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부코스키 타자기 - 박지영

쓰임을 넘어 존재로: 『찰스 부코스키 타자기』가 남긴 질문

by 영영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도서제공 #서평단 #위뷰 #위픽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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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영 작가님의 『찰스 부코스키 타자기』는 책장을 덮고도 한참 동안 여운이 남았다. 여러 관점이 겹겹이 스며 있어 다시 꺼내 읽고 싶은 문장들이 많았다.


이 소설의 세계에서 사람들은 만 40세와 만 66세, 단 두 번의 순간에 자신이 되고 싶은 존재로 ‘생애 전환’을 선택할 수 있다. 그 선택지는 인간에 한정되지 않는다. 식물, 동물, 심지어 무생물까지 확장된다.

이 낯선 설정이 던지는 질문은 단순히 기발함의 차원을 넘는다. 인간의 삶을 ‘쓰임’과 ‘존재’라는 두 축으로 다시 배열해 보게 한다.


만 66세, 전환의 마지막 시기.


주인공 승혜는 결국 ‘타자기’로 생애 전환을 하게 된다. 누군가의 문장을 받아 적고, 때로는 문장을 흘려보내는 존재. 이 선택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인간의 생을 ‘역할 중심’이 아니라 ‘존재 중심’으로 읽게 된다.




쓰임으로만 읽히는 세계


소설 속 ‘생애 전환’ 제도는 인간의 가치를 사회적 효용으로 계산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40세의 전환은 아직 쓸모가 있으므로 미뤄지고,
66세의 전환을 거부하면 사회의 짐이 되는 존재라는 낙인이 찍힌다.


이 대목을 읽으며 나는 이 세계가 결코 낯설지 않다는 사실을 느꼈다.


현실에서도 어떤 나이는 생산을 요구받고, 어떤 나이는 물러남을 요구받는다.
개인의 욕망보다 사회의 규칙이 우선되는 순간들.

어쩌면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쓰임’이라는 기준 속에 살아온 것인지 모른다.


소설은 이 구조적 문제를 직접적으로 비판하지 않는다.
대신 조용한 장면들, 인물들의 일상 속에서 기묘한 기시감을 만들어낸다.

그 덕분에 독자인 우리는 자연스럽게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정말 이렇게 사는 것이 옳은 걸까?”




돌이 되고 싶었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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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혜가 처음 꿈꿨던 존재는 사실 타자기가 아니었다.
그녀가 바랐던 것은 그저 ‘돌’이었다.
쓰임을 요구받지 않는 존재. 존재만으로 충분한 존재.


그 소망의 뿌리에는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이 있다.
문밖으로 나서지 못하던 날, 인애가 창문으로 건네던 매끈한 작은 돌.
그 돌은 설명이 아니라 ‘관계의 언어’로 승혜에게 닿았다.


이 장면을 들여다보면 승혜의 정체성은 기능이 아니라 연결 속에서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은 결국 효용이 아닌 ‘관계로 존재하는 삶’을 향한 욕망이었다.




타자기로서의 삶과 '회귀'의 순간


타자기가 된 승혜는 끊임없이 타인을 위해 기록을 남긴다.
타자기는 철저히 기능으로 환원된 존재다.
이때의 승혜는 개인이 사회적 역할로만 읽힐 때 어떤 소모가 일어나는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결말에서 승혜가 바다를 향해 걸어 나가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바다가 그녀를 삼키는 순간은 ‘폐기’가 아니라 ‘회귀’처럼 느껴진다.
쓰임의 세계에서 벗어나, 돌처럼 순수한 존재로 돌아가는 장면.


그리고 마지막에 떠올리는 것은 역할도, 효용도 아닌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싶다는 가장 인간적인 욕망이다.


이 순간, 소설은 닫힌 생을 다시 ‘관계’라는 형태로 열어둔다.




말은 어디로 사라지는가


작가의 말에서, 박지영 작가님은 치매로 말을 잃어가던 아버지를 떠올리며
“사라진 말들은 어디로 갔을까?”라는 질문에서 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고 적는다.


남는 말과 사라지는 말.

기록되지 않은 존재.
돌처럼 남아 있는 감정의 잔재.


작품 곳곳의 상징들이 이 경험에서 자연스럽게 뻗어나온 것처럼 느껴졌다.




쓰임이 아니라, 흔적으로 남고 싶다.


이 책은 마지막 페이지에서 묵직한 질문 하나를 남긴다.

“당신은 쓰임으로 남고 싶은가, 기억으로 남고 싶은가.”


『찰스 부코스키 타자기』는 우리가 어떤 역할로 존재했는지가 아니라

어떤 흔적으로 남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깊이 일깨워 준다.


책을 읽고 난 뒤 나에게 따라붙은 질문은 이것이었다.


“나는 지금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을까?”
“나는 쓰임에 갇혀 살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이 소설은 단순한 세계관 소설을 넘어

‘존재의 의미’를 다시 묻는 철학적 서사로 남았다.
오랫동안 마음속에 울릴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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