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결국 누군가의 안부로 살아간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도서제공 #서평단 #위뷰 #위픽시리즈
김효인 작가의 『그렇게 안녕』은 ‘죽은 연인에게서 전화가 걸려온다’는 비현실적인 사건으로 시작하지만,
이야기가 다루는 감정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사람을 잃은 자가 겪는 시간의 어긋남, 말하지 못한 채 남은 문장들,
그 공백을 견디며 다시 살아가야 하는 일.
이 책이 유독 좋았던 이유는, 이별을 비극으로만 그리지 않고
‘살아남은 자의 숙제’로 다룬다는 데 있다.
리호는 죽은 소우의 부재를 애도하는 대신,
그 죽음이 남긴 질문들을 붙잡고 다시 걸어간다.
“그가 정말 스스로 죽었을까?”라는 의심은 곧
“내가 믿어온 관계는 진짜였을까?”라는 자기반성으로 이어진다.
이별은 그래서 항상 현재형이다.
사람이 떠나도 질문은 남고,
그 질문을 붙잡고 버티는 동안 우리는 여전히 ‘그때의 나’와 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안녕』의 평행세계는 단순한 판타지가 아니다.
그건 이별의 불완전성을 시각화한 장치다.
한 세계에서 관계는 끝났지만, 다른 세계에서는 아직 말이 남아 있다.
그건 우리가 실제로도 경험하는 감정의 잔향과 닮아 있다.
우리는 어떤 관계를 완전히 끝내지 못한다.
시간이 흘러도 마음의 어딘가에서
그 사람과의 대화가 계속되고,
하지 못했던 말들이 끊임없이 떠오른다.
작가는 이 ‘내면의 평행세계’를 문자 그대로 구현한다.
즉, 평행세계의 소우는 리호의 내면 속 미완의 대화가 형상화된 존재라고 느껴졌다.
그 세계에서 리호는 죽음의 진실을 다시 탐색하지만,
결국 그 여정은 소우의 부활이 아니라 리호 자신의 회복으로 귀결된다.
이별을 받아들이는 가장 인간적인 방식 —
진실을 다시 보고, 그 안에서 살아갈 힘을 얻는 일.
그게 『그렇게 안녕』이 말하는 ‘안녕’의 의미라고 생각했다.
이 작품에서 내가 가장 깊이 남은 장면은 휘영청의 마스터다.
술과 안주를 단돈 만오천 원에 내주는 그 인물은
리호에게 세상에 남은 단 한 사람의 온기처럼 존재한다.
그의 배려는 단순한 친절이 아니다.
리호가 물에 잠겼다가 걸어나오는 모습을 본 이후,
그는 말없이 그 자리를 지킨다.
살아 있는 자를 살리고 싶다는,
아무 설명도 요구하지 않는 인간의 연민이 거기 있다.
그래서 휘영청은 단순한 ‘바’가 아니라,
이 작품 전체를 통틀어 “생의 환기구”처럼 작동한다.
죽음의 이야기를 끌고 가던 리호가
다시 생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건
그 공간이 ‘죽음 이후의 말’을 잠시 쉬게 해줬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가 버티며 살아간다는 건
누군가의 휘영청을 찾아내는 일인지도 모른다.
잠시 머물러도 괜찮고, 울어도 괜찮은 공간.
그게 누군가의 말일 수도, 장소일 수도 있다.
리호는 결국 소우의 죽음이 단순한 자살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진실이 드러난 후에도,
그녀의 삶이 단번에 치유되는 건 아니다.
그저 ‘진실을 알게된 사람’이 되었을 뿐이다.
평행세계의 소우와의 전화가 끊긴 뒤,
리호는 다시 현실의 시간으로 돌아온다.
그 순간, 작가는 아주 조용하게 세계의 균형을 회복시킨다.
죽은 자는 여전히 죽어 있지만,
살아 있는 자가 그 사실을 감당하게 되는 것.
그게 진짜 ‘안녕’이다.
마지막에 다른 평행세계에서
또 다른 소우가 리호를 마주하는 장면은
재회가 아니라 지속의 은유다.
이별은 단절이 아니라,
형태를 바꿔 계속 이어지는 관계의 또 다른 형태라는 것.
이 책은 그 사실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그렇게 안녕』은 “죽은 연인의 미스터리”로 시작해,
결국 “살아 있는 사람의 윤리”로 끝난다.
우리는 떠난 사람에게서만 상처받는 게 아니라,
남은 채로 살아가는 자신에게도 상처를 입는다.
그래서 살아간다는 건
끊임없이 “안녕”을 배우는 일이다 —
완전히 지울수는 없지만, 살아가고 싶은 마음을 만들어 견뎌내는 않는 법을.
작가는 그 말을 직접 하지 않는다.
대신 리호의 걸음, 마스터의 술잔,
그리고 끊어진 전화의 여운으로 대신 말한다.
『그렇게 안녕』은 독자에게 말한다.
이별의 반대말은 재회가 아니라 ‘지속’이라고.
누군가를 완전히 잊는 대신,
그 사람이 남긴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일.
그게 우리에게 허락된 가장 인간적인 방식의 ‘안녕’이다.
책을 덮으며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살아 있는 사람은 계속 안녕을 연습한다.”
그리고 그 말이
이 소설의 모든 페이지를 관통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