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is, 첫 번째
오랑주리에 있는 모네의 대장식화를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다. 내가 그의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나와 비슷한 면이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모네가 자연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자연이 변화하는 모습에 얼마나 큰 힘이 있다고 믿는지 알게 되었을 때, 나 역시도 자연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했고, 우주의 힘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은 자연이라고 믿었다. 그래서인지 모네의 그림 속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그 작품들을 보면 인간과 자연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모네의 작품 중 가장 보고 싶었던 것은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그렸던 대장식화였다. 자연광이 들어오는 전시실에 사방으로 걸려있을 거대한 그림들을 단지 사진으로만 보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였다. 모네는 관람객이 그것들을 연속적으로 보게 함으로써 정원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효과를 만들고 싶어 했다. 나도 그곳에서 그가 생의 절반을 들여 가꾼 위대한 정원을, 그가 사랑했던 정원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 작품 앞에서는 복잡한 생각을 할 필요 없이, 공간을 오롯이 느끼고 자연의 추상을 마음에 담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파리라는 도시에 대한 기대감은 오랑주리 미술관으로부터 생겼다고 해도 좋았다. 하지만 진짜로 파리에 왔을 때 그토록 가고 싶었던 오랑주리 미술관에 가기까지는 많은 고민이 필요했다. 그곳에 가기 전에 지베르니에 있는 모네의 정원을 먼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가 모티브로 삼은 공간을 먼저 본다면, 그가 어떤 시선으로 그림을 그렸는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일정상 지베르니를 가려면 며칠을 더 기다려야 했고, 나는 그때까지 오랑주리를 가지 않고는 못 버틸 지경이었다. 눈앞에 달콤한 사탕을 두고 참는 것은 참으로 괴로운 일이었다. 수많은 고민 끝에 나는 결국 오랑주리의 유혹을 떨쳐내지 못했다. 조금만 미리 보고 오자는 마음으로 오랑주리로 향했다.
오랑주리 미술관을 가는 길을 꽤 돌아서 가야 했다. 그 근방이 한창 공사 중이었기 때문이다. 구글 맵이 안내하는 길은 공사판으로 막혀 있었다. 나는 막힌 뛸르히 가든의 왼쪽과 오른쪽 중에 어느 쪽으로 돌아가야 할지 신중하게 고민했다. 잘못된 선택을 한다면 예약한 입장 시간까지 도착하지 못할 것이었다. 고민 끝에 공원의 왼쪽으로 돌아서 미술관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잘못된 선택이었다. 20분 넘게 열심히 걸어간 길의 끝은 막다른 길이었다. 내 앞에 걸어가던 다른 사람은 먼저 막다른 길에 도착한 후에 뒤를 돌아 걸어오기 시작했다. 미술관에 도착하기 전부터 기운이 빠져버렸다. 나도 그 사람을 따라 뒤를 돌아 걸어갔다. 어렵게 돌고 돌아, 길을 헤매고 헤매어서 미술관 입구에 도착하는 데에는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지친 몸으로 미술관 입구에 들어섰다. 예약한 시간보다 30분이나 늦었지만, 다행히도 아직 나의 예약은 유효했다. 긴 줄을 기다리지 않고 빠른 패스로 입장을 했을 때, 이제까지 했던 고생이 싹 사라지는 듯했다. 나는 미술관에 입장하자마자 모네의 그림이 걸려 있는 위층의 전시관으로 향할 뻔했다. 아래층에 있는 전시관을 먼저 보지 않는다면, 수련을 보다가 그 그림들은 그냥 지나쳐버릴게 뻔했다. 나는 아래층으로 먼저 향했다. 예상외로 그곳에는 대단한 작품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어서 그것들 하나하나에 시선을 빼앗겼다. 어느 것 하나 조연 같은 작품이 없었다. 놀라운 예술 작품들이 즐비하는 이 도시가 다시 한번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체력을 너무 많이 쓰기 전에 모네의 그림을 보러 가기로 했다. 상상만 했던 그림을 마주할 준비가 완전히 되지는 않았지만, 숨을 한 번 가다듬고 위층의 전시장으로 올라갔다. 자연광이 어느 정도 들어오는 그 전시실은 날씨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질 것 같았다. 그날은 구름이 흐릿하게 낀 날이어서 그런지 따뜻한 노란빛을 띠며 아래층과 달리 차분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사람들은 그 차분함 속에서 말없이 그림에 몰입하여 감상하고 있었다. 공간이 주는 몰입감, 아름다운 색감의 그림, 그 모든 것들이 마음에 들었다.
그 방에는 모네의 그림 네 점이 걸려 있었고, 나는 그것들을 하나하나 천천히 감상했다. 조금 피로해진 다리를 쉬게 하려고 중앙에 놓인 긴 의자에 앉아서 가장 맘에 드는 그림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림 속의 수련은 망막에 맺힌 인상을 담아낸 그림답게 흐릿하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내었다. 물 위에 비친 하늘과 풀잎이 어떤 빛깔인지 관찰할수록 모든 그림에서 다른 세상이 보였다. 물 위를 그린다는 것이 얼마나 창의적으로 세상의 아름다움을 담아내는 방식인지 알 수 있었다. 내가 다른 그림보다 물에 관한 그림들을 좋아하는 것이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두 개의 타원형 방 중에 한 곳에서 시간을 보낸 뒤 남은 하나의 방은 보지 않았다. 빠르게 발길을 돌려 미술관을 나왔다. 지베르니의 정원에 다녀온 후에 이 그림 앞에 다시 서고 싶었기 때문이다. 정원을 보기 전과 본 후에 그림을 어떻게 다르게 보일지 궁금했다. 사계절 내내 꽃들이 피어나도록 치밀하게 설계된 정원에서, 그리고 물에 비치는 세상의 시간과 그 위에 떠있는 수련에서 그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을 그림을 통해서 볼 수 있지 않을까. 아직 여행이 많이 남았으니, 아쉬움을 남겨도 괜찮았다. 이곳에 꼭 다시 오겠다는 마음으로 오랑주리 미술관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