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예쁜 애들을 못생기고 튼튼하게 만들어 방(화분)을 옮겨주는 나름의 봄맞이 행사도 매년 진행 중이다.
하지만 간혹 우리집에 적응하지 못하고 작은 아이를 더 쪼그라들게 만들다가 내 손으로 장사 지내주는 경우도 발생하기도 하는, 아직까지 어설픈 2년 차 식집사다.
가끔 사무실에서 화분을 키우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그중 유난히 잎 색깔이 예쁜 아이를 눈여겨보고 있었다.
저 식물의 이름은 뭘까? 사무실에서 잘 자라니 반음지 식물일까?
같은 사무실을 쓸 뿐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이 아이의 주인에게 쪽지라도 남겨볼까 뚫어져라 그 책상을 노려보고 있을 때,
이런 내 모습을 발견한 동료가 은혜로운 한 마디를 건네주었다.
"저거 아글라오네마네"
몇 주 동안 혼자 고민하며 안절부절했던 문제를 단번에 해결해 준 동료에게 커피를 한 잔 바치고는, 바쁘게 손가락을 움직여 예쁘게 생긴 아이를 구매하였다.
문명의 기술인 '사진으로 꽃 검색'이라는 기능도 알고는 있지만, 남의 책상을 휴대폰으로 찍고 있는 모습은 누가 봐도 수상해 보이기에 차마 시도하지도 못했는데.. 이제 아글라오네마네 엔젤이 초록색만 있던 우리집에 분홍색을 끼얹어 줄 것을 기대하며 괜히 두근거렸다.
처음 한 달은 잎을 하나씩 솟아내며 꽃까지 보여주길래 이름도 '희미'로 붙여서 잘한다 잘한다를 외치며 보살피고 있었다. 솔직히 편애다 싶을 정도로 다른 화분엔 물도 대충 주면서도 희미는 행여 자리가 안 좋을까, 햇빛이 안 들까 이리저리 자리도 바꿔주며 우리집 가장 명당자리를 차지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겨울이 지나면 큰 화분으로 옮겨줘야지, 그러면 더 튼튼하고 예쁘게 자라겠지, 란 생각에 옮길 화분까지 분비를 해 두었는데 이상하게도 잎이 한 장씩 말라가며 검게 쪼그라드는 것이 아닌가.
처음엔 겨울이라 추워서 그런걸까 하며 집 온도도 올려보고 물이 부족한 걸까 해서 계속 겉 흙을 촉촉하게 유지해 줬는데도 변화가 없었다. 잎이 세 장째 떨어졌을 때 더는 안 되겠다 싶어 흙을 파보기로 했다. 날씨가 추워 분갈이 시기는 아니지만, 흙이 좋지 않다면 새 흙으로 바꿔주는 게 더 좋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지, 겉흙만 마르고 있었지 안쪽이 배수가 전혀 되고 있지 않아 흙이 물을 머금다 못해 빠져 있는 수준이었다.
한동안 잘 크고 있었는데 갑자기 배수가 안 되는 경우가 있는 건지.. 낙심하다가 지금이라도 발견해서 다행이다 싶었다.
준비한 큰 화분으로 옮겨 주면서 추운 날씨에 지지 말고 새 집에서 잘 자리 잡아주기를 바라며 한동안 지켜보게 되었다.
하지만 몇 주가 지나도 시드는 잎이 사라질 것 같지 않아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물이 화분 받침으로 잘 빠지고 있어 배수도 문제없다 생각했고 화분도 커져서 이제 뿌리를 잘 내려줄 것이라 생각했는데, 희미는 아직도 비실비실하고 가장 큰 잎 조차도 색이 변해가고 있어 이대로 죽게 되는 건가 라는 생각에 의기소침해졌다.
안쪽 흙이 또 문제가 될까 해 나무막대로 푹 찌르려는데 어라? 막대가 들어가지 않았다. 무슨 상황인지 당황해 뿌리 근처를 쿡쿡 찔러보았는데 다른 곳도 전혀 들어가지 않는다. 손가락으로 겉 자갈을 치우고 흙을 긁어보니 아뿔싸, 뿌리 근처 흙이 완전히 딱딱해져 있는 것이었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인 걸까..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뿌리 근처 흙이 굳어 식물이 물을 전혀 흡수하지 못하는 상황이 된 거라는 걸 알았다. 그간 열심히 준 물은 이 흙으로 흡수되지 못하고 주변의 부드러운 흙을 타고 그대로 빠져버렸던 것이다.
대체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지금은 이유를 고민할 때가 아닌 치료를 할 때이므로 굳은 흙 채로 뽑아 물에 담가 놓았다.
인터넷 세상에 계시는 많은 식집사 고수님들께서 이런 현상은 별거 아니라는 듯 처방전을 올려주셔서 그대로 따라 해 보기로 한 것이다. 물에 담가 놓아도 굳어버린 흙이 부드러워지기에는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다. 이 딱딱해진 흙이 뿌리를 감싸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물길이 생겨 물이 뿌리로 가지 못하고 다른 길로 빙 돌아서 나가게 된 것이라 한다.
이 단단해진 흙이 어쩜 이렇게 내 머릿속과 같은 모습일까 생각했다. 직장의 특성상 너무도 많은 정보가 오고 가는 가운데 내 머리에 박혀야 할 지식들이 아무것도 들어오지도 못한 채 밖으로 다 빠져나가버리는 것 같은 요즘이었다. 그 수많은 정보를 스펀지처럼 쏙쏙 흡수하는 머리 좋은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나는 지금 가지고 있는 내용도 소화하지 못해 새로운 것을 모두 뱉어내고 있는데 말이다. 누가 이 아이처럼 내 뇌를 물로 깨끗하게 씻어줬으면 좋겠다. 주름 구석구석까지 찬물로 싹 씻어서 막힌 회로가 싹 뚫릴 것 같은데.
물을 먹어 조금은 부드러워진 흙을 조심스레 달래 가며 뿌리에서 떼어냈다. 흙을 모두 걷어내고 나니 수염뿌리가 모두 죽어 원뿌리만 애처롭게 남아있어 주인의 무능함에 더욱 미안해졌다. 줄기나 잎은 위로 자라고 있지만 사실 뿌리는 남아있는 게 얼마 없어 최소한의 모습만을 유지하고 있는 게 내 속도 이럴까 봐 무서워진다. 조금씩 구멍 나고 있던 내 겉모습이 사실은 점점 작아지고 있는 내 뿌리를 위해 SOS를 외치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은. 내 몸도 희미와 같이 자신도 버틸 만큼 버텨보았으니 이제 안 쪽을 돌아봐 주라고 외치는 중이었을까.
이번에 사 온 새로운 흙으로 화분을 다시 채우고 뿌리를 엎어 주었다. 새 흙이라 부드러워 물을 계속 채워 주면서 화분의 높이를 맞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