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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insonata Apr 07. 2023

안녕, 하이쿠!

俳句

2023년 4월 7일 금요일


얼마 전부터 허리 통증이 심해지더니 몇 주 간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허리가 한번 고장 나니 앉아있어도 서있어도 누워있어도 몸이 편치 않았다. 너무 아플 때에는 오랜 시간 투병을 하셨던 분들을 떠올리며 그들의 고통의 깊이를 상상해보기도 했다. 허리가 아프면서 내가 지휘하는 시간의 속도도 점차 느려졌다. 아침에 일어나서 씻고 하루를 준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평소보다 1.5배 느려졌고, A 지점에서 B 지점으로 걸어서 이동하는 시간도 그만큼 느려졌다. 갑자기 웃음이 터지거나 재채기가 나올 때에는 척추가 와르르르 무너져 내릴 듯 아파서 몹시 고통스러웠다. 무엇보다 수년간 새벽마다 해오던 108배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다. 이렇게 몇 주를 살다 보니 글을 쓰거나 책일 읽는 속도도 함께 느려졌음을 느낀다. 


느려지는 삶에 서서히 적응해 내가고 있을 무렵, Jack Kornfiled (1945-)가 낭송하는 고바야시 잇사(小林一茶, 1763~1827)의 하이쿠(俳句)를 들었다. 잇사가 어린 딸의 죽음에 부쳐 지은 하이쿠라고 한다.


露の世は

露の世ながら

さりながら


이슬의 세상은 

이슬의 세상이지만 

그렇지만


잇사의 이 작품에는 두 개의 대표적인 영문 번역본이 있는데, 잭 콘필드는 (2) 번을 선택해서 읊었다. 


(1)

This dewdrop world—

 Is a dewdrop world,

 And yet, and yet...


(2)

Dew evaporates

And all our world is dew… she dear,

So refreshing, so fleeting


개인적으로 나는 잇사가 사용한 시어를 존중한 (1) 번 영문 하이쿠가 더 마음에 와닿았다. 단아한 첫인상과 함께 여운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짧은 글일수록 번역이 어렵다고 하나보다. 특히 시를 번역할 때는 직역과 의역의 한계를 뛰어넘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어떤 작품은 설명을 첨부해야 함축적 의미와 정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 어떤 작품은 오히려 감흥과 운율에 방점을 찍어야 빛을 발하는 작품이 있다. 번역가의 문학적 소양은 물론이고, 작품을 해석하는 통찰력과 표현의 유연성, 그리고 예술가 특유의 섬세함도 중요하다. 거기에 더불어 튼튼한 직관의 힘까지 요구하는 번역의 길은 마치 고행과 수행의 교집합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어려운 관문을 모두 지나야지만 작가와 독자 사이에 소통의 다리가 놓이게 된다. 물론 번역문에 대한 호불호는 읽는 이의 취향에 따라 또 나뉘겠지만, 그래도 이곳에서 저곳으로 저곳에서 이곳으로 쉽게 이동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번역가의 노고를 헤아려보면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잇사의 하이쿠를 읽다가 포근한 봄날 우리 곁을 떠난 두 분의 어르신을 떠올리며 하이쿠를 지어보기로 했다. 나에게 우리 할머니와 스톰의 아버님은 이 세상에서 만난 가장 자애로운 분으로 기억될 것이다.


そっと咲く

祖母の微笑み

春の夢


살며시 피는

할머니의 미소

봄날의 꿈


ひっそり散る

はらはら桜

はかなさよ


고요히 떨어지는

팔랑팔랑 벚꽃

덧없음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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