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is, 첫 번째
그와 나의 공통점은 실오라기 한 가닥만큼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에게 무슨 일을 하냐고 물어봤을 때 돌아온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그는 나와 완벽히 같은 직종에 종사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잘 지내보기 어려울 것 같은 그였지만, 당황스러운 만큼 예상외로 문제는 쉽게 해결되었다. 그는 내 손바닥 안에 들어온 것이었다. 예측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그의 말과 행동이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무언가 잘 안되던 대화의 오류는 점차 해소되기 시작했다. 공통적으로 아는 이야기가 생기자, 드디어 양방향의 대화가 이루어졌다. 사람 간의 관계에서 공감이라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조금 더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대화에 존중이 생겼을 때, 나는 비로소 그의 모든 사고방식을 이해할 준비가 되었다. 어딘가 불편했던 마음은 점차 사그라들었고, 여행을 진심으로 즐기기 시작했다.
차를 타고 달리다 보니 어느새 바닷가 마을에 도착했다. 우리의 리더님은 점심을 먹을 식당을 미리 예약해 둔 것 같았다. 예약 시간보다 20분 정도 늦게 도착했지만, 그는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프랑스에서는 조금 늦어주는 게 예의라나 뭐라나. 그 말이 진짜든 아니든 여유로운 프랑스가 맘에 들었다.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한 날씨와 그에 어울리는 느긋함을 즐길 때 행복을 다 가진 것 같았다.
우리가 찾아간 곳은 해산물 음식점이었다. 바닷가 마을답게 싱싱한 해산물 요리를 파는 식당이 모여 있었다. 문어요리, 관자요리, 굴을 주문했고, 메인 디시로는 싱싱한 해산물 디시를 주문했다. 랍스터와 대게, 각종 조개와 새우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고, 그 사이에 함께 먹을 수 있는 버터가 놓여 있었다. 해산물을 먹는 순간 감동이 밀려왔다. 그렇게 신선하고 달큼한 해산물은 처음이었다. 이제까지 프랑스에서 먹었던 음식 중에서 가히 최고라고 말할 수 있었다.
해산물 요리를 먹고 시드레를 사서 공원으로 갔다. 푸른 잔디가 멀리까지 펼쳐져 있었고, 잔디 위에는 장난감 같은 하늘색 벤치들이 놓여있었다. 가끔 산산조각 난 벤치들이 있었는데, 누구도 고치지 않고 방치해 둔 모습이 게임 속 장면 같기도 했다. 그곳은 도시의 공원과 달리 사람이 거의 없어서 더 평화롭게 느껴졌다. 우리는 공원의 안쪽까지 천천히 걸어가 적당한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대낮에 가볍게 시드레를 한 잔씩 마시며 오후를 누렸다. 몽롱해진 기분 탓에 그 평화로운 오후가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때 검은색 벤이 잔디 위로 굴러와 우리 앞에 멈춰 섰다. 제멋대로 달려온 벤에서 몇 명의 사람들이 내려 트렁크에 있는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들은 기타와 앰프, 마이크였다. 공원 한복판에 그 장비들을 설치하는 모습을 계속 바라보았다. 공연이 있겠거니 생각했다. 주변을 둘러봤지만 관객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은 우리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주변은 신경도 쓰지 않고, 심지어 우리를 등지고 앉아 기타 연주를 시작했다.
그들은 한참 동안 그들만의 신나는 연주를 즐겼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귀로는 음악을 듣고 한참을 멍을 때렸다. 몇 시간이 지났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점점 하늘이 연해지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낮은 사라져 갔다.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조금 걸었다. 백조도 보고, 바다도 보고, 주황색 일몰까지 봤다. 그리고는 집에 돌아가기 위해 다시 차에 올라탔다.
많은 것을 하지는 못했지만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느낌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보다 더 편해진 그들을 보며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를 마음 놓게 만들었고, 그 하루를 따뜻하다고 느끼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나와 결이 아주 달랐던 그 사람마저도 좋은 사람으로 미화되었다. 그는 느린 나의 말의 속도에 점점 맞추게 되었고, 그 차분함을 맘에 들어했다. 절대 맞춰지지 않을 것 같던 그가 변했으므로, 이 하루는 배려가 가득했던 날이었음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