퐁피두 센터 산책하기

Paris, 첫 번째

by 방토

나처럼 미술에 대한 지식이 깊지 않은 사람에게 현대 미술은 괴로운 것이었다. 언젠가 한 번은 마크 로스코의 색면 추상 작품을 보고 눈물을 쏟아낸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현대 미술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던 나는 그 감정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작품이 탄생하기까지의 수많은 고뇌와 소신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이게 예술이라면 나도 할 수 있겠다.’


그러한 현대 미술 작품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는 퐁피두 센터. 그곳에 간 이유는 단순했다. 파리 3대 미술관 중 하나인데 안 간다면 아쉬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현대 미술에 대해 큰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얕은 궁금증 정도만이 있었다.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면 괴상하기 짝이 없는 그 외관의 모습 때문이었다. 독특한 외관이 주변의 도시와 어떻게 어울리는지, 그리고 겉으로 드러난 배관들은 무슨 이유로 그 자리에 있는 건지 알고 싶었다. 그런 이유로 나는 어느 하루의 반나절을 그곳에 가는 데 쓰기로 했다.


전에 마레 지구를 걸어 다닐 때도 퐁피두 센터의 뒷모습 혹은 옆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그곳이 퐁피두라고 말하지 않아도 거대하고 알록달록한 파이프로 둘러싸인 모습이 그곳의 이름을 말해주고 있었다. 의외로 그 모습은 상상했던 것보다 덜 어지러웠다. 바깥을 둘러싸고 있는 파이프들은 알록달록한 장난감 블록 같았고, 나름의 규칙을 가진 듯 조화로웠다. 사실 조화롭다는 말이 어울리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하게도 조화롭고 웅장하고 거대했다.


생각보다 멋들어진 뒷모습에 기대를 품고 퐁피두 센터의 정면으로 걸어갔다. 그렇지만 대규모 주차센터 같은 정면의 모습에 조금 어지러운 기분이 들었다. 현대적이며 산업적인 냄새를 잔뜩 풍기는 쇠파이프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화물 센터 같기도 했고, 짓다 만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곳에 들어가기 전부터 걱정이 앞섰다. 현대미술이라는 것도 어쩌면 퐁피두 센터와 아주 유사한 것일지도 몰랐다. 난해하고 어지러우며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 말이다.


그곳에 예약 없이 갔지만 오래 기다리지는 않았다. 입구 앞쪽에는 여러 줄로 서서 시간대별로 입장할 수 있었다. 건물 바깥에 달린 투명색 통로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 모습은 장난감 세상을 보는 것처럼 귀여워 보였다. 내가 향하는 전시실도 저곳을 통해 올라가는 것이라면 꽤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나의 예상이 맞았다.


1층에서 팸플릿을 하나 집어 들고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타 6층으로 올라갔다. 투명색 파이프 속에 있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동안 바깥의 풍경이 보였다. 계단을 외부에 두어 공간을 확보하고, 올라가는 동안 전경도 볼 수 있도록 한 설계는 꽤 마음에 들었다. 그 점에서 그 독특한 구조에 대한 실용성을 조금 납득했다. 다른 파이프 배관들도 색깔마다 용도가 있다는 사실도 나중에 알게 되었다.


6층으로 올라가서 숨을 가다듬었다. 벌써 조금 피곤해진 몸을 쉬기 위해 의자에 앉았다. 입구 쪽에 있는 전시들은 다행히도 조금은 익숙한 예술이었다. 앙리 마티스의 그림을 포함해 다른 미술관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작가의 그림들이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보며 조금 안심했다. 알쏭달쏭한 세계에 발을 들이기 전,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얻은 기분이었다.


방을 지날수록 작품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것들이 점점 변해가는 게 느껴졌다. 여러 사물들을 엉뚱하게 배치한다던지, 알 수 없는 형태로 변형시키는 방식의 그림들이 있었다. 그것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그 물체의 본질이 무엇인지 추리했다.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작가의 머릿속에 들어가 그가 무엇을 그리려고 했는지 유추했다. 그 후로는 네모의 캔버스가 아닌 작품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더니, 다양한 소재와 물체로 실현한 예술 작품들이 나타났다. 걷다가 그 유명한 뒤샹의 변기가 아무렇지도 않게 등장한 것은 내게 나름 충격적인 일이었다. 현대미술에 한 획을 그은 그런 작품을 그냥 걷다 보니 발견한 것이다. 파리라는 도시를 경험하며 줄곧 느껴왔던 것들을 확신한 순간이었다. 예술의 도시란 이런 곳이구나. 일상과 맞닿은 거리에 어디에나 예술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혼자 사색에 빠져 미술관을 걸었다. 의미를 잘 알지는 못해도 나만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관람도 나쁘지 않았다. 나는 그곳에서 생각보다 겉돌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곳에 들어온 순간보다 더 다양한 시각을 펼치고 있는 것 같았다. 평소에 쓰지 않던 새로운 뇌의 영역이 활성화되는 느낌과 비슷했다. 겁먹은 만큼 지루하지 않았고, 걱정했던 만큼 어렵지 않았다. 나름대로 관람을 즐긴 후에는 그것들에 대해 심도있게 이해해보려고 현대미술을 좀 더 공부하고 싶어졌다.


파리의 전경이 보이는 테라스에서 밖을 바라봤다. 가장 높은 곳이라던 몽마르트르 언덕의 성당이 비슷한 높이에서 보였다. 파리의 전경을 볼 때마다 이 도시가 얼마나 작은지 알 수 있었다. 그 작은 도시 안에 수많은 공간과 작품, 역사가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퐁피두 센터에서의 반나절의 시간은 턱없이 모자랐다. 나의 체력도 이 도시를 짧은 시간 안에 파악하기에 한없이 부족했다. 그래도 파리에 대해 점점 알아가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이질적이라고 느꼈던 퐁피두 센터의 독특한 모습도 자연스러운 파리의 일부라고 점차 받아들이게 되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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