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여자를 분노하게 만드는가

The Dance of Anger

2023년 3월 3일 금요일

나는 미국의 심리치료사 면허를 2년마다 갱신해야 한다. 또한 연속교육에 대한 의무 조항이 각각 다른 두 주의 면허를 소지하고 있으므로 2년간 71시간의 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슈퍼바이저 자격 유지를 위한 교육까지 포함하면 최소한 80시간을 이수해야 한다. 이 직업이 천직으로 여겨지는 이유는 심리치료 자체가 몹시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공부를 지속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은근히 즐기기 때문이다. 대학원 수업이 심리학의 역사와 이론을 깊이 숙지하는데 도움이 되었다면, 연속교육은 나에게 유연하고 실용적인 심리치료의 활용법을 배우는 기회를 주었다. 오늘 소개할 책 <The Dance of Anger>의 작가 Harriet Lerner (1944 -)도 연속교육을 수강하다가 만난 귀한 인물이다. 

오래전 읽은 책에 다시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지금 치료 중인 내담자가 해리엇 러너의 작품을 세션에 가지고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서가에서 쉬고 있던 <The Dance of Anger>을 꺼내보게 되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국어 번역본이 있는지 검색해 봤더니 <무엇이 여자를 분노하게 만드는가>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고 한다. 이 책을 가져온 내담자는 자신에게 가장 도움이 되었던 내용은 타인과 소통할 때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요약해 놓은 부분이라고 했다. 내담자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여러 사람과 함께 나누면 좋을 것 같아 원서의 해당 부분을 한국어로 번역하여 옮겨보았다.

1. 당신에게 중요한 일이라면 분명하게 말하세요. 

2. 쇠(화)가 달아올랐을 때는 건드리지 마세요.

3.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하기 위한 시간을 갖도록 하세요.

4. 다른 사람을 깔아뭉개지 마세요.

5. 나 전달법(I Messages)으로 말하세요.

6. 상대방에게 애매모호한 요구는 하지 마세요.

7. 누구나 개성이 있으며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도록 노력하세요.

8. 끝이 없는 지적 논쟁에 참여하지 마세요.

9. 각자의 행동에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인식하세요.

10. 상대방에게 무엇을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라고 강요하지 마세요.

11. 제삼자를 통해 말하지 마세요.

12. 순식간에 변화가 일어난다는 기대를 하지 마세요.

나는 이 책이 비단 여성만을 위한 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책을 세션에 가져온 내담자도 남성이다. 그는 처음에 아내의 분노를 이해하고 싶어서 읽기 시작했는데, 오히려 자신의 분노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다며 작가의 통찰력과 짜임새 있는 구성을 높이 평가했다. 그리고 분노의 성질과 인간관계를 재해석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만족스러워했다. 내담자는 <The Dance of Anger>가 도서관 대출 도서였기에 밑 줄도 긋지 못하고 조심조심 읽었는데, 주문한 책이 집으로 배달되면 맘 껏 밑줄 쳐가며 다시 한번 읽을 거라 말했다. 참고로 해리엇 러너의 <Why Won't You Apologize?>도 한국에서 <당신, 왜 사과하지 않나요?>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