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징의 쾌감이 아닌 후유의 윤리를 남기는 스릴러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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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읽기'보다 '견디기'에 가깝다.
흔히 말하는 벽돌책에 속하는 492페이지라는 숫자는 의미가 없다. 체감 분량은 사건의 무게에 따라 늘었다 줄었다 한다. 나는 몇 번이고 페이지를 덮었다가 다시 펼쳤다. 결말을 알고 싶어서가 아니라 어디까지가 종결이고 어디까지가 후유증인가를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간단히 말해 긴장감에 숨을 고르게 만드는 책이 아니라, 긴장감 때문에 숨을 세게 들이켜야 하는 책이었다.
많은 서사는 가정폭력의 '악'을 응징하는 장면에서 독자의 쾌감을 회수한다. 이 책은 그 절차를 일부러 망가뜨린다. 폭력의 구조(경제적 종속, 신고의 문턱, 피해자의 무너짐과 고립)를 촘촘히 쌓아 올린 뒤 응징하지만, 피해자의 시선에서 이루어지는 응징은 그리 상쾌하지만은 않다.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책이었다.
초반 가정폭력의 순간, 응징의 순간의 경우 피해를 받은 당사자가 아닌 그를 조력하는 제삼자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그 이후의 시간들은 피해자인 가나코의 시선으로 진행되며 응징 후에도 끝나지 않은 불안을 보여주며 응징 이후의 시간들을 의도적으로 어둡게 처리한다.
현실의 여느 사건에서처럼 사건은 '끝났다'라고 말하는 순간부터 책임의 배치가 바뀌기 때문에 더욱더 찝찝하다. 누가 무엇을 떠안고 얼마나 오래 불안에 떨어야 하는가가 본론이 된다. 독자는 이 순간 관람석에서 박수를 칠 수 없다. 카타르시스의 의자가 사라지고 후유증의 바닥으로 끌려 내려앉는다.
그 무엇보다 이 책이 마냥 이상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닮아있어 더욱더 끌렸다. 정말 애석하게도 피해자들에게 남는 것은 처벌의 시원함이 아니라 사건을 수습하며 버텨야 하는 얼굴들이다. 나는 그 얼굴들을 하염없이 들여다보았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의문이 드는 부분은 나오미는 왜 그 위험을 함께 짊어지는가?이다. 분명 친구를 구하려는 마음은 진짜일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린 사장이 친구라면 도와주는 것.이라는 말을 했을지언정 그 마음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추가 동력이 있다. 계속해서 이 책을 읽어가며 나는 그 동력의 발생지를 아래와 같이 추측했다.
나오미는 자신이 끝내 해소하지 못한 '아버지'의 그림자를, 가나코의 삶 위에서 대리 수행했을지도 모른다. 가나코는 나오미의 상황을 보며 자신의 과거를 호출한다. 어릴 적 자신의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행했던 가정 폭력의 순간말이다.
이는 대리 수행을 추측하게 하는 지점으로 자리 잡았다. 물론 대리 수행의 징후는 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글에서 다양하게 비친다. "차라리 둘이서 죽여버릴까? 네 남편."이라는 말에서 비치는 자기 증명의 욕구와 특정 상황에서 아버지의 잔상을 겹쳐 읽는 방식에서 이는 드러난다.
나오미는 그야말로 '위험한 구원자'로 독자에게 다가온다. 연민과 정의감에 권력감이 섞이는 순간, 손을 내미는 행위는 구원인 동시에 개입이 된다. 선의만으로는 면책되지 않는 그 시점 말이다.
나는 이 책을 보며 나오미가 영웅도 가해자도 아닌 회색의 좌표에 놓인 사람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니 독자는 그 어느 쪽에도 안전하게 서지 못한다.
작품은 결혼을 '완성'으로 호명하는 사회적 언어를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그 언어는 평온을 약속하지만, 현실에서 그 완성은 완성이라고 칭하기도 어려운 절망으로 나타난다.
이 책에서 결혼은 살아갈 의지를 꺾는 수단이지만 등장인물들은 반대로 완성이라고 내보인다. 이를 미혼인, 가정 폭력을 지켜보던 나오미의 시선으로 보여줘 더욱더 모순적으로 보이게 된다.
제도가 보장하는 완성이 아니라, 관계가 보장하는 존엄. 말할 수 있는 권리, 떠날 수 있는 조건,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선택지. 이 셋이 없다면 '완성'이라는 단어는 공허하다.
읽는 내내 장면이 눈앞에 서있었다. 머릿속에서 자꾸 그려내던 가나코네의 안방, 식탁, 현관의 풍경들. 그래서 영상으로 만들어지면 압박이 더욱 커지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예상하지도 못했던 시리즈화 소식을 들었다.
반가움은 커져 기대의 설렘을 선물 받은 기분이었다. 읽는 내내 결말을 추리하던 긴장감이 어떻게 보일지, 무엇을 보여주고 보여주지 않을지, 복수는 시청자에게 어떤 감정을 선사할지 궁금해졌다. <당신이 죽였다>를 내 눈으로 보는 순간까지 이 기대감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 소설은 그 간극을 외면하지 않는다. 그래서 불편하고, 그래서 설득력 있다. 덮고 나면 사건보다 사람이 남는다. 남겨진 사람들이 감당해야 할 시간, 그 시간의 질감, 그 침묵, 나는 그걸 오래 기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