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시스코 고야, <벌거벗은 마하> 1800~1803년
마침내 때가 왔고
그날이 도착했다.
나의 삶에 독립과 해방을 선언한다.
핍박과 억압으로 얼룩진 삶의 거울을 닦아내고
온전한 내 모습을 비춰
당연하게 마주한다.
내 삶은 대체로 실패의 연속이었다. 그러다보니 삶의 형식과 내용은 보잘 것 없었다. 어쩌다 행복 지수가 상승할만한 보상이 생기게 되면 나는 상위 계층에 살고 있는 불안함을 끌어들여 엷은 보상의 기쁨을 덮어 버린다. 마음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불편하기 때문이다. 내가 먹어서는 안 될 음식을 먹은 것처럼 나는 조마조마한 것이다. 내 앞에 차려진 화려한 음식들이 오히려 내 낮은 삶이 공개되는 기회가 될 것만 같아서 말이다.
나는 내가 드러나는 것이 무섭고 두렵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나의 감정을 알아 채고 나의 근심을 훤히 들여다 보게 될까봐 항상 마음이 심란하다. 아닌 척 가면을 쓰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나의 결핍과 갈증을 다른 누군가와 속삭이고 나의 없음을 폭로하고 소문낼까봐 눈치를 살핀다. 나의 죄를 낱낱이 고발할 것 같음에 나는 두근거리고 떨린다.
나를 보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나는 조롱거리와 놀림거리가 될 것을 상상할 때면 나의 생은 쓸모없어 버려진 느낌이 밀려온다.
그들이 나를 마음껏 범하고 음해하고 짓밟아 버릴까봐 겁이 난다. 그들에게 내가 죽어버린 존재가 될까봐 두렵다.
이쯤에서 나는 사라지지 않는 나의 불안함을 소환하게 된다. 그리고 나 자신을 끊임없이 스토킹하고 있는 범인을 잡아들이고 싶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왜 그들에게 내 존재감을 의탁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왜 그들에게 중요하고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어 안달하고 있을까? 내 과거 삶이 대체로 그랬다. 내가 주인공이었던 적이 생각나지 않는다.
나는 나를 위해 살아오지 않았다. 나의 일상은 그들의 기쁨과 사랑과 목표를 위해 달렸고 춤을 추었고 수확을 해왔다. 그들에게 사랑을 받기 위해 나는 죄책감을 키워나갔다. 아주 작은 실수에도 나는 힘들어했다.
실수가 뻗어나가는 과정을 상상하며 나는 죄책감을 최대치로 늘려놓았다. 나는 그렇게 취급받아 마땅하다 여겼다.
나는 매일 만나는 나의 모습이 싫었다.
외모도 성격도 직업도 인간 관계도 목소리도 말투도 지능도 감정도 나의 선택도 나를 학대하기 위한 조건같아 혐오스럽고 억울했고 분노가 치밀었다.
나의 삶에 전환점이 절실했다. 나의 서사로 살아가고 싶었다. 나는 내가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데 공을 들여 보기로 했다. 내 벌거벗은 모습을 그리고 있는 화가가 내가 돼 보는 것이다. 나를 바라보고 느껴보고 싶어서 용기를 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나는 내 삶에 드리워진 주변 시선들을 치워주었다.
그리고 나의 불운과 불행이 불러들인 죄책감의 옷을 벗겨냈다. 그 덕에 공포심에 갇혀있던 나약한 고민거리는 단숨에 극복할 수 있었다. 내 모습이 드러날수록 나는 사소한 삶에 직접 참여하는 것을 회피하지 않게 됐다.
그동안 우유부단했던 삶의 패턴들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결국 현재 내가 선택하고 결정한 것들이 내 삶을 확장시켜 나가는 것이다.
과거 나는 내가 틀린 답을 내놓을까봐 늘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혼이 날까봐 겁이 났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회피했고 잘못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옳지 않았고 비겁했다.
미래를 위해 내 삶을 나아가게 해야 한다. 점점 더 나은 삶의 방향으로 말이다.
다시는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내 깃발을 높이 올려 꽂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