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2(태조 정종)
이방원 vs 정몽주
새로운 국가건설을 처음 상상한 사람은 정도전이다. 그리고, 개국 전 발생한 예상 밖의 위기 - 정몽주의 항거 - 에 대처하는 새로운 방법을 창안한 인물은 이방원이다. 정치력을 발휘해 설득하는 대신 무력을 사용해 제거하는, 생각은 할 수 있으나 실행하기엔 잔인한 방법 말이다. 방원이 이 방법을 자신의 정적이 되는 부친에게도 사용하게 될 줄이야.
우왕이 최영과 손잡고 기득권층(권문세족)을 쓸어버리게 되는 과정, 그리고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하고 나서 우왕과 최영 등을 처단하는 과정까지 동의했던 정몽주가 역성혁명에 이르러서는 반대의사를 명확히 하며 고려 지킴이로 변신한다.
목은 이색의 제자들이 주력인 신진사대부들의 상당수가 정몽주 라인으로 줄을 서게 되면서 이성계 일파는 순간 수세에 몰린다. 정몽주가 공양왕과 손을 잡고 이성계 일파를 정면 공격하면서 고려 조정은 순식간에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게 된다.
이런 와중에 이성계는 병들어 누워있고, 정도전은 개경을 벗어나 있었으며, 이방원은 모친인 신의왕후 한 씨의 상중이라 시묘살이 중이었다. 이방원은 '정몽주만 제거하면 되는 것 아닌가?' 생각하고 즉각 실행에 옮긴다. 백주대낮에 말을 타고 선지교(뒤에 선죽교가 된다)를 지나던 정몽주에게 철퇴를 내리친 것이다. 이성계는 경악했지만 방원의 덕에 왕좌를 차지하게 된 것은 엄연한 사실이었다.
정도전
정도전이 꿈꾼 나라는 재상 중심으로 구성된 내각이 시스템을 이루어 운영되는 국가였다. 왕정이라는 제도는 실력이나 자질에 상관없이 세습되는 왕이 다스리는 제도다. 그는 국가의 안위가 한 인물의 됨됨이에 달렸다는 것 자체를 대단한 리스크로 본 것이다. 이성계의 생각도 같았다. 그래서 이성계와 정도전은 후계자를 방원으로 하지 않고 막내 방석으로 정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정무, 재정, 군사 등 국가의 중요한 업무를 모두 정도전을 비롯한 신하들이 맡아 처리했다. 누가 왕이 되든 시스템이 완벽하면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정도전에 대해 생각해봐야 할 점은, 요동정벌 주장이다. 고려와 조선의 영토는 압록강과 두만강 북쪽으로 되어 있다. 좌측으로는 현재 중국의 심양 일대를 가리키는 철령, 우측으로는 공험진이라는 곳인데, 두만강 북쪽으로 700리 지점이다.
조선을 개국하고 나서 정도전이 명나라에 일종의 신고식을 하러, 사신으로 가게 됐는데, 다녀오다가 산해관을 지나며 했다는 말이 실록에 등장한다. "(명과의 관계가) 잘 되어간다. 만일 잘 안 풀리면 군대를 이끌고 와서 한바탕 해주지.(2권, 130쪽)"
이덕일 박사의 설명에 따르면, 정도전이 명을 다녀오면서 했다는 이 말을 명나라의 홍무제(주원장)가 알게 된 것은, 정도전이 명을 둘러싸고 있는 여진이나 말갈, 선비 족 등의 주요 우두머리들을 접견하고 우애를 다지면서 조선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후 명의 홍무제가 표전문 - 표문은 황제에게 전문은 황태자에게 쓰는 글로 사신들이 명나라에 갈 때 가지고 간다 - 사건을 일으켜 생트집을 잡는 이유는 정도전을 잡아 죽이기 위해서였다. 표문의 교정을 정도전이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성계와 정도전은 명의 위협에 굴복하고 말 인물이 아니었다. 조선은 위기를 기회로 삼고, 사병을 혁파한다. 병권을 일원화해 중앙집권 체제를 강화한다.
이방원 vs 정도전
이방원이 정도전을 대신해 사신으로 가면서 홍무제를 알현하게 되는데, 홍무제는 이방원과 시를 주고받을 정도로 극진히 대우한다. 정계의 중심에 있는 인물도 아니었고, 세자도 아닌 이방원을 극진히 대우한 배경에는 정도전 견제에 있다고 할 것이다.
이성계와 정도전은 이방원이 정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아들이 부친을 어떻게 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권력이라는 것은 부자지간에도 나눌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몰랐을까? 정적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정적(정몽주)을 살해한 전과가 있는 인물이었다. 두 번째 부인 신덕왕후 강 씨의 소생, 방석을 세자로 결정했을 때는 모든 경우의 수를 상상했어야 했다.
왕자의 난
1차 왕자의 난으로 이성계는 날개 잃은 독수리가 되고 말았다. 이방원은 이성계의 측근을 모두 사살한다. 저자 박시백은 목을 베이기 직전 정도전이 지었다는 시를 소개한다.
자조
조심하고 조심하여
공력을 다하여 살면서
책 속에 담긴 성현의 말씀
거스르지 않았다네
삼십 년 긴 세월
고난 속에 쌓아온 일
송현방 정자 한잔 술에
그만 헛일이 되었구나
(2권, 160쪽)
다시 정도전
정도전은 난세의 영웅이라 할 만한 인물로 보인다. 고려말, 원나라가 기울고 명이 발호할 때 중립외교의 기치를 세워 들었고, 조선초에는 명에 대해 사대는 하지만 결코 비굴하게 굴복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자국 중심의 외교를 알았던 인물이다. 법전과 음악서적, 병서, 고려사 편찬 등과 같이 실무를 하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중에도 어마어마한 저술활동을 한다.
이성계 정권에서 실세 중 실세였던 정도전은 그래서 불만세력들에 의해 시기와 질시를 받는다. 그러나 그는 부도덕한 행위를 하거나 불법적 치부를 하지 않고 늘 검소했다. 사적인 영달을 위해 국가운영에 참여하지는 않았다는 반증이다.
정도전이 조선이 반도에 국한된 나라로 머무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기개와 호연지기가 넘치는 인물이었다. 용의 꼬리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드넓은 대륙으로 진출하고자 했던 열혈남아 이성계와 정도전의 집권은, 개국 8년만에 막을 내렸다.
그들의 꿈은 이제 막 서른을 넘긴 뱀 대가리에 만족하려는 아들 자식, 방원에게 거세당하는 운명을 맞게 된다. 대륙 진출 모색은 더 이상 조선에서 유행하지 못하는 옛 꿈이 되고 조선 중기에 가서는 급기야 헛꿈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