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 오필리, <성모마리아> 1996
<아름다운 그녀에게>
나는 성스러운 그녀에게
길을 묻지 않는다.
그녀가 부르는 소리에
반응하지 않는다.
그녀를 향해 눈을 감고
바라보지 않는다.
그녀와 나는 같지 않다.
나는 거만한 인간 포로.
교활한 위선자.
눈물의 가면을 쓴 속물
날카로운 빛이
나를 똑바로
그리고 깊게 응시한다.
나는 한 사람이다. 그리고 여성이다. 나의 이력은 별 볼일 없다. 당연히 돈을 불러 모을만한 능력이 없다.
나는 비교적 온순하지만 불안함을 자주 느끼고 후회는 습관적으로 한다.
대체로 비관적인 편이고 편견이 깊다. 그래서인지 만나는 사람들의 이미지와 외모에 대해 평가하는 것을 즐기고 비교하는 것을 좋아한다. 객관성은 없다. 내 마음대로 느껴지는 대로 평가한다. 내 맛대로 차려 놓은 평가가 아주 적확하다 확신한다. 그리고 의심 없이 믿어 버린다.
이를테면 사람들의 옷차림과 생김새에 위험한 존재감을 부여해 놓는다. 그들의 옷과 얼굴이 삶 전체인 것처럼 확신한다. 아주 편하고 간단하게 말이다.
그리고 배고픔과 고통의 삶은 살아가고 있는 당사자의 무능 때문이라고 말한다. 나도 그들처럼 살아가는 현재의 삶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 치고 있으면서 말이다. 어쩌면 나는 내 발등을 찍고 있는지도 모른다.
결국 나는 내 모습과 상태를 보고 싶어 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 자신을 바라보는 것에는 좌절과 실패에 대한 아픔만이 재생될 뿐이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나는 내 삶이 밉고 싫었으니까. 나보다는 다른 사람들에게 공을 들이는 것이 나에게 더 이로울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관심받지 못하는 공백 기간이 생길까 봐 겁이 났다. 못생겨지고 누추해질 걱정에 두렵고 불안하기만 했다. 나는 그것을 어디에서도 해결 받아 본 기억이 없고 해소하는 방법도 알지 못했다. 그저 같이 지내는 감정일 뿐이라고 덮어 놓았던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점점 열등적 감각에 지쳐갔고 불안정한 삶에 고단했다. 아무래도 나는 담백한 이야기가 오고 가는 집이 필요한 것 같았다. 내 모습이 못생겨도 역겨워도 냄새가 나도 괜찮은 그런 집 말이다.
그런데 내 집은 남들에게 빼앗긴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들은 주인 없는 내 집을 약탈했고 점령해 버렸다. 집주인이 사라졌으니 당연한 결과이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포기하고만 싶다.
그렇지만 나는 내 집의 기능을 살려내고 싶고 기필코 되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폭력과 침략을 당한 것이고 그것은 부당한 일이기 때문이다. 부당한 일을 계속적으로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나는 내 집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말해야 한다. 당장 꺼지라고 말이다. 내 집을 훼손하지 말라고 경고해야 한다. 사람들을 몰아내고 집을 깔끔하고 깨끗하게 정돈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 그것은 나에게 집중하는 능력을 키우는 일종의 루틴 같은 시간일 것이다. 그로 인해 나는 주변 소음으로부터 보호받게 된다. 그리고 모든 편견을 출발하게 만드는 잡음이 사라지게 된다. 쓸모없는 불안함이 소멸하고 왜곡된 시선에서 탈출할 수 있게 된다.
드디어 나는 고요한 내 집에서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내 모습을 이해하고 인식한다. 그리고 받아들인다.
나는 내 모습이 성모 마리아처럼 느껴진다. 자신의 삶을 기꺼이 받아들였던 그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