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투앙 벼룩시장 구경하기

Paris, 첫 번째

by 방토

파리 여행기를 써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따지고 보면 생투앙 벼룩시장 때문이다. 생투앙 벼룩시장에 가기로 결정하고 이것저것 검색했을 때, 주말에만 열리는 벼룩시장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았다. 인터넷에 방브 벼룩시장에 대한 글들은 많았지만 생투앙 벼룩시장에 대한 글은 몇 개 없었다. 나는 그곳에 볼만한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몇 시쯤에 가야 구경할 것들이 많은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물건을 내놓고 파는 벼룩시장에서 치안이 좋지 않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도.


사람들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방브 벼룩시장을 많이 가는 것 같았지만, 나는 물건이 더 많다는 생투앙 벼룩시장이 더 끌렸다. 훨씬 다양한 품목의 물건들을 구경하다 보면 쓸만한 물건을 하나쯤 건져올 수 있지 않을까? 구경은 물론 기억에 남을 기념품 같은 물건을 하나 사고 싶었다. 나의 취향은 꽤나 까다로워서 장식적이기만 해서는 안되며 실용적이어야 했다. 예전에는 작고 예쁜 장식품들을 좋아했지만, 나이를 몇 번 먹었다고 그런 것들이 좀 쓸모없게 느껴졌다. 쓸모 있는 물건을 사기 위해서는 생투앙이 더 나아 보였다.


일요일 오후 두 시쯤 생투앙 시장으로 향했다. 그날의 즉흥적인 선택으로 출발했으므로 이미 흘러간 오전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다행히 해가 많이 비치는 맑고 따뜻한 날씨였다. 아침만큼 분주하지는 않을지 몰라도 날씨 좋은 주말에 느긋하게 시장을 구경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트램으로 갈아타 몇 정류장을 간 후에 어렵지 않게 정류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시장 입구까지 걸어가는 길은 생각보다 험하지 않았다. 언제나 그랬듯 별 잡념을 하며 걷다 보니 이미 시장 입구에 도착해 있었다.


입구에는 먹음직스러운 크레페 트럭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달달한 냄새가 풍겨와서 그걸 당장 먹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들었다. 하지만 현금이 없는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이 시대에 카드 안 되는 곳이 어디 있냐는 생각은 안일했다. 일단 시장을 구경하다가 진짜로 사고 싶은 것이 생겼을 때 현금을 뽑기로 했다. ATM이 어디 있는지 위치만 확인해 두고 우선 그쪽으로 걸어가며 시장을 구경했다.


시장에는 수많은 종류의 물건들이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낡은 LP들이었다. 그것들은 상자에 빽빽하게 꽂혀 있었다. 좋아하는 가수의 LP를 가끔 사곤 했던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한국에서는 턴테이블로 음악을 듣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에 LP들이 비싼 가격에 사고 팔렸다. 나는 값싼 LP들을 구경하며 좋아하는 아티스트나 평소에 자주 듣던 음반들이 있는지 보았다. 생각보다 아는 아티스트의 음반이 많아서 음악 팬이라면 건질 만한 것들도 많아 보였다. 하지만 수많은 것들 중에서 내가 수없이 많이 들은 앨범은 찾지 못했다.


LP 가게를 지나쳐서 옷이 걸려 있는 상점들을 둘러보았다. 바깥쪽에 걸려있는 옷들이 그 가게의 간판 역할을 했다. 안쪽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옷들이 빽빽하게 걸려있었고, 무더기로 쌓여 있기도 했다. 명품 브랜드의 옷들은 물론, 지금 시기에 입기 좋은 따뜻한 코트들이 보였다. 나는 생각보다 추운 9월의 파리에서 코트를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여러 개의 코트들을 꼼꼼히 보고 맘에 드는 것들은 입어보았다. 갈색 알파카 코트가 따뜻하고 마음에 들어서 진지하게 고민했지만, 나에게 잘 어울리는 색깔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것도 사기를 포기했다.


계속 이어지는 상점들에서 다양한 그릇과 장식품, 가구들을 구경했다. 쓸모를 찾자면 그리 실용적이지는 않은, 예쁘기만 한 인테리어용 장식품들이 많았다. 혹은 나의 집에는 어울리지 않는, 들고 갈 수도 없는 거대한 샹들리에도 있었다. 그런 물건들을 누군가는 사간다고 생각하니 물건마다 각자의 주인이 있겠구나 싶었다. 나도 나에게 꼭 필요한 물건을 찾아보려고 열심히 시장을 탐색했다. 인테리어 소품보다는 귀걸이, 목걸이 같은 액세서리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의 취향에 맞는 것들이 유독 많은 한 가게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그 옆 가게도, 그 옆옆 가게도 모두 목걸이를 팔고 있었지만 그 가게에 특히 눈길이 갔다. 평소에 보지 못했던 특이한 모양의 목걸이들이 많았다. 특히 동물, 곤충 등 생명의 형태를 활용한 디자인이 눈에 들어왔다. 신중하게 하나만 고르자고 한참을 서서 고민하다가 가장 인상적인 모양의 목걸이를 하나 집어 들었다. 손바닥 모양 안에 번쩍 뜬 한쪽 눈이 박혀있는 디자인이었다. 나는 그걸 사기 위해 하고 ATM으로 향했다.


생투앙 시장의 상점들은 대부분 다섯 시면 문을 닫았다. 현금을 인출하러 다녀오는 사이에 상점 주인아저씨는 짐 보따리를 다 싸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걸 모르던 나는 시장의 전체 크기도 가늠을 하지 못한 채 시장의 반의 반도 둘러보지 못했다. 마지막 손님이 된 나는 특이하게 생긴 목걸이를 목에 걸고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햇빛의 색깔은 점점 주황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생투앙 시장은 걱정했던 것과 달리 위험하지 않았다. 입구에 있는 크레페 트럭을 다시 만났을 때는 누텔라 크레페를 하나 주문했다. 누텔라 반 통은 들어간 것 같은 달디 단 크레페는 정말 맛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구경하지 못한 생투앙 시장의 다른 골목들 생각이 아른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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