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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자불변, 변자불선

善者不辯 辯者不善

by Rainsonata

2022년 8월 31일 수요일


이제는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종이로 출판된 책을 사지 않는다. 이 새로운 시도를 2020년 1월부터 시작했으니까 이제 2년 하고도 8개월이 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너무 갖고 싶어 비싼 해외 배송료를 내면서 한국에서부터 구입한 책이 있으니 바로 도올 김용옥 선생님의 <노자가 옳았다>이다. 지금까지 다양한 번역/해석/주석이 달린 도덕경을 영어와 한글로 읽었지만, 여전히 깔끔한 뒷 맛을 남기는 작품을 만나지 못했다.


도올 선생님의 도덕경은 이전에 <노자와 21세기>라는 작품으로 읽은 적이 있지만, 신간을 내시면서 "50년 동안 품어왔던 노자를 털어냈다"는 표현에, 이 책은 반드시 내 손으로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읽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그건 잘한 결정이었다. 나는 <노자가 옳았다>를 2021년 동안거를 보내며 읽었다. 원래 안거 기간에는 여물을 씹어 먹는 소처럼 읽을 수 있는 작품을 고르는데, 도올 선생님 덕분에 노자와 함께 겨울을 날 수 있었다.


도덕경은 매번 읽을 때마다 다가오는 느낌이 다른데, 이번에 자신을 돌아보게 한 가르침은 81장의 善者不辯 辯者不善 (선자불변, 변자불선)이었다. 도올 선생님은 "좋은 사람은 따지지 아니하며, 따지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좋지 아니하다"라고 번역하셨다. 한자 辯(변)의 구성과 뜻은 아래와 같다.


辡(죄인서로송사할변) + 言(말씀언)

【변】 말을 잘하다(善言); 풍유하다(諷諭); 논쟁하다(論爭); 가리다(分別); 고르다(平均)


나는 어려서부터 시비를 가리거나 선은 이렇고 후는 이렇다고 상황을 설명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어른이나 또래 친구나 상관없이, 상대방이 말 뜻을 곡해하거나, 대화의 맥락을 어긋나는 방향으로 끌고 나가면, 당장 바로잡아야 직성이 풀렸다. 중년이 되기 전까지의 나는 오해가 생기면 그 자리에서 푸는 편이 훨씬 합리적이라 믿었고, 나에게도 상대에게도 발언권이 있으니 내 몫을 내가 설명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할머니께서는 이런 모습을 보실 때마다 나를 불러 앉히셨다. 할머니 가라사대 "진짜 어른이 되려면 억울한 경우가 생겨도 참는 것을 배워야 한다." "상황에 따라서는 시비를 가리지 않고 그냥 들어야 할 때도 있다." "특히 너의 주장이 맞지만, 상대에게 듣는 귀가 없다면, 거기서 말을 멈추어야 한다." "자꾸 따지게 되면 말이 많아지고, 그러면 실언을 하게 되고, 그것이 너의 성품을 해칠 수 있다." 지금 이렇게 글로 쓰면서 읽어보니 참으로 지당하신 말씀인데, 왜 그때는 그렇게 고치기 힘들었을까? 할머니께서는 '따지기 패턴'이 반복되면 점점 착할 선(善)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는 이치를 손녀딸에게 깨우쳐주고 싶으셨을 것이다.


도올 선생님은 81장에 나오는 선(善)과 辯(변)의 문제에 대해 "통치자는 본성, 심성이 선해야지, 변辯해서는 아니 된다. 선이란 언어를 초월하는 박樸의 선이다. 짜르고 쪼개고 따지고 하는 변론의 선이 아니다."라고 설명한다. 할머니의 말씀과 도올 선생님의 해석을 마음에 되새기면서 읽는 81장은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信言不美, 美言不信; 신험한 말은 아름답지 아니하고, 아름다운 말은 신험하지 아니하다.

신언불미 미언불신

善者不辯, 辯者不善; 좋은 사람은 따지지 아니하며, 따지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좋지 아니하다.

선자불변 변자불선

知者不博, 博者不知. 참으로 아는 자는 박식과는 거리가 멀고, 박식하여 떠벌이는 자는 참으로 알지 못한다.

지자부박 박지부지

聖人不積, 성인은 재화를 감추러 쌓아두는 법이 없나니,

성인부적

旣以爲人己愈有, 힘써 남을 위하여 재화를 쓰면 쓸수록 자기가 더 많은 것을 가지게 된다.

기이위인기유유

旣以與人己愈多. 힘써 남에게 주면 줄수록 자기가 더 풍요롭게 된다.

기이여인기유다

天之道, 利而不害; 하늘의 도는 만물을 잘 이롭게 하면서도 해치지 아니하고,

천지도 리이불해

聖人之道, 爲而不爭. 성인의 도는 사람을 위해 잘 하면서도 사람과 다투는 법이 없다.
성인지도 위이부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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