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죄책감을 안고, 사랑을 한다.
처음 이 소설을 읽었을 땐, 그냥 불쾌했다.
왜인지 모르게 기분이 꺼림칙했고, 그래서 그대로 덮어버렸다.
그게 무슨 마음인지, 이제는 안다.
나는 그 감정이 뭔지 알아버릴 것 같았고,
그래서 그 감정 앞에서 도망쳤다. 마치 이야기 속 화자처럼.
그리고 시간이 흘러, 다시 그 단편을 펼쳤다.
그제야 나는 비로소 이야기의 정면을 응시하게 되었다.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는 단순히 팬덤이나 길티 플레저를 말하는 소설이 아니다.
이 이야기는 훨씬 더 깊고 조용하게, 내 안의 방 하나를 열어젖힌다.
‘내가 무엇을 사랑하는가. 그리고 그 사랑이 정말 옳은가.’
작가는 아주 조심스럽지만 날카롭게 묻는다.
그 물음 앞에서 나는 다시 작아진다.
작품을 읽는 내내, 나는 자꾸 내 안의 어떤 방을 떠올렸다.
그곳엔 오래전부터 숨겨온 감정이 있었다.
누군가를 사랑했던 마음.
그로 인해 생겨난 죄책감.
그리고 무엇보다, 그 죄책감을 모른 척하고 지나온 나 자신.
나는 한동안 팬심과 윤리 사이에서 어정쩡한 선을 걸었다.
내가 좋아하던 사람들. 그들이 떠난 이유.
그들을 둘러싼 수많은 말들.
슬펐고, 서운했고,
그럼에도 나는 조용히, 그들이 남긴 산물을 사랑했다.
어떤 마음은 지우고 싶다고 해서 지워지는 게 아니라는 걸,
어떤 감정은 애써 외면해도 언젠가는 반드시 되돌아온다는 걸,
나는 안다.
작품 속 ‘호랑이 체험’은 그 모든 감정의 은유처럼 느껴졌다.
사랑이 쾌락으로 변할 때의 어색함, 불편함,
그리고 부정할 수 없는 끌림.
그 장면을 읽으며 나는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
마치 나 자신의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서.
나는 내 마음을 죄로 여기며 살아온 적이 있다.
그건 이기심이었고, 동시에 너무 인간적인 감정이었다.
나는 잘못된 줄 알면서도 그 사람을 좋아했고,
죄책감을 품고도 그 노래를 들었고,
혼자 있는 밤이면 다시 그 얼굴을 떠올렸다.
좋아한다는 마음이 누군가를 다치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낯설었다.
이 책은 나를 정확히 겨냥했다.
그냥 불편한 이야기였다면, 쉽게 덮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작품은, 묻는다.
‘왜 나는 지금도 이것을 좋아하고 있는가.’
그 질문은 나를 도망치지 못하게 만든다.
나는 회피가 아니라, 직면을 택해야 했다.
그게 지금 내가 이 이야기를 다시 읽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다.
나는 여전히 답을 찾지 못했다.
좋아하는 것을 계속 좋아하면서도 죄책감을 느끼는 지금,
나는 어디쯤에 서 있는 걸까.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은, 단지 ‘길티 플레저’라는 말로 정리될 수 있을까.
그렇다고 하기엔 이 감정은 너무 오래 내 안에 있었고, 너무나 진짜였다.
내 마음은 종잇장처럼 얇지만,
물에 젖는다고 해서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저 탁해질 뿐이다.
그 탁한 감정을 들여다보는 일.
그게 바로 이 소설이 내게 건넨 과제였다.
나는 오늘도, 죄책감을 안고, 사랑을 한다.
그 마음이 틀렸는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다만 지금의 나는, 사랑의 윤리와 감정의 진심 사이에서 계속 서성이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 그 경계선 어딘가에서
조금은 더 솔직하고 단단한 나 자신을 만나게 되기를 바란다.
성해나 작가님의 작품은 여전히 불쾌하다.
그리고 동시에, 나를 꿰뚫는다.
그 불쾌함은 내 안의 무엇을 들춰내는 감각에 가깝다.
숨기고 싶었던 마음, 외면해왔던 죄책감,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은 그 침묵들.
이 책은 끝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열린 채로 남는다.
무언가를 결론 내리지 않아서 불편하지만,
바로 그 여백 덕분에 나는 이 이야기를 붙잡고, 계속 생각하게 된다.
무엇을 사랑하고, 어떻게 소비하며,
그 감정에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가.
작가님은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나는 그 질문을 품은 채,
다시 내 마음을 들여다본다.
그래서 나는 이 이야기를 읽고 나서도, 오래 생각했다.
그리고 오늘도 여전히,
죄책감을 안고, 사랑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