가 되어 바다와 땅을 적신다는 이야기를 우리는 어디선가 주워 들었다. 따라서 이날 밤 바닷물은 약수가 되어 피부에 아주 좋을 뿐만 아니라 피부병도 낫게 해준다고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밤이 이슥해져 10시 전후가 되면 꼭 보슬비가 얼마간 내렸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 기억 속 그 시절은 그랬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아이들은 모두 발가벗은 채 바닷가에 뛰어 들어가 물놀이도 하고 수영도 하면서 놀았다. 피부의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팬티도 입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심지어는 몇몇 어른들도 발가벗고 우리와 합세했다. 달도 없는 캄캄한 밤이었으므로 사실은 서로의 벗은 몸이 잘 보이지도 않았다. 우리는  차돌이나 부싯돌을 주어서 서로 마찰시켜 불을 밝히기도 했고, 어둠이 짙은 만큼 반딧불을 뒤에 달고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개똥벌레들이 더욱 잘 보였는데 우리는 그들을 잡아 손바닥에 갇혀놓고 밝게 빛나는 꽁무니들을 신기하게 바라보기도 했다.

애석하게도 언제부턴가, 아마도 내가 초등학교 2, 3학년 때 지부 터지 싶은데, 여름밤의 이러한 낭만을 더 이상 즐길 수가 없게 되었다. 동해 바다 일대에 북한 간첩선 사건이 터졌는데, 이후 저녁 8시부터 해변에 나오는 것을 금지시켰기 때문이다. 당시 어느 동해 해변가에 누군가가 허락 없이 밤에 바닷가에 나갔다가 총살당했다는 무시무시한 소문도 떠돌기 시작했기 때문에 우리는 해가 지면 더 이상 해변으로 달려 나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렇게 북한 간첩선 때문에 우리의 너무도 낭만적이고 즐거운 여름밤의 놀이터를 빼앗겨버린 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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