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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방여자 Mar 09. 2023

10년째 전 주인의 우편물이 온다


042로 시작되는 전화가 왔다. 이런 전화는 보통 스팸성 전화일 가능성이 높다. 그냥 끊으려다 불현듯 반드시 전달되어야 할 언어가 두 손을 그러모은 채 절박한 심정으로 저편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높은 확률로 그것이 아닐 가능성을 버리고 하필 그 낮은 확률을 기대하며 통화 버튼을 누른다.


안녕하세요. 000 고객님 맞으시죠? 역시다. 그제야 나는 어제도 비슷한 전화번호를 보고 같은 사고의 경로를 지나 통화 버튼을 눌렀던 기억이 난다. 이 정도 경험치면 중요한 전화일 확률이 점점 더 희박해지고 있다는 것을 알만도 한데 늘 같은 결론에 이른다. 이제는 나조차 그 낮은 확률의 가능성은 도대체 어떤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하는지 궁금해질 지경이다.  


다급한 목소리로 지금 회의 중이라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말을 하며 길어지려는 말을 자른다. 고객님. 건강검진 받으시죠? 이 상품은 기존과 달리 보장 내용이... 충분히 예상한 일이라는 듯 내가 미처 말을 끝내기도 전에 속사포 랩을 하듯 말허리를 자르고 들어온다. 끝까지 설명을 듣더라도 내가 그분의 요구에 응할 일은 전혀 없을 것이므로 긴 통화를 지속하는 것은 미안한 마음을 지연시키는 일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럼에도 일방적으로 끊어버리는 것은 내심 미안한 마음이 들어 연거푸 사과를 하며 멀어지는 목소리를 듣는다.  


이런 경우 예정된 일이었다는 듯 이내 받아들이고 같이 통화를 종료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아무리 거절을 해도 끝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말어깨를 걸고 계속 말을 잇는 사람이 있다. 오늘은 후자다. 멱살을 잡고 나를 휴대폰 속으로 끌어당길 듯한 기세다. 살짝 무거운 마음이 드는 순간 재빨리 종료 버튼을 누른다.  


종료 버튼을 누르기 직전 약간 탄식 비슷한 것을 들은 듯하다. 그이도 하나의 직업일 뿐인데 이렇게 매번 거절만 당하는 기분이 어떨까 하는 마음이 든다. 그냥 기계적인 멘트를 내뱉을 때는 말을 끊고 매몰차게 끊기가 수월했는데 감정이 담긴 짧은 탄식 하나에 마음이 잠시 주춤한다. 감정이 섞인 목소리가 전해지면 그 이면의 사람이 느껴져서 마음이 불편하다. 다음엔 망설이지 말고 그이가 헛된 소모를 하기 전에 바로 종료 버튼을 누르리라 다짐마저 한다. 걸려온 전화를 받고 마땅한 거절 의사를 밝히면서 이렇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굳은 다짐까지 해야 한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든다.


수많은 대상자 중 아주 미미한 확률이었을 뿐인 내게 전화를 하면서 그이는 과연 어떤 기대를 품었을까? 낮은 확률의 기대가 내겐 가벼운 호기심이었지만 누군가에겐 무거운 탄식이기도 했다.




외출을 했다가 돌아오는 길엔 어김없이 우편함에 눈길이 간다. 똑같이 생긴 모양의 작은 우편함이 층층이 쌓여있는 곳에 어림잡아 시선을 두어도 중간즈음의 우리 집 호수가 적힌 우편함에 얼추 맞아진다.


두 개의 우편물이 투입구를 비집고 나와 있다. 나른하게 걸쳐있는 본새가 봄날에 전해진 우편물답다. 하나는 여성가족부에서 보낸 우편물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 집 전 주인 앞으로 온 우편물이다. 반송함으로 도로 넣으면서 우리가 이 집에 온 지 얼마나 되었는지 어림해 본다. 거의 10년이다. 이전에도 여러 번 전 주인의 우편물을 반송함에 넣었던 기억이 난다. 그럼 적어도 10년 사이 아주 여러 번 우편물이 길을 잃고 헤매었다는 말이 된다. 그 속에 담긴 글은 미처 태어나지도 못하고 사그라들었을지도 모른다.


직장에 있으면 전 근무자 또는 전전 근무자의 우편물이 배송되는 경우가 있다. 나의 우편물도 전 근무지 또는 아주 오래전 근무지로 갔다가 현재의 부서로 오기도 하고 중간에서 사라지기도 했다. 우편물 수령지를 바꾸면 되는 일이지만 대개 그리 중요하지 않은 우편물이라 매번 그러고 말았다. 어딘가에서 의미 없이 폐기될 것을 알았지만 수령지를 바꾸는 일은 그 일의 번거로움을 넘어서는 중요한 일이 되지 못했다. 나를 수신인으로 하는 많은 우편물들도 지금 어딘가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을지도 모른다. 과거의 내가 속해있던 어딘가에서 과거의 나를 찾아 배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무실엔 누군가에게 다다를 우편물보다는 버려질 것을 알고도 도착하는 우편물이 더 많다. 발행되는 순간 버려질 운명에 처하게 되는 그들은 어쩌다 만날지도 모르는 아주 낮은 확률의 주인을 기대하며 흩뿌려지곤 한다. 동봉할 때는 어김없이 희망을 품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읽히지 않는다면 곧 사라질 글이기에 그들에게 아주 낮은 확률의 기대는 곧 살아남, 생을 의미했다.  




말과 글은 누군가에게 다다라 비로소 삶이 시작된다. 그들은 오늘 태어나 오늘 죽음을 맞이하기도 하고, 아예 태어나지 못하기도 한다. 위태로운 목숨 앞에 한껏 의기소침해진 그들에게 나 역시 어느 날 그들의 생사를 심판하는 자가 되기도 한다.


내게 오기 위해 필사적이었을 그들을 위로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낮은 확률에 기댄 그들의 절박함에 귀 기울이는 일뿐이라 나는 매번 걸려오는 전화를 알면서도 또 받곤 한다. 그리고 내일은 내게 오는 글이 하루라도 사는 삶을 위해 우편물의 수령지를 바꿔볼 참이다.  



# 사진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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