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가 아직 전 세계를 강타하기 전만 해도, 나는 일 때문에 혹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한국을 자주 방문하게 되었는데, 서울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나는 한국분들, 특히 여자분들이 내게 종종 하는 질문들이 있다.
–어디서 오셨어요? 여기 분이 아니신 것 같은데……
–네, 여기 사는 사람이 아니에요(웃음).
–어디 멀리서 오신 것 같은데, 혹시 외국에 사세요?
–네, 프랑스 파리에 살아요. 잠깐 다니러 왔어요. 근데 어떻게 그걸 아세요?
–옷이나 머리 스타일, 얼굴도 좀 그렇고……암튼 뭔가 서울 사람하고는 좀 다른 것 같아요(웃음). 와, 파리에 사세요? 정말 좋은 데 사시네요. 실례지만, 무슨 일을 하시는데요?
한국인들의 호기심은 정말 못 말려라고 내심 생각하면서도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나는 내 주업이 한국문학을 프랑스에 소개하고 번역하는 작업이라고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그랬더니 나더러« 와, 멋있어요 »를 연발한다. 내가 뭐가 멋있냐고 하니까 그냥 모든 게 다 멋있단다. 멋진 곳에서 보람되고 멋있는 일을 하는 내가 너무 멋있어 보인단다. 나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은 부러움으로 가득 차 있고, 부러움의 대상이 된 나는 자부심으로 가슴 뿌듯함을 느낀다.
내가 프랑스로 건너와 정착한지는 어느덧 30년을 훌쩍 넘기고 있다. 이제 프랑스에서 산 햇수가 한국에서 산 햇수보다 많아지고 있으니 나는 거의 프랑스인이 다 된 셈이다. 파리 생활 30년 중 거의 20년을 넘게 한국문학 번역활동에 할애해 왔기에 이제 나는 프랑스 출판계에서 어엿한 한국문학의 전도사로 굳건한 자리를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20여 년간 나는 한국 유수 작가들의 소설은 물론, 아동 그림 앨범 및 청소년 소설과 만화들을 쉬지 않고 꾸준히 번역해온 결과 내 손을 거쳐 프랑스에 출판된 한국 작품들의 수는 모든 장르를 합해 이제 거의 300 타이틀을 거의 넘기고 있다. 이렇게 번역된 작품들은 프랑스에서 별로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진 작품들도 적잖아 있지만 그래도 상당수가 한국 문학이 프랑스 도서 시장을 뚫고 한 자리를 차지하는데 기여했다고 자부할 수 있다.
나는 어떻게 프랑스에서 한국문학을 알리는 전도사가 되었는가? 여기까지 오는 길은 결코 쉽지 않았다. 인생은 원하는 대로 살아지지 않는다고 누군가가 말했듯이, 이 길은 내가 전혀 의도하지 않은 길이다. 애초에 문학도가 아니라 교육학도였고, 교육학도로서의 내 꿈은 프랑스에서 박사학위를 받아서 모국으로 돌아가 교편을 잡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 운명은 내 의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를 끌고 갔다. 아니다. 나 스스로 상황에 맞추어 내 의지를 바꾸고 내 운명을 손에 거머쥐고 그 행로를 바꾼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결코 후회하지 않으며 오히려 감사와 행복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