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Irvin D. Yalom

실존주의 심리치료

by Rainsonata

2022년 7월 27일 수요일


현재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심리학자 중에서 단 한 사람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Irvin D. Yalom (1931-)과 마주 앉아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얄롬은 이제 구순을 넘긴 노인이고, 몇 년 전 그의 아내 Marilyn Yalom (1932 - 2019)과 사별해서 혼자 지내고 있다. 참고로 메릴린은 역사학자이자 여성주의 작가였으며, 둘 사이에는 네 명의 자녀가 있다. 얄롬은 요즘 공개적인 심리치료는 하지 않고, 전화나 온라인으로 자문을 구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미국에서 심리상담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얄롬의 저서를 이미 수업시간에 읽었거나 (교재로도 사용되므로), 아니면 나처럼 여러 권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을 것이다.


얄롬은 공식적으로 스탠퍼드 대학의 명예 교수이고,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정신과 의사지만, 그의 글을 읽다 보면 화려한 프로필은 오히려 배경막으로 물러나고, 실존주의 작가로서의 아름다운 자태가 선명히 드러난다. 박학함과 통찰력, 수려한 문장력과 감정 표현의 솔직함은, 그의 작품 속에 그려진 등장인물의 손짓 하나 말 한마디에도 온 정신을 집중하게 만든다. 나는 그의 글을 읽으며 얄롬이 자신을 알아가기 위한 노력과 내담자의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결코 멈춘 적이 없음을 느낀다. 그래서 이러한 얄롬의 진지함을 존경하며, 그의 지속적인 자기 계발의 탐구심을 배우고 싶다.


내가 15년 전에 처음 읽은 얄롬의 작품은 <The Gift of Therapy>였다. 나는 이 책을 새해가 되면 꼭 한 번씩 다시 읽는다. 심리치료사로서의 초심을 상기시키는데 이보다 더 좋은 책을 아직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상컨대 2023년 1월에도 내 손에는 같은 책이 들려있을 것이다. 특히 지금처럼 심리치료사와 임상심리 슈퍼바이저 역할을 병행하고 있는 나에게 이 책은 훌륭한 지침서이다. 얄롬은 이 책에서 심리치료사의 기본자세와 오랜 경험을 통해 습득한 지혜를 짧고 명료하게 전달한다. 작가의 이야깃거리는 몹시 풍부한데 군더더기가 없으니 그야말로 건강한 지식 전달의 모범이 되는 저서가 아닐 수 없다.


같은 책을 매년 읽으면 재미있는 경험을 하게 된다. 예를 들면 15년 전에는 도저히 공감할 수 없었던 부분이 세월의 흐름과 함께 공감의 영역으로 들어온 것을 느낀다거나, 또는 예나 지금이나 같은 부분에서 격하게 공감하는 자신을 보면 '역시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피식 웃기도 한다. 이러한 양서가 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든든하고 흐뭇하다. 언제든지 다시 읽을 때마다 새로운 가르침을 주는 귀한 책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래서 더욱 고맙고 애정이 가는 책이다.


얄롬의 가장 최근작은 2021년도에 출판된 <A Matter of Death and Life>이다. 이 책은 아내가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얄롬의 시선과, 자신의 죽음을 마주하는 아내의 시선이 교차하도록 구성되어있다. 서로의 인생에서 65년을 부부로 살았고, 75년을 연인으로 지내온 얄롬 부부의 공저 작품이기도 하다. 이들의 글을 읽다 보면 부창부수(夫唱婦隨)에서 부창부수(婦唱夫隨)로 이어지는 관계의 연속성과 기품을 느낄 수 있다. 더 나아가 얄롬은 실존적 심리치료의 핵심이라고 지목했던 '죽음, 고립, 삶의 의미, 자유'를 생의 마지막 시간을 맞이하는 아내 곁에서 통합적으로 체험한다.


아내와 사별한 지 일 년 반 정도가 지난 무렵, 얄롬은 '죽음과 사랑 그리고 애도'를 이야기하는 인터뷰에 응했다. 방송 말미에 인터뷰어는 만약 온 세상 사람들이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다면, 어떤 메시지를 그들에게 전하고 싶은지 얄롬에게 물었다. 그는 한 문장으로 답했다. "Do whatever you can to be helpful to others."

keyword
이전 04화The Year of Magical Think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