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카노 - 김유원

다정하지 못한 순간들이 남긴 자리

by 영영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도서제공 #서평단 #위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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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원 작가님의 『와이카노』를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생활의 냄새’였다. 뜨겁게 내리쬐던 햇살, 칼국수집의 복작스러운 장면, 도마와 칼이 부딪히는 날카로운 소리, 수증기 속에서 퍼져 나오는 국물 냄새까지. 이 모든 것이 문장 사이에 묻어 있었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마치 내가 그 공간의 공기를 같이 들이마시는 듯했고, 오래 전부터 그 자리에서 국수를 먹던 손님처럼 소설 속으로 초대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따뜻한 국물의 김 사이로 드러나는 건, 정작 가족 안에서조차 다정하지 못한 현실이다. 『와이카노』의 힘은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친근하고 섬세한 묘사로 우리를 불러들이지만, 그 중심에는 ‘다정의 부재’라는 차가운 진실이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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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의 불균형

- 손님에게는 친절하지만, 가족에게는 다정하지 못한


선희는 하루 종일 손님에게 웃음을 짓고 국수를 내어주며 ‘환대의 노동’을 실천한다. 손님에게 건네는 미소와 말투에는 일정한 리듬이 있다. 하지만 딸 해리에게는 “와이카노”라는 질문만 되풀이된다. 그 질문은 대화의 시작이 아니라 끝에 가까운 말, 설명을 요구하면서도 듣지 않겠다는 단절의 말이다.


이 지점에서 이 소설은 우리 사회의 익숙한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는 종종 타인에게 더 친절하고,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는 무심하다. 낯선 이에게는 정성껏 미소를 보이면서도, 집 안에서는 무뚝뚝한 말로만 응대한다. 그것이 가족이라서, 늘 곁에 있을 거라서, 혹은 기대와 불안을 동시에 투사하기 때문에 가능한 태도일 것이다. 『와이카노』는 이 불균형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다정이 꼭 있어야 한다는 당위를 넘어, 다정하지 못한 관계가 어떤 외로움과 고립을 낳는지 독자에게 묻는다.


엄마에게 딸이란, 딸에게 엄마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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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서 특히 인상 깊은 것은 ‘엄마에게 딸이 어떤 존재로 비쳐지는가’라는 질문이다. 선희는 딸의 소설을 애들 장난으로 치부한다. 심지어 글을 쓰는 딸이 돈을 달라 하지 않을까 불안해한다. 딸의 가능성을 보려 하기보다, 딸을 ‘부담’이나 ‘미래의 위험’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반대로 해리에게 엄마는 다정의 결핍으로 기억된다. 환대의 손길이 자신에게는 닿지 않고, 오직 타인에게만 향하는 것을 목격하며 서운함을 느낀다. 그녀는 글쓰기를 통해 자신을 증명하고자 하지만, 가족에게조차 이해받지 못한 채 고립된다. 이처럼 엄마에게 딸은 불안의 거울이고, 딸에게 엄마는 무심의 상징이다. 두 존재는 가까우면서도 가장 멀리 서 있다.


이는 단순히 개인적인 모녀 갈등의 문제가 아니다. 여성의 노동과 여성의 서사가 교차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엄마는 칼국수집이라는 생계 노동 속에서 다정을 흩날려야 했고, 딸은 무심한 현실에서 자기 노동을 통해 생존해야 했다. 그러나 그 두 세계는 접점을 이루지 못한다. 결국 『와이카노』는 여성들이 서로를 돌보지 못하게 만드는 구조적 고립을 보여준다.


다정의 부재를 응시하게 하는 방식


김유원 작가님의 문장은 부드럽고 섬세하다. 칼국수집의 장면은 생생하고, 인물들의 대사는 현실적이다. 그러나 그 표현의 섬세함은 다정이 아니라 부재를 드러내는 데 사용된다. 복잡하고 따스한 시장에 대한 묘사 뒤에 드러나는 건, 차가운 관계의 진실이다. 작가는 친근한 묘사를 통해 독자를 끌어들이고, 그 안에서 차갑게 선명한 고립을 보여준다.


이 점에서 『와이카노』는 매우 문학적이다. 언어와 장면의 섬세함이 주는 현실감이 곧 아이러니를 강화한다. 마치 친절한 안내를 받아 들어갔는데, 그곳에서 마주한 건 차갑게 식은 관계뿐인 상황. 이 긴장감이 소설의 울림을 오래 남긴다.


다정하지 못했던 순간들


『와이카노』는 결국 우리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가족에게 얼마나 다정한가? 타인에게 보이는 웃음을 가족에게도 건네고 있는가? 아니면 선희처럼, 가장 가까운 존재에게조차 “와이카노”라는 단절의 언어만을 반복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 작품을 덮고 나면, 독자는 자신의 일상 속으로 돌아가 문득 멈추게 된다. 다정하지 못했던 순간들이 불쑥 떠오른다. 김유원 작가님의 문장은 소설을 읽는 시간을 넘어,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다.


『와이카노』는 단순한 모녀 이야기나 국숫집 이야기로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다정의 부재가 만들어낸 세계에 대한 기록이자, 동시에 우리 모두에게 건네는 질문이다. “와이카노”라는 말은 단절의 언어이지만, 그 질문을 붙잡고 다시 묻는다면, 어쩌면 우리는 조금 더 다정한 자리로 나아갈 수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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