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개의 창문
2022년 8월 19일 금요일
사람에게 네 개의 창문이 있다. 이것을 우리는 '조하리의 창'이라고 부른다. 그 이유는 Joseph Luft (1916-2014)와 Harrington Ingham (1916 - 1995)이라는 심리학자가 고안해서 만든 도표에, 두 사람의 이름을 합쳐 Johari Window라고 부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일반인이 자기 자신과 타인과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모델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인간관계와 소통에서 어려움을 느끼는 내담자는 '조하리의 창'이라는 단어에는 익숙하지 않지만, 이것이 암묵적으로 가리키는 화두를 갖고 심리치료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창이라는 것이 제 역할을 다하려면 열고 닫을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창은 고장 난 창문이다. 그러므로 내 마음에 난 네 개의 창문을 자세히 살펴보는 것은 심리치료 과정에서 충분한 의미가 있다.
'조하리의 창'은 네 개의 영역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그것은 아래와 같다.
1. Public (공개적 영역) - 나도 알고 남도 아는 나
2. Blind (맹목의 영역) - 남은 알고 나는 모르는 나
3. Secret (숨겨진 영역) - 나만 알고 남은 모르는 나
4. Unconscious (미지의 영역) - 나도 모르고 남도 모르는 나
아주 간단명료한 설명인데, 그렇다고 해석이 바둑판 선 긋듯 쉬운 일도 아니다. 모든 증상이나 영역에는 스팩트럼, 즉 범위라는 개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개인에 따라 창 크기의 비율은 천차만별이다. '조하리의 창'은 내 마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한편, 타인으로부터의 반응과 의견을 자신이 어떻게 듣고 해석하고 있는지 찬찬히 살펴볼 수 있는 도우미 역할을 한다. 특히 네 개의 영역을 그림으로 그려보면 자신의 소통 패턴을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더 재미있는 것은 관계의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네 영역의 범위도 변하고, 내 심리 상태에 따라 창의 크기 또한 바뀐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조하리의 창'을 이용한 심리치료에서는 내담자의 공개적 영역을 조금 더 넓히려는 노력을 한다. 왜냐면 이것은 닫힌 마음을 여는 시작점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맹목의 영역을 좁히려는 노력도 함께 한다. 왜냐면 이것은 내담자에게 남들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현실적인 자화상을 그릴 수 있는 훈련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심리치료가 진행되면 내담자의 미지의 영역을 좁히기 위한 노력을 한다. 왜냐면 무의식 속에 숨겨져 있거나, 혹은 잊고 있던 나의 일부를 탐색하고, 마침내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과정은 참나로 태어나는 전환점이 되기 때문이다. 단 숨겨진 영역에 있어서 만큼은 결코 어떤 의도를 갖고 접근하거나, 내담자의 비밀 공개를 유도하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이것은 위험하고 무례하며 윤리에 어긋나기 때문에, 숨겨진 영역은 온전히 내담자의 판단과 의사를 존중하며 치료를 이어가야 한다. 심리치료의 토대가 되는 신뢰, 안전, 비밀보장 원칙은 '조하리의 창'을 다룰 때에도 반드시 지켜져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나를 알아가는 길이 타인과의 조화로운 소통을 이룰 수 있는 지름길임을 잊고 산다. 자꾸만 밖으로 밖으로 눈을 돌리고, 환경과 조건과 타인이라는 변수에 필요 이상의 권한을 부여하기도 한다. 공개적 영역도, 맹목적 영역도, 숨겨진 영역도, 미지의 영역도 결국 나의 영역이다. 내 마음이고, 내 의지와 선택에 따라, 내 마음이 가는 데로, 어느 창문은 활짝 열리기도 하고 어느 창문은 굳게 닫히기도 한다. 자기 자신을 아낀다면, 내가 세상과 소통하고 있는 '조하리의 창'은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지 들여다보고 싶어질 것이다. 자동차도 몸도 정기 검사를 받는데, 왜 우리는 마음의 정기 검진은 늘 뒤로 뒤로 미루는 걸까. 얼룩진 유리창은 닦고, 녹슨 경첩에는 기름칠을 하고, 망가진 나사는 새로운 것으로 바꾸고, 깨진 유리창은 보수하거나 새로 갈아 끼울 수도 있다. 오늘도 마음의 창문이 우리의 관심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