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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이 May 01. 2022

프랑스 출판 시장에 첫발을 내딛다


조정래 작가의 소설집 « 유형의 땅 »을 문예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1999년에 번역을 완성하고 나니 산너머 산이라고 또 하나의 높은 산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번역한 작품을 출간해줄 프랑스 출판사를 찾는 일이었다. 조 작가의 이 소설집이 나의 첫 번역작이었기에 당시의 나는 프랑스 출판계에 아는 사람이 전혀 없었고 또한 이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는 문외한이었다. 한국 작품을 출간했다는 몇 안 되는 출판사들에 원고를 보내 봤으나 묵묵부답이었다. 그러다가 마침 조 작가의 « 불놀이 »및 대하소설 « 태백산맥 »을 출간해내고 있는 아르마탕 출판사를 알게 되어 원고를 넘겼는데 흔쾌히 출간해 주겠다고 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지금이야 번역 계약서 사항들을 꼼꼼히 살피고 번역가 저작권료 퍼센티지도 요구하지만 아무것도 몰랐던 당시에는 그런 디테일한 사항들에는 아예 관심이 없었고 또한 프랑스에서 한국 문학에 대한 인지도가 아주 낮았던 시절이라 그저 출판해 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했다.

첫 작품의 번역과 출간을 무사히 마친 나는 차기작으로 내가 늘 관심 가지고 있던 그리고 첫 시도에서 실패했던 황석영 작가의 작품으로 다시 한번 도전해보고 싶었다. 처음 선택했던 단편집은 놓아두고 이번에는 중단편집이었다. 나는 샘플을 번역하고 만반의 서류를 갖추어 현 한국문학번역원의 이전 명칭인 한국문학 번역 금고에 보냈다. 그리고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파리에 있는 한국인 지식인들과 모임을 가지고 유럽 한인사 계획안을 짜느라 분주히 쫓아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서울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다름 아닌 문학 번역 금고에서였는데, 내가 선택한 작품이 다른 후보자와 중복된 것이니 같은 작가의 다른 작품을 번역해보지 않겠냐고 권유했다. 이것은 곧 번역 지원을 해주겠다는 소식이어서 뛸 듯이 기뻤고 그의 제의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황석영 작가의 여러 작품들 중 생각해보고 빠른 시일 내 번역할 작품을 선택해서 알려드리겠다고 했다. 이렇게 해서 나의 두 번째 번역 작품이 된 것이 황 작가의 « 무기의 그늘 »이었다. 상. 하권으로 되어있는 7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소설이었다.

두 번째로 번역 작업에 임하면서 나는 번역가의 직업이 내 적성에 아주 잘 맞는다는 생각이 더욱 확고해졌다. 또한 한국문학의 번역을 통해 한국을 프랑스에 알리는데 일부나마 기여한다는 점에서 나는 뿌듯한 자부심과 보람을 느꼈으니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런 만큼 나는 그 일을 사랑했고 거기에 내 열정을 쏟아부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행복이었다.

이 두 번째 작품은 프랑스 출판사를 찾기 위해 애써 노력할 필요가 없었다. 왜냐면 번역이 끝나갈 무렵, 어느 한불 커플 번역가들의 노력으로 황석영 작가의 작품들 및 기타 한국 문학 작품들을 본격적으로 출간하기 시작한 쥘마 출판사에서 먼저 연락이 와서 « 무기의 그늘 »출간에 큰 관심이 있으니 원고가 끝나는 대로 보내주면 고맙겠다고 했다. 나로서야 너무도 반가운 소식이었기에 흔쾌히 승낙했다.

당시만 해도 인터넷이 아직 활발하지 않은 상황이라 많은 정보들을 일일이 사전이나 백과사전 등을 통해 검토해야 했기때문에 700페이지 이상되는 소설을 번역하는데 많은 시간과 각고의 노력이 필요했다. 

그러나 2003년 4월, 드디어 책이 출간되고 황 작가가 프랑스에 초대되어 라디오 및 여러 매체들에 인터뷰를 하는 등, 관심을 끌었을 때는 정말 기쁘고 보람이 있었다. 모든 행사가 끝난 후, 황 작가는 번역가들과 출판팀 멤버들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파리에 있는 한 한국식당에서 저녁 회식을 마련했다. 그날 저녁 나의 권유로 그는 아주 멋진 노래까지 한곡 뽑아서 분위기를 살렸는데 그런 그의 호탕하고 정렬적인 성격이 마음에 들었다. 정말 즐겁고 유쾌했던 저녁 회식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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