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스펙터클, 민주주의 - 김정환>

민주주의를 구경하던 나에게, 살아내는 감각을 일깨운 책

by 영영

#서평단 #도서일기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하지만 감상은 철저히, 정말로, 주관적입니다.

*브런치 노출 의무 없음


Gw8bcyLakAABOU0.jpg


민주주의는 언제나 광장에만 있었을까.

촛불과 함성, 희생과 눈물. 우리는 그 익숙한 장면들을 반복해서 보아왔고, 언젠가부터 그것이 곧 ‘민주주의’ 자체라고 믿게 되었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익숙한 감각에 질문을 던진다. 혹시 우리가 마주한 민주주의는, 누군가 연출한 드라마 같은 장면이었던 건 아닐까? 그리고 나는 그 장면 앞에서 언제나 관객으로만 서 있었던 건 아닐까?


책은 ‘민(民)’이라는 단어를 불러내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민주주의의 주체라고 부르지만, 정작 그 ‘민’이 스스로를 말할 기회는 얼마나 있었을까. 죽음, 피, 희생, 눈물로 장식된 정치의 무대 위에서, 우리는 종종 감정적으로 소비되는 하나의 이미지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민주주의는 누구의 언어로 쓰이고, 누구의 몸으로 증명되는 것일까.


나는 이 대목에서 오래 머물렀다. 2024년 계엄 상황이 선포되었을 때, 나는 처음엔 그 어디도 가지 못하고 방 안에만 갇혀 있었다. 불안에 떨며 시간을 흘려보내던 내 모습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그 후부터는 혼자라도, 꼭 나가야겠다는 마음으로 거리를 향했다. 너무 추운 날이었고, 내 몸은 점점 망가졌다. 결국 면역력이 무너져 기도가 부어오르는 알레르기 발작까지 겪었다. 그런데도 발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특히 광주에 갔던 날은 잊을 수가 없다. 광주는 집회를 ‘당연한 일상처럼’ 준비하고 있었고, 낯선 이들에게조차 핫팩과 음식을 나누어주며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추위 속에서 건네받은 수많은 핫팩은 그저 물건이 아니라, 민주주의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차갑지만 따뜻했던 그 감각은 지금도 손바닥에 남아 있다.


책에서 말하는 “죽음의 스펙터클” 장을 읽을 때도, 나는 그때의 몸을 떠올렸다. 민주주의가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 너무도 단단해서 쉽게 밀쳐낼 수 없는 문장. 박종철, 이한열, 그리고 이름 없이 사라진 사람들의 죽음. 그들의 몸이 무대 위에 드러날 때, 우리는 눈을 감지 못하고 울었지만, 동시에 어디까지나 ‘관객’으로서 그 장면을 소비했던 건 아닐까. 이 질문은 여전히 나를 흔든다.


탄핵이 선고된 이후 나는 광주를 다시 찾았다. 전일빌딩을 비롯해 광주의 곳곳을 걸었다. 눈물이 흘러내렸다. 민주주의라는 단어가 갑자기 너무 무겁고, 동시에 너무 가까이 와 있었다. 책은 말한다. 민주주의는 제도가 아니라 감각이라고. 그 말이 무엇인지, 나는 그때서야 조금 알 수 있었다.


『몸, 스펙터클, 민주주의』는 단순히 정치사를 설명하거나, 민주주의를 이념으로 가르치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반복해온 장면들을 해체하고, 다시 민주주의를 ‘살아내는 감각’으로 돌려준다. 관객의 자리에 서 있던 나를 무대 위로 불러내어, 살아가는 주체의 자리로 앉히는 책이다.


책장을 덮고 난 뒤 민주주의는 더 이상 멀리 있는 단어가 아니었다. 그것은 내 몸에 새겨진 감각이었고, 내가 만난 사람들의 온기였으며, 여전히 풀리지 않은 질문이었다. 나는 그 질문 앞에 오래 머물렀다.


“나는 어떤 민주주의를 살아내고 있는가?”


Gw8bcyRawAA-pBx.jpg


keyword
금요일 연재
이전 09화길티클럽 : 호랑이 만지기 - 성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