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ON
2022년 8월 16일 화요일
어제는 노을 산책에서 돌아와 오랜만에 피아노 연습을 늦은 밤까지 진득하게 할 수 있었다. 지난 2주 동안은 강의를 듣고, 내담자를 만나고, Global Leadership Summit에 참가하고, 주말에는 손님을 맞이하느냐 정말 바쁘게 보냈다. 코로나 이전의 삶이었다면 당연한 일상으로 여겨졌던 분주함이, 이제는 사람과의 접촉, 많은 정보와 지식을 마주하면 곧 피로감이 밀려온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정신을 집중하고, 지구력을 늘리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다행히 나의 끈기 향상에 도움이 되어 주는 오랜 벗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하농>이다.
Charles Louis Hanon (1819 - 1900)은 프랑스에서 태어나 교회 오르가니스트, 피아노 교수로서 명성을 떨쳤다. <Hanon: The Viruoso Pianist>는 1873년에 출판되었고, 당시 그는 로마 폰티피칼 상트 세실 음악원의 작곡 명예 교수로 재직 중이었으며, 1878년 세계 박람회에서는 은메달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농은 이 교본이 다섯 손가락의 유연성, 정확성, 민첩성을 고르게 하기 위한 연습곡이고, 학생들의 음악 교육을 보충하고 음악에 흥미를 기르기 위해서는 <대작곡가의 명곡 요약>에서 인용한 아름다운 예제를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렇게 하농의 깊은 뜻이 담긴 '손가락 연습곡' 모음집의 가치를 깨닫게 된 건 내 나이 서른이 훌쩍 넘어서였다.
나는 네 살 때 처음으로 피아노를 배웠다. 엄마 말씀에 따르면 텔레비전에 피아노가 나오는 광고를 보더니, 내가 작은 손가락으로 그 피아노를 꼭 짚으면서 저거를 갖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엄마는 1970년대에 피아노는 그냥 지갑 들고나가서 바로 사 올 수 있는 악기가 아니었다고 했다. 엄마의 적극적인 노력 덕분에 나는 일본에서 직수입해온 KAWAI 피아노를 갖게 되었고, 그렇게 나와 피아노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어린아이가 그냥 텔레비전을 보고 한 말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수도 있는데, 나의 순간적 '끌림'을 진심으로 여기고 정말 반짝반짝 윤기 나는 까만색 피아노를 거실에 들여놔 주신 엄마의 정성에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여하튼 그렇게 시작한 피아노와의 인연은 곧 쉰을 바라보는 나이가 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어릴 적 내게 <하농>은 지루하고 또 지루하고 정말 재미없는 교본이었다. 피아노 선생님께서는 항상 <하농>부터 연습을 시키셨는데, 나는 심지어 그 표지만 봐도 지루했다. 그래서 빨리 <하농> 연습이 끝나길 바랬다. 물론 <체르니>로 옮겨간다고 해서 그다지 즐거운 일도 없었지만, 이 두 관문을 통과하면 훨씬 다채롭고 재미있는 소나티네, 소나타, 명곡집의 곡들을 연주할 수 있다는 것이 충분한 동기부여가 되어주었다. 그렇게 나는 초등학교 6학년까지 피아노 교습을 받았고, 그 이후부터는 그냥 취미로 연주하는 것을 즐기며 살았다. 그러자 <하농>은 더 이상 내게 의무가 아니게 되었고, 나는 마치 편식을 하는 아이처럼 <하농>만 쏙 빼놓고 내가 좋아하는 곡들만 치면서 좋아라 했다.
<하농>의 힘을 진심으로 느낀 건,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후의 일이다. 애도의 시간 속에서 나에게 위안이 되어 준 것은 새벽예불, 독서, 글쓰기, 음악, 정원 가꾸기였는데,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할머니께 들려드리고 싶은 클래식 음악을 맹연습하게 되었다. 그런데 연습을 할 때마다 손가락이 뒤엉키고 때때로 쥐가 나는 경험을 하게 되었고, 아쉬운 마음에 <하농>의 존재가 궁금해졌다. 정말 다행히도 때 묻은 <하농> 교본은 서가에 그대로 꽂혀있었고, 그때부터 나는 다시 어린 시절의 자신으로 돌아가 열심히 <하농>을 연습했다. 그렇게 한 달이 흐르고 두 달이 흐르고 계절이 바뀌고 가을이 들어설 무렵에는 눈에 띄게 피아노 연주가 유연해졌고, 굳은 손가락들이 어느새 나긋나긋 피아노 건반과 대화하기 시작했다. <하농>의 대한 호불호는 피아니스트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고 한다. 나도 불호의 시절이 있었기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호불호를 넘어 <하농>을 반복해서 연습함으로써 얻게 되는 이완과 충실이라는 열매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